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향규
자전거 하나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 우리 동네에 있는 자전거 가게를 다뒤졌는데, 물건이 하나도 없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전거를 샀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더 관심이 생겨서 그럴까요?” 뭐든 진지함이 과한 나의 질문에 가게 주인은 “글쎄요, 자기 건강을 더 챙기게 된 것 아닐까요? 시간도 많아졌고.”라고 말했다. 물건이 언제 들어올지는 기약이 없단다. 내년이나 될 것 같다고도 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바닷가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딱 하나 남은 자전거를 찾았다.
이것저것 따져볼 것도 없이, 샀다. 실로 오랜만에 내 자전거가 생겼다.
이번이 스무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9월 30일은 돌아가신 엄마의 생신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 그날은 늘 축하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결혼한 다음부터는 이즈음에 마음이 복잡해질 적이 많았다. 그건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게 대체 어떤 모습인지, 나의 결혼은 여전히 축하할 일인지를 자꾸 자문했기 때문이다. 그런 해에는, 마음과 달리, 과한 선물을 샀다.
결혼 10주년 때도 그랬다. 그래서 소박했던 결혼반지보다 비싼 순금 가락지를 맞췄다.
그때 반지는 마음을 묶어두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올해에도 그런 선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3~4년 전에 남편에게 자전거를 사줬다. 파킨슨병은 아직까지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약은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한계가 있다. 그는 이제 겨우 50대 초반이다. 병의 진전을 늦출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산악자전거도 사고, 실내용 헬스자전거도 들여놓았다. 나는 그가 잘 타고 있는지를 자꾸 확인했다. 헬스자전거 앞에는 달력도 하나 붙여놓았다. 애정 어린 잔소리가, 애정 없는 잔소리로, 그러다가 잔소리의 포기로 이어지는 동안, 마당에 둔 자전거는 녹이 슬었고, 부엌에 놓인 자전거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결혼 20주년 선물로, 내 자전거를 사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에게 ‘타라’고 하지 않고, 내가 ‘같이 타겠다’는 다짐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게 대견해서, 아이들에게 자랑삼아 말했다. “엄마가 좋은 생각을 해냈어. 아빠는 엄마가 선물한 것을 자꾸 잃어버리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로 잃어버릴수 없는 선물을 생각해냈어.” 작은아이가 짐작했다. “그럼… 문신?” 순간 웃었지만,
‘그래, 30주년 될 때는 기념 문신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때는 또 그때에 다짐할 것이 생길 거다. 일단 올해 선물은, 내 자전거다. “이제 엄마가 아빠하고 같이 타려고.” “좋은 생각이네.”
여름 끝자락이 아직 남아 있지만, 바람도 햇살도 풍경도 이미 가을이 대세다. 첫날 길을 나섰을 때,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바퀴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곧 위태함은 사라지고 긴장도 풀려서, 피부에 닿는 가을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었다. 퍽 좋았다. 우리는 언덕길을 내려가 회전교차로를 몇 개 지나서 ‘반짝이는 물 공원’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넓은 들판에 갔다. 풀은 낮고 하늘은 넓었다.
그의 자전거가 내내 앞서 달렸다. “당신이 길을 잘 아니 먼저 가시라. 내가 뒤따르겠다.”고 말하며 그를 앞세웠지만, 나는 내심 그가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걱정했다.
그럴 경우 내가 뒤에 있는 게 낫다. 염려와 달리, 그의 빨간 자전거는 편안하게 달렸다.
앞서가는 그의 어깨와 등을 한참 봤다. 마음속에서 잔물결 같은 것이 일었다. 이걸 연민이라고 해야 할지, 슬픔이라고 해야 할지. 자꾸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뒷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힘이 있는가 보다. 내 마음이 순해지는 것 같았다.
뒷모습은 사람을 관대하게 만든다.
매일 오후가 되면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아무 곳에나 간다. ‘같이 자전거 타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노력’한 일 중에서 제일 괜찮은 것 같다. 자전거는 ‘혼자’ 타는 것이다.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것도, 언덕길을 오르느라 힘주어 페달을 밟는 것도, 온전히 자기 몫이다. 같이 간다지만, 꼭 나란히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이좋게 손잡고 가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 자유가 좋다. 한편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같이’ 해서 누릴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같이 길을 떠나면, 낯선 곳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덜 무섭다. 한 사람이 넘어지거나 다쳤을 때 도와줄 수 있다. 멈춰 서서 같이 본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낯선 펍에 들러 맥주를 마시거나 늦은 점심을 먹는 것도 더 쉽게 할 수 있다.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
결혼 20년이 되어도, 나는 ‘혼자’와 ‘같이’라는 두 바퀴의 균형을 찾느라 종종 휘청댄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한다. 혼자여야 하는 일이 있고, 같이 하면 더 좋은 일이 있다. 그러니 어느 한편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자. 다 혼자 하겠다고 모질어지지도, 늘같이 하겠다고 애쓰지도 말고, 그저 순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자.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의 뒤를 따라가지만, 곧 내가 뒷모습을 보이게 될 날이 올 거다. 그러면 그가 나를 불쌍하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짝이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등을 보이면서 긴시간을 함께 가는 자전거 여행 같다. 그걸 이제 겨우 안다.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들판의 풀은 더 낮게 누워 있겠다.
이향규
남편과 두 딸,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영국에서 산다. 한국에서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했다. 지금은 집에서 글을 쓴다. <후아유> <영국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같은 책을 냈다. 작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