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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pr 22. 2020

[컬쳐] 사고쳐, 노래하고 춤추고

뮤지컬 <리지>


글. 양수복 

사진제공. 쇼노트



뮤지컬 <리지>는 단 네 명의 등장인물과 라이브 밴드의 강렬한 록 사운드로 소극장 무대를 가득 메운다. 수차례 소설, 영화, 연극 등 예술로 재창작되어온 보든 가(家)의 미스터리는 2020년 한국에서 네 명의 춤추고 노래하고 연대하는 여성 로커들로서 재해석된다.      


<리지>는 1892년 아주 더운 여름날, 미국에서 일어났던 실제 살인사건을 재해석한 뮤지컬이다. 보든 가의 부유한 사업가 앤드류와 부인 에비가 집 안에서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친부와 계모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는 둘째 딸 리지 보든이다. 사건 관련자로는 리지의 언니 엠마 보든과 리지의 친구 앨리스 러셀, 하녀 브리짓 설리번이 있다. 정황상의 증거들은 리지를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치열한 공방 끝에 리지는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무혐의로 풀려난다. 여기까지가 기록된 사실이고, 잔혹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의 핵심 인물 리지가 범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리지 사건’을 재해석해온 창작물들이 그러했듯 뮤지컬 <리지> 역시 리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전제하에 얼개를 새로 짰다. 리지는 아버지 앤드류에게 성적 학대를 당해왔고 계모는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유언장을 고쳐 엠마와 리지를 분노케 했다는 설정으로 범죄의 동기가 생겼다. 하녀 설리번과 앨리스의 설정도 흥미롭다. 의뭉스러운 하녀 설리번은 자매의 곁을 맴돌며 살인의 계획과 실행, 증거 은닉을 은밀하게 돕는다. 앨리스는 리지와 가까운 친구처럼 등장하지만 알고 보니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퀴어 코드도 발견된다. 


정해진 결말로 달려가지만 4인조 록밴드를 방불케 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덕에 지루할 틈 없다. 무대가 작고 단출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력에 힘이 실리고 네 배우는 아쉬운 순간 없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눈여겨볼 부분은 1막과 2막의 대비이다. 리지의 살인을 기점으로 막이 구분되고 리지 보든이 왜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해석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엠마, 브리짓, 앨리스가 왜 여성 연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기간 6월 21일까지

장소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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