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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ug 19. 2020

[취향의 발견] 부산에 가면


 사진제공. 배민영


이 글이 여러분 손에 펼쳐질 즈음이면 아마도 ‘택배 없는 날’과 대체 공휴일을 포함한 광복절 휴일이 쏜살같이 지나가 있을 것이다. 그 기간 부산은 ‘BAMA’라 불리는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가 막 끝났을 것이다. 어느덧 9회째를 맞는 BAMA는 보통 4월과 6월에 개최되어왔으나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8월 13일부터 16일에 장을 열 수 있었다. 문득, 부산국제화랑 협회장을 지내신 피카소화랑 김경희 대표와 함께 전속작가 김대윤 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작업실이 있는 기장 앞바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웨이브온 카페 테라스에서 오랫동안 바닷가를 내려다보던 재작년 초의 기억이 났다. (중략)


ceramic story#35oil on canvas162.2×112.1cm2020


부산은 그냥 부산인기라

노보텔 2층에 있던 가나아트 부산은 전망이 특별했는데 얼마 전 망미동으로 이사를 갔다. 부산시립미술관의 큐레이션은 믿음직하며 별관인 이우환 공간은 고즈넉하니 명상의 기운을 선사한다. 좀 더 여유가 나면 영도의 흰여울 예술마을이나 사하의 감천문화마을 또는 까치고개를 괜히 한번 넘으며 오로지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에 빠져본다. 그래서 부산은 누군가와 같이 가거나 혼자 가도 좋은 곳, 서울에서도 잘 보지 않으면서 부산 출신이면 여럽게(부산 쪽에서는 ‘주책맞게’ 정도의 뉘앙스로 쓰인다고 한다) 문자나 SNS로 “내 부산 왔다.”라고 티를 내게 되는 곳이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누군가는 마침 부산 집에 와 있다가 밥이라도 사주러 나오거나, 만나진 못해도 새로운 맛집을 소개받곤 한다. 그래서 부산에 ‘제2의 도시’라며 행정 또는 경제적인 서열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나는 부산 사람도 아닌데 왠지 불만스럽다. 부산은 그냥 부산인기라.


부산에는 앞서 언급한 김대윤 작가를 비롯해 ‘청바지 작가’로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2억 원에 낙찰된 바 있는 최소영 작가나 애니메이션 영상작품 <In God We Trust>, <White House> 등으로 유명한 전준호 작가, <East Side Story>의 김명식 작가 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시선과 색깔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서울, 도쿄, 뉴욕 등을 오가며 여러 갤러리와 작가들과도 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부산을 찾을 때마다 삐쭉삐쭉 솟아난 마천루들이 늘어난 것을 굳이 목도하지 않아도 국제도시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여러 맥락과 잔상이 있다. (중략)


예술 혹은 수행이기도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부산 작가로서 극사실화를 그리는 태인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그 어렵다는 극사실주의, 그러니까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는 회화사에서 근대를 호령했던 사실주의(realism)가 카메라의 등장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어갈 즈음 인상주의(impression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추상주의(abstractionism), 팝아트(pop art) 등으로의 우회하거나 타협을 시도한 여러 갈래의 사조 속에서 오히려 ‘정면승부’를 펼쳐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느낌, 즉 고도의 손맛으로 빛의 기계적 포착을 이겨내온 장르이다. 따라서 극사실화풍을 정교하게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그 자체로도 자신이 진정한 ‘화가’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극기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시간과 기술을 건 초집중의 수행과도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태인 작가는 자신의 뿌리인 부모님이 생전에 업으로 삼으셨던 도자기를 새로운 차원 안에서 체화하며 그림을 그린다. 본래는 구형 기반의 입체를 띤, 그리고 구면 위에 앉는 빛의 왜곡과 디테일이 상당한 장식, 색을 다시 평면에 재현해내는 노력이다. 도자기는 빚어내고 고열로 구워내며 과감히 부수어 없어지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살아남는 치열함을 보여주기도 하며, 세상에서 가장 달을 닮은 오브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작가는 본질인 동시에 매체로 인식되는 세 가지의 소재로서 도자기, 달, 촛불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개인적 차원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은유를 시도한다. 그렇게 작품은 하나의 제목 아래 수십 개의 넘버링으로 쌓여나간다. 혹시 이번 BAMA에서 태인 작가의 작품에 눈길이 갔거나, 반대로 BAMA를 놓쳐서 그녀의 작품이 궁급하다면, 다음 달인 9월 8일부터 22일까지 오션갤러리에서 <본질로의 회귀(Return to the Essence)>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이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좋은 그림’이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제각각 답을 낼 수 있겠지만, 보기에 직관적으로 좋고, 작업에 대한 열정과 끈기가 느껴지며, 그만의 미학적으로 추구하는 본질까지 담고 있다면 전시를 관람하거나 작품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태인 작가의 달을 닮은 <Ceramic Story>에 맑게 취해간다.


배민영

예술평론가. 아트 에이전시 누벨바그 대표. 갤러리서울, 취향관 등에서 시즌테마 및 아트살롱 기획, 편집장으로 활동했고 새로운 개념의 예술잡지 <HOPPER>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8월호 2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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