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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al Song Apr 22. 2020

무학의 놀이터

Movie: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늙을수록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영화는 무엇을 비추는가?  영화는 인물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입니다. 인물의 내면과 외상. 인물 자신과 주변인. 인물의 삶과 가치에 대해서 조명합니다.

이 영화는 늙은 남자, 삶의 모든 것이 야구인 인물을 비추고 있습니다. 인생에 단 한 가지만 존재하는 사람, 스포츠 영화에는 늘 그런 인물이 등장합니다. 야구에 미친 사람 야구가 인생의 유일한 가치인 사람 야구가 전부인 사람. 스포츠 드라마의 기본적 바탕은 한 가지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 이런 사람을 다루는 의도는 이런 사람의 삶을 조명하면서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고 답을 찾고 싶어서입니다.  

두 번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 번 산다면 처음 생에는 이것을 중요하게 살고 다음에는 저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뿐인 삶. 한 번 사는 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 중요한지, 죽기 전 후회하지 않을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좀 더 나은 한 번의 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정말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묻는 것이 이런 스포츠 영화의 주제의식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가 바로 이런 주제의 영화입니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지만, 영화가 아니라 야구로 가보겠습니다. (삼천포로 빠지다, 의도하지 않은 전혀 다른 길로 가버리다는 뜻으로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표현을 쓰다니, 오! 옛날 사람. 옛날 사람, 옛날 사람이 날 울려)


영화 제목 ‘내 인생 마지막 변화구’는 ‘trouble with the curve’를 의역한 제목입니다. 내 인생 마지막 변화구라는 한글 제목은 야구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제목으로 쓴 원작자의 상징을 제거시킨 문제가 있습니다. ‘trouble with the curve’는 ‘변화구(커브) 대응 능력 문제’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 제목을 ‘변화구 대응 능력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이 갖는 함의가 중요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이 문장을 보면 투수에 관한 이야기 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투수가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변화구를 던지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이 영화와 맞지 않는 선입견을 줍니다. ‘trouble with the curve’ 변화구 대응 문제. 이 문장을 보면 타자 이야기 일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이 영화는 투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 관한 것입니다. 타자와 투수는 다릅니다. 투수와 타자가 다르다는 말은 투수와 타자가 갖는 상징과 함의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투수는 변화구를 만드는 존재이고 타자는 변화구에 적응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타자는 늘 외부에 대응하고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투수는 빠른 공을 던집니다. 타자는 속도에 대응해야 합니다. 투수는 높은 공 낮은 공을 던집니다. 타자는 높낮이에 적응해야 합니다. 투수는 바깥쪽 안쪽 공을 던집니다. 타자는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투수의 속임수(사기)에 당하면 안 됩니다. 타자는 안쪽(몸 쪽)으로 날아오는 위협과 공포와 싸워야 합니다.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타자는 두려움과 싸우는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투수의 빠른 공에 맞으면 죽습니다. 죽지 않으면 큰 부상을 당합니다. 안면 골절이 발생한 경우도 있고 팔꿈치가 부서진 경우도 있습니다. 부상이 아니라도 공에 맞는 것은 엄청난 통증입니다. 한 번 맞으면 그 통증은 뼈 속 깊이 각인됩니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그 통증은 외상 후 스트레스처럼 타자를 두렵게 할 것입니다. 타자는 그 두려움과 매번 싸워야 만 합니다) 


투수는 많은 종류의 변화구를 던집니다. 변화구는 공의 궤적이 다 다릅니다. 슬라이더와 커터는 매우 짧은 각도로, 체인지업은 슬라이더보다는 느리지만 더 큰 각도로, 커브는 가장 느리고 가장 큰 각도로 변화됩니다. 타자는 모든 종류의 변화구 궤적에 대응해야 합니다.


타자의 이야기라는 것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상징과 함의를 가진 것입니다.

