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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pr 24. 2020

인생은 도대체 언제까지 어려운 걸까?


글. 영켱(팜므팥알) 



나의 첫 친구나의 할머니

어릴 적 나는 할머니가 만드신 뜨개 옷을 자주 입었다. 할머니는 내 스웨터도 원피스도 뚝딱 뜨셨다.  색동을 섞어 만들어주신 스웨터는 작아져서 입지 못할 무렵까지도 내 보물이었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으로 만들지 못하시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다 맛있었다. 할머니는 막내 손주인 내게 너는 내 마지막 친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마지막 친구가 결혼을 하던 해부터 할머니는 혼자서는 잘 걷지 못하게 되셨고, 방금 한 대화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셨다.     


성실하게 살더라도 아프고 괴로운 일들은 또 다르게 찾아온다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으시기 몇 달 전, 할머니는 나와 이야기하시다 조금 우셨다. 병원에서는 할머니가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했다. 슬프기보다는 억울하고 황망했다. 열심히 바르게 잘 살아도, 인생은 쉽사리 해피엔드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흔 살이 훌쩍 넘은 우리 할머니에게도 굴곡은 또 찾아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산을 이미 넘고, 남편을 잃고, 큰딸을 먼저 보내는 큰일까지 이미 겪어도 말이다. 100년 가까이 버텨도 오늘은 또 다르게 아프고 또 다른 이유로 흔들리는 것이다.      


나의 노년을 상상해본다

나는 아직 30대인데도 우울증 약을 먹는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으니, 아마 늘그막엔 좀 더 외로울 것이다. 친구들, 남편도 먼저 떠나보낼 수도 있다. 거동이 힘들고, 생각이나 감정도 또렷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런 날들은 모두 똑같이 찾아온다. 그때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끝나지 않을, 또 찾아올 시련을 견디고 그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까?  

    

해피엔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사실 그 답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여전히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 할머니의 자취를 따라갈 뿐이다. 더 많이 사랑을 주고, 먼 훗날을 걱정하기보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 지나간 날에 후회가 없을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뒤돌아보지는 않는 것. 앞으로도 견디기 힘든 무엇이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여전히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고 계신다. 나는 그것이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해피엔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인생의 오르막내리막 굴곡을 타고서 살아내는 우리는 모두 이미 훌륭하다.


영켱(팜므팥알)  

독립출판물 <9여친 1집>, <9여친 2집>을 제작했고, 단행본 <연애의 민낯>을 썼다.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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