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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17. 2019

[인터뷰] 평범하게 사랑스러운 그녀

<두번할까요> 이정현

배우 이정현을 소개하면서 굳이 그의 첫 영화 <꽃잎>(1996)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연기를 잘 해서 충격적이었던 데뷔작의 여파로 이정현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하기 어려웠다. 그 덕에 우리는 다시 봐도 독보적인 데뷔곡 <와>를 부르며 부채를 펄럭이는 가수 이정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십수 년 전 그의 활동을 언급하고 있지만 <범죄소년>(2012)과 같은 영화에서 보여줬던 진지한 눈빛,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4)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이력과 <명량>(2014)과 <군함도>(2017)에서 짧게 등장했음에도 강렬하게 각인됐던 연기 역시 배우 이정현이 가진 힘이다.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워낙 특이한 캐릭터만 도맡아 왔던지라 그간 평범한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정현이 첫 ‘로코’로 선택한 <두번할까요>는 이혼식을 치루는 부부가 다시 사랑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자존심 때문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오직 한 남자만 사랑 하는 순정 넘치는 선영을 연기한 이정현을 만났다.


글 김송희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연기 경력이 그렇게 긴데 로맨스가 처음이다.  <두번할까요>의 어떤 점에 끌렸나. 

촬영장에서 기분 좋게 있어도 된다는 게 좋았다. 오래 연기를 했지만 작품 편수는 많지 않다. 박찬욱 감독님이 <파란만장> 단편으로 불러주기 전까지는 연기를 사실상 쉬고 있었고. 시나리오가 많이 안 들어온다.(웃음) 내가 촬영 현장을 너무 좋아한다. 연기하고 모니터 보는 것도 좋아하고, 촬영장에서 스태프들 만나는 것도 너무 좋아해서 현장에 한 시간 일찍 갈 정도다.(웃음) 그런데 어두운 역할을 하면 카메라 앞에 서기 전에 감정을 다스려야 하니 현장에서 좋은 기분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전 역할들은 아무래도 행복한 역할들이 아니지 않았나. 그런데 이 영화는 현장에서 기분 좋게 있어도 되는구나. 싶어서 좋았다. 


함께 연기한 권상우 배우 말로는 촬영 첫날 많이 떨었다고 하더라. 

첫 촬영이 설렁탕 먹는 장면이었는데 내가 숟가락을 막 이렇게 덜덜 떨었다. 모든 영화에서 첫 촬영 때마다 그렇게 떤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코미디 영화이고 상우 오빠나 종혁 오빠, 감독님 전부 너무 재밌고 편안한 분위기여서 금방 적응했다. 함께 연기한 남자 배우 둘이 자식바보에 애처가라서 현장에서도 그렇게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단체 카톡방에서 매일 애들 사진 올리고. 이 영화 찍으면서 지금 남편도 만나고 결혼도 하게 된 게 두 사람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두 남자를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행복한 결혼 생활하고 싶다.’ 생각했다. 


영화는 현우(권상우)와 선영(이정현)이 결혼식이 아니라 이혼식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부였던 두 사람이 헤어지고 다시 사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현우의 감정은 잘 설명되는 반면 선영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많지 않다. 선영을 연기하면서 이 인물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나갔나. 

이혼식 장면이 나올 때 나 역시 생소해서 감독님한테 질문을 많이 했다. 감독님 설명으론 “선영은 자존심이 강한 여자고 상처를 잘 받는 여자다. 현우를 사랑하고 이혼하기 싫은데 ‘나, 너랑 이혼하기 싫어.’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니까 현우가 절대 들어주기 어려운 조건으로 ‘이혼식’을 내세운 건데 현우가 그걸 덥석 받아준 거다.”라고 하시더라. 이 모든 게 선영의 자존심 때문이고, 선영이 현우에게 더 미련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셨고 그걸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스스로 설득이 안 되는 부분에서는 내가 아니고 최대한 선영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건 코미디 영화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찍어야 관객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내가 튀려고 하는 것보다는 상우 오빠의 액션에 잘 받아쳐주는, 주고받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로맨틱 코미디 대본을 오래 기다려온 것 같다. 

평소에도 코미디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로맨스나 코미디 정말 하고 싶은데 잘 안 들어온다.(웃음) 이 영화는 시나리오 읽고 한 시간 만에 한다고 그랬는데, 매니저가 “바로 OK 하면 창피하니까 여섯 시간 있다가 제작사에 얘기할게요.”라고 하더라.(웃음) 일단 시나리오가 재밌었다. 너무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컬트적이거나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를 많이 해왔다. 