제목에 들어있는 커브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커브는 변화구의 시조, 기원입니다. 커브는 가장 오래된 구종으로 직구 이외에 최초로 상용된 변화구입니다. 여기에는 기본적이고 근원적이라는 함의가 들어 있습니다. 커브는 가장 각도 차가 크고 변화의 폭이 큰 변화구입니다. 가장 큰 변화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커브는 속도가 느립니다. 아리랑볼이라고 불리는 공도 커브의 일종입니다. 밖에서 보면 “저 느린 공을 왜 못 치는 거야”라고 생각되지만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는 정말 치기 어려운 공입니다. (아리랑볼은 실전에서 사용하는 투수는 별로 없습니다. 던지기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구속이 느려서 맞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아리랑볼을 던졌던 투수, 정민태 그리고 류현진. 아리랑볼은 오히려 수준 높은 투수만 던질 수 있는 구종입니다. 그래서 아리랑 볼은 치기 어려운 구종이기도 합니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라는 함의가 있습니다. 예상할 수 없는 큰 변화, 대처하기 어려운 변화, 자신에게는 너무나 힘든 변화, 커브가 가지고 있는 함의입니다.


야구 얘기에서 영화 얘기로. 영화가 시작되면 늙은 남자의 일상을 보여 줍니다. 영화의 초반 윤곽이 드러납니다. “저 남자가 무슨 일, 변화가 생기겠구나, 변화에 대한 얘기겠구나” 복선을 느끼게 합니다. 틀린 복선. trouble with the curve’라는 제목과 늙은 남자 일상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로 관객이 느껴야 할 복선은 ‘삶의 변화(구)에 대응을 못 하겠구나’가 되겠습니다.


늙은 남자는 차고에서 차를 빼기도 힘들어합니다. 자동차는 넓은 미국에서 중요한 삶의 수단입니다. 기차나 버

스보다 더 중요한 삶이 도구입니다. 그는 그 도구마저 다루기 어렵습니다. 스카우트라는 직업에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자동차입니다. 자동차는 스카우트의 떠도는 삶을 표시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한 없이 떠도는 직업 스카우트. 정주하지 않는 삶, 고정되지 않는 삶, 이런 이미지는 삶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을 표상합니다. 삶은 기본적인 구조가 ‘불안’입니다. 누구도 영원히 이 곳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떠난다. 사체 한 개만 남기고 떠난다. 한 곳에 머물고 싶은 욕망, 이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 죽음을 염두에 두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입니다. 한 곳에 머물고 싶은 욕망, 떠남이 없고 싶은 욕망은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연결됩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은 결국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삶은 늘 우울하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머무는 삶을 지향하고 떠도는 삶을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스카우트 떠도는 직업은 그 자체로 비극의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21세기 미국의 대표적 극작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비극 작품이 있습니다.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통해 떠돌아 다여야 하는 외판원의 아픔과 가족의 해체를 비극적으로 그렸습니다. 이 영화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변주곡입니다. 


스카우트의 동반자, 차 하나도 다룰 수 없는 지경에 처하는 남자,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운전도 못 할 정도로 악화된 눈으로는 제대로 된 스카우트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스카우트 직업의 위기는 눈뿐만이 아닙니다. 스카우트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입니다. 스카우트는 이제 컴퓨터를 다뤄야 합니다. 컴퓨터를 사용해 선수의 통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통계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방식, 새로운 사람들이 이 세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는 늙은 게 아니라 낡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낡은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새로운 기술도 따라갈 수 없고 새로운 방식도 수행할 수 없고 새로운 사람도 아닙니다. 낡은 사람이 된 이유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싫은 것입니다. 


변화는 그를 삶에서 내쫓는 원인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첫 번째 큰 변화는 아내의 부재입니다. 아내의 부재는 아내의 죽음입니다. 변화의 원인이 ‘죽음’입니다. 죽음이 변화의 원인이자 결과입니다. 아내의 무덤을 찾아 아내에게 불러주었던 노래를 부릅니다. 딸에 관한 소식도 말합니다. 딸에게 해야 할 말을 아내 무덤에게 합니다. 여전히 그는 아내가 곁에 있는 그 시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려는 남자. 이 남자에게 변화는 죽음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남자는 변화에 절대 적응할 수 없습니다. 죽음에 적응하는 방법은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제 두 번째 큰 변화가 그에게 온 것입니다. 평생 아내처럼 늘 곁에 있었던 직업 스카우트에서 쫓겨날 처지입니다. 다시 찾아온 변화 위협, 다시 시작된 죽음의 전조가 그에게 다가옵니다. 딸이 나타납니다. 침입합니다.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남자의 한 복판인 시골 구석 야구장에 딸이 나타납니다. 두 번째 변화 위기가 만들어 낸 세 번째 변화 위협 딸의 침범이 실행되었습니다. 


