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문정
인터뷰를 쓰고 싶어서 기자가 되었다, 라고 쓰고 보니 그리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왜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르게 생각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기자직에 지원할 때 쓴 이력서에도 내 강점 중 하나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꼽았던 기억이 난다.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그걸 약점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기개를 내뿜는 사람을 특히 좋아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런 인생을 지향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살아볼 용기는 없어서 그랬으리라.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활기가 돌 때는 하겠다는 수락의 메일이나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려 한다면 만나주기는커녕 전화번호조차 알기 어려웠을 사람들이 소속과 신분을 밝히면 우호적인 태도로 가능한 일정을 알려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장점 하나 때문에라도 젊을 때 하기에 가장 좋은 직업 중 하나는 기자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시간과 에너지의 가성비로 따져보면 인터뷰는 효율이 낮다. 2주에 한 번인터뷰를 쓴다고 치면 최소 5일은 관련된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 성실한 인터뷰어는 대상자의 작업물을 최대한 챙겨 보는 데만 일주일 이상을 쓰며 질문지를 준비하는 데도 하루가 꼬박 걸린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에 관한 질문을 하면 인터뷰 대상에게 실례가 되지만 그걸 피하느라 너무 어려운 주제나 지엽적인 부분에 집중하면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불친절한 인터뷰가 되어버리니 방향과 정도 조절부터 난관이다.
잡지사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했던 사람들 중에서 유독 기억나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때마다 첫 번째로 꼽는 건 가수 아이유. 2009년의 겨울 즈음, 그가 귀여운 여고생 콘셉트로 ‘마시멜로우’를 부르던 때였는데 그 노래로는 별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예능에 나와 기타를 치며 ‘내 사랑 내 곁에’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화제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그를 ‘유망주’라고 부르기 시작하던 즈음 우리는 만났는데 당시 열일곱 살이던 그가 이런 대답을 했었다. 대중가수 같지 않은 면이 자기에게 있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면서도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하고 싶은데 그 접점을 찾는게 어렵다고. 어쨌거나 지금은 ‘마시멜로우’ 같은 노래를 부르지만 이런 것만 할 줄 아는 아이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아티스트가 아닌 대중가수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담백함과 어린 나이임에도 벌써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을 가늠하는 균형 감각을 가진 것이 대단해서 그날 이후 특히 좋아해왔다.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말을 글로 옮기는 생활을 해나가면서 나는 서서히 세상의 희망적인 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생각과 그렇기에 해봤자 안 될 거라는 두려움으로 우울해하는 밤이 많았다. 실수와 실패의 기억들에 짓눌려 있을 때가 잦았는데 중요한 건 내게 일어난 사실 그 자체가 아니고 그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대단해 보였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알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내심 나만의 그림자는 유독 고독하고 길게 늘어져 있지,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네 하는 자기 객관화도 됐다. “너의 고통은 특별하지 않다.”고 누군가가 말했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테지만 스스로 이걸 깨닫는 과정에서는 수긍이 되었다. 누구든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하나같이 두려워하고 흔들리며 걷는다. 다만 멀쩡해 보이게 관리할 뿐. 사람들은 그걸 알아차릴 정도로 남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모를 뿐이다.
기자를 그만두고 더 이상 인터뷰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주 인터뷰를 찾아 읽는다. 책 읽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인터뷰집부터 읽어보라고 추천하곤 한다. 인터뷰는 진행자가 세심하게 기승전결을 맞춰 질문을 던진 뒤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해 재구성해주는 것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 같은 내용에 대해 책으로 쓴 것보다 강의록이 쉽고 강의록보다 인터뷰집이 더 이해하기 편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는 것에 비해 마음산책에서 나온 <칼 세이건의 말>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할만하다. 적극적으로 편집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질문하는 기자의 가성비는 극악이지만 인터뷰집을 읽는 가성비는 이보다 합리적일 수 없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하기 전 일단 거기 드는 돈을 대략 따져보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1만 5천 원 정도만 내면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를 준비 없이도 들을 수 있는 것이 대단한 효율로 계산된다. 이 비용이라면 내가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났대도 음료 두 잔에 케이크 한 조각을 사며 썼을 금액이지 않나. 인터뷰를 읽는 대신 영상을 보는 건 어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화면을 통해서는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 질문자가 이끄는 대화 방향과 강도 조절을 보는 맛,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영상으로 보는 인터뷰는 대개 외모가 주는 분위기, 목소리와 표정 위주의 비언어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기에.
대학 때는 지승호, 김혜리 같은 전문 인터뷰이가 쓴 인터뷰집을 좋아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한겨레신문>에서 연재됐던 김두식 교수의 인터뷰 시리즈를 아껴 읽었는데 최근에는 <조선일보>에서 연재하는 김지수 기자의 인터뷰를 챙겨 본다. 가만히 있으면 내 세상은 자꾸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화제에서만 맴돌게 되지만 이런 것들을 찾아가다 보면 친절하게 큐레이션된 방식으로 새로운 사람과 지식을 알 수 있다. 인터뷰는 이처럼 몰랐던 사람에게서도 도움이 되는 말을 듣는 기쁨이 있는 것과 동시에, 대화의 고급 기술도 습득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좋은 질문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것, “왜 그렇게 했나요?”가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했나요?”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인터뷰를 통해 배웠다.
궁금한 것을 깊이 있게 물어볼 수 있는 어른이 적은 청년에게, 내가 예전에 그랬듯 간접경험으로라도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해줄 것이다. 특히 책 읽는 재미를잘 못 느낀다는 사람에게 글보다 생생하게 쓰인 인터뷰집을 추천한다. 말과 글의 중간에 있는 언어로 쓰인 책을 완독하는 경험을 해보면, 이를 통해 책을 읽는 경험이 곧 사람과의 만남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어려운 문장과 사유가 있는 책으로 넘어갈 수 있다. 겉돌지 않는 대화가 특히나 그리워지는 요즘, 다정하고도 고독한 말들을 읽어가며 외로운 날들 속에서도 힘을 낼 말을 찾아내면 좋겠다.
정문정
쓰는 사람.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냈다. 인스타그램 @okdom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