<두번할까요>는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일상적인 톤의 연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미 상우 오빠가 캐스팅이 된 상태였는데, <탐정>에서 상우 오빠 연기를 너무 재밌게 봤었다. 현우 역할에 권상우라는 사람을 대입해보니 그림이 그려졌고 내가 거기에 맞춰서 잘 하면 영화가 재밌게 나올 것 같았다. 상우 오빠가 코미디 감각이 있는 배우라 현장에서 애드립도 많이 나왔다. 일반 관객들이랑 같이 영화 볼 때 가장 웃음이 많이 나온 장면이 현우가 명품 티셔츠 던질 때였는데, 그 장면도 상우 오빠의 애드립이었다. 


다른 이정현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항상 어두운 역할만 했으니까, 그런 마음도 물론 있다. 어둡고 상처받고 이런 역할보다 밝은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감독님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저를 보고 이 영화에 생각했다고 하시더라. 그 영화도 전체적인 톤은 어둡지만 중간중간 사차원 같은 밝은 장면이 있다. 거기서 선영을 떠올리신 것 같다. 


선영은 극 중 외화 번역가다. 전문직 여성 캐릭터는 처음 같다. 

맞다.(웃음) 열의에 차서 감독님한테 ‘저 뭘 준비할까요. 영어 공부할까요?’ 했더니 감독님이 ‘영어 대사 많이 없을 거’라고 하시더라. 대신 감독님한테 질문을 정말 많이 했다. 이해가 잘 안 될 때는 달려가서 ‘선영이가 여기서 왜 이랬죠?’ 이렇게 많이 물어봤다. 


요즘 유튜브에서 <SBS 인기가요> 스트리밍으로 과거 가수 이정현의 영상이 나오는 걸 알고 있나. 

일명 ‘탑골가요’라는 이름으로 10대, 20대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와>나 <바꿔>는 지금 봐도 신기한 무대다. 영화 스태프들이 요즘은 다 나보다 어린데, 탑골가요라고 하면서 재밌다고 보여주더라. 스태프들이 보여줘서 알게 됐다. 남편도 자주 보는데, 같이 보면 창피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때 참 풋풋했구나 싶고.(웃음) 사실 가수를 은퇴한 적이 없어서,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가수로도 나오고 싶다. 해외 팬들한테도 왜 다시 가수 안 하냐고 메시지가 온다. 아, 영화 촬영하면서 회식 때 <와>도 불러주고 그랬다. 사실 트렁크에 항상 부채가 있다.(웃음) 1집 나올 때 회사에선 다 내가 망할 줄 알았다. 그때에 엄정화 선배님이 테크노로 <몰라>를 하셨고 이후에 다른 여자 가수들도 미래적인 콘셉트를 많이 갖고 나왔다. 똑같이 가기 싫어서 ‘나는 동양풍으로 가야겠다.’ 해서 <와> 콘셉트를 직접 짰는데 첫 방송하고 나서 사장님한테 많이 혼났다. 전화하셔서 ‘너 이제 망했다. 무섭게 부채에 그 눈깔은 뭐냐.’고 엄청 혼냈다. 근데 당시에는 SNS도 없고 반응이 바로 안 오지 않나. 3일 정도 있다가 반응이 좀 있자, 앞으로 콘셉트를 직접 다 잡으라고 하셔서 이후에 하고 싶은 거 맘껏 했다.


배우로서는 가수 활동 시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부담도 있을 것 같다.

다시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박찬욱 감독님의 <파란만장>이었는데, 박 감독님은 내가 배우할 생각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왜 저 한 번도 안 찾아주셨어요.’라고 하니까 ‘생각은 했는데 가수만 할 사람인 줄 알았다.’고. 그게 아니라 작품이 안 들어와서 잠깐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했던 것뿐인데. 그런데 단편이 잘 되고 계속 조금씩 배우를 할 수 있게 된 걸 보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도 탔다. 배우 이정현에 대해 확인하는 작품이었는데 이후에도 활동이 많진 않았다.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고. 근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 진도가 잘 안 나가거나 중간에 끊기는 건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다음 작품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 상업영화도 좋지만 독립영화를 꾸준히 하려고 했던 게 독립영화들에는 상업영화에 나오지 않는 결들이 있다. 그래서 독립영화 시나리오들도 계속 보고 있다. 참신한 시나리오, 기발한 독립영화도 계속 하고 싶다. 배우가 작품을 하는 건 좋은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좋은 운도 계속 기다리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반도>도 촬영 중이다. 그 영화에 대해서 혹시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 영화가 정말 비밀이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다만 또 다른 이정현의 모습을 보실 수 있다는 것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액션도 하고.


생활연기도 잘하는 배우인데, 왜 그동안 이런 작품에서 볼 수 없었는지 아쉬웠다.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인물을 연기하는 소감은 어땠는지. 

아, 드라마 너무 하고 싶다. 드라마 정말 많이 챙겨 보고 좋아한다. 요즘 공효진 씨가 나오는 <동백꽃 필 무렵>도 정말 재밌게 보고 있다. 드라마에서 그런 일상적인 연기도 꼭 하고 싶다. 이번 영화로 이정현의 그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면들을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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