변화, 연속되고 강한 변화가 다가옵니다, 그의 삶이 위기에 처합니다. 

딸은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로펌 파트너가 되기 직전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직전 (미국 로펌에서 일반 변호사와 파트너의 위치 차이를 자세히 알고 싶으면 굿 와이프를 보시길 바래요) 아버지의 오랜 친구에게서 아버지의 소식을 듣습니다. 


늙은 스카우트는 잘리기 직전.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메이저리그 전체 드래프트 1순위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선수가 정말 1순위의 가치가 될 만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약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런 미션을 가진 아버지를 도와주기 위해 딸은 자신의 성공 기회도 내팽개치고 떠돌이 삶을 사는 불화 중인 아버지의 인생으로 진군합니다. 딸이 어린 시절, 엄마가 아내가 사라진 시절, 둘은 함께 스카우트 여행을 다녔습니다. 딸은 여기서 야구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세계는 딸에게 너무나 위험한 세계였습니다. 딸의 성추행 위기를 목도한 아버지는 딸을 자신에게서 격리시킵니다. 딸은 이 격리가 자신을 버린 행동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보호라고 생각한 아빠와 버림받은 것으로 기억하는 딸은 이 사건으로 서로 불화하게 됩니다. 불화의 원인은 ‘부재’ 였었습니다. 딸은 엄마를 잃었고 남편은 아내를 잃었습니다. 둘에게 사라진 것은 하나인데 이름과 가치는 다릅니다. 엄마와 아내 두 개의 이름, 하나의 존재. 공통점은 둘 다 그것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딸에게 엄마는 남편에게 아내는 세상의 모든 것. 세계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재로부터 출발한 불화는 영화가 흐르면서 해소됩니다. 


불화의 해결 방법은 부재를 대체할 것을 찾는 것입니다. 첫 번째 대체재는 불화의 당사자들 바로 자신들입니다. 엄마를 잃은 딸과 아내를 잃은 남편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보호하려고 했고 버림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 사이인가를 깨닫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대체재는 딸과 남편이, 아빠와 딸이, 동시에 사랑했던 또 하나의 것 야구입니다. (야구영화니까요!)


그녀는 성공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로펌 보다 야구를 더 사랑했습니다.  야구를 사랑한 것도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이었고 야구 도사가 된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둘은 다시 스카우트 여행을 함께 합니다. 다투고 상처를 냅니다., 과거의 생채기를 꺼내고 확인합니다. 현재 생채기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자가 야구 도사가 되어 가던 시절처럼 다시 함께 합니다. 함께 하는 것,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스카우트 목표인 1순위 예정 선수의 약점을 찾아냅니다. 아빠의 귀와 딸의 눈의 협력으로 1순위 선수의 

약점을 찾아냅니다. 그 선수의 약점은 변화구 대응 능력 부족(trouble with the curve)이었습니다. (제목이 왜 trouble with the curve’였는지 알 수 있겠죠) 덤으로 1순위를 대체할 선수도 찾아냅니다. 이 성과로 아버지는 퇴직이 아니라 은퇴를 할 수 있게 되고, 딸은 아버지를 대신해 메이저리그 팀의 스카우트가 됩니다. 삶의 변화구의 대한 훌륭한 대응, 해피엔딩입니다. 


삶의 마디마디가 다 해피엔딩일 수는 없습니다. 삶의 변화는 반드시 찾아오고 변화의 순간은 아프고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삶의 진실입니다. 삶의 커브 볼은 각자의 크기만큼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고난의 시기에 누구든 내 곁에 있다면 참 다행입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돌아보면 누군가는 내 곁에 있었습니다. 이게 삶의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같습니다, 누군가는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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