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두 개의 공항이 필요할까?
글/ 사진제공. 신주희
여러분이 다녀온 제주의 기억 중 가장 고요하고 제주다운 장소를 떠올려보세요. 그곳에 상상의 마을을 짓고 한 바퀴 둘러보려 합니다. 마을의 바닷길을 따라 걸으니 해안가저 멀리 제주남방큰돌고래가 뛰어오릅니다. 해변에는 꼬마물떼새가 먹이를 찾아 연신 고개를 처박고 있습니다. 마을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마을 길 돌담 너머 너른 밭에는 새카만 화산토 위로 푸른 무청이 넘실대네요.
귤밭도 보입니다. 귤을 좋아하는 직박구리들이 농장 주인의 눈을 피해 오르락내리락하며 귤을 쪼아 먹고 있습니다. 조금 더걸으니 하얀 벽에 파란 지붕을 인 단층집을 얕은 돌담이 감싸고 있습니다. 담장 안 집에는 노모와 아들이 저녁을 먹고 있습니다. 말수 없는 아들을 대신해 밥상 앞에 놓인 TV가 재잘재잘 떠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역 뉴스가 나오네요.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일대, 제주제2공항 부지로 선정!’ 그제야 말수 없는 아들이 화들짝 놀라 입을 뗍니다. “어머니, 저게 뭐래요? 우리 집에 공항을 만든다네요!”
평화로웠던 마을은 지금 제주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이 글서두는 상상의 이야기지만 철새와 산새가 드나드는 마을의 풍경도,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도 모두 실제 이야기입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국토교통부의 주장과 달리 2015년 11월, 제2공항 예정지 마을 주민들은 TV 뉴스에 나온 뒤에야 내집에 공항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짧게는 한 세대, 길게는 수 세대가 살아온 유구한 이야기가 쌓인 내 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을 TV를 보고 알게 되는 사람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성산 지역은 제주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성산일출봉은 유네스코 3관왕으로 인증받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제주의 모습을 대표합니다. 제2공항 예정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독자봉에 오르면 봉곳한 오름들 사이로 푸른 밭이 싱그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개발을 위한 텅 빈 땅’으로 보일 테지만,
이 땅은 농사를 짓고 사는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제주의 맑은 자연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이 그 어느 곳보다 많은 땅입니다. 이 땅에 회색 시멘트를 들이부어 죽은 땅을 만들고 공항을 짓고 도로를 넓히고 공항 도시를 건설해 제주다움이 사라져가는 제주를 지켜볼 생각을 하면 가슴이 턱 막혀옵니다.
제주도와 국토교통부가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는 과정에 수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운영 중인 제주국제공항을 확충하는 것으로도 2045년 이용객 4,500만 명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장기 수요) 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ADPi) 보고서를 수년간 숨겨놓고, 현재 제주국제공항보다 더큰 제2공항을 짓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최근 제2공항 부지 발표 직전에 성산 지역의 토지 거래와 외지인 투자가 급증했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공항 부지 선정 과정에서 성산 지역을 염두에 두고 일관성 없는 기준을 적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환경 측면에서 제2공항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 타당성을 평가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도 엉터리입니다. 제2공항 예정지는 제주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인 하도리, 종달리, 오조리와 가까워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 위험을 지적받았으나 입지 대안은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법정 보호종에 대한 조사도 상당수 누락되었고, 하천이 없는 성산 지역의 홍수를 조절하는 물길인 숨골은 여덟 곳만 있으니 되메워 막으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물난리를 비롯한 재해의 위험이 있는데도 제주의 특수한 자연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지요. 제주 도민들이 직접 법정보호종 새와 숨골을 조사하고 발표하는 등 여러 진통을 겪으며 국토교통부는 환경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전략환경영향평가 재보완을 요구받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묻습니다. 개발론자들은 더 큰 공항을 짓고, 더 많은 관광객을 받는 것이 제주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연간 1,500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휩쓴 지난 몇 년 사이 제주는 이전보다 살기 좋아졌을까요? 처리 한도를 넘어 정화하지 못한 오·폐수가 바다로 그대로 흘러들고, 제주도 내 쓰레기 처리장 여덟 곳의 쓰레기 수용 한도를 초과해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 수만 톤을 한라산 자락에 쌓아놓고 있습니다. 인구 67만 명의 제주 도민은 수년간 매해 찾아오는 약 1,500만 명의 관광객이 남긴 쓰레기 처리 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1인당 쓰레기 발생률 1위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을 품고 있으며 람사르습지도시로도 지정된 조천읍 선흘리에 동물 테마파크를 만들고 사자·호랑이·곰과 같은 맹수, 코끼리·코뿔소·기린과 같은 열대 동물 그 밖에 작은 동물들 등 500여 마리를 들인다고 합니다. 한적했던 제주의 오래된 해변 마을은 카페촌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그카페촌 개발 바람은 비자림로 숲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요?
마을 사람인가요? 점점 제주다움을 잃어가는 제주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것일까요? 기후위기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는 이런 개발을 어떻게 멈추어야 할까요?
제2공항을 짓고 도로를 넓히는 등 온갖 난개발로 제주다움이 사라지기 전에 제주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더해야 합니다. 제주제2공항 건설 여부를 결정할 때가 임박했습니다. 수일 내에 국토교통부는 세 번이나 보완 요청을 받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최종안을 제출할 것이고, 환경부는 제2공항 건설 승인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제주를 제주답게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이 필요합니다. 제주제2공항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속 눈여겨봐주시기 바랍니다. 환경부는 엉터리로 작성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승인하면 안 된다고 함께 주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제주제2공항 계획이 취소되고, 제주 본연의 모습이 지켜질 수 있도록 이 소식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목소리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제주는 지금 이대로 있어야 아름답다고 함께 이야기해주세요.
신주희/ 녹색연합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