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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사람 Oct 29. 2020

나는 내게 늘 빈자리

언제나 곁에 있을 유일한 사람이자 나를 외롭게하는 사람.

나름 짤막하게 지난 삶을 줄여본다.

그럼에도 주절주절 구차하기만 하다.

매일 내 머릿속은 고장난 영사기처럼

이 모든 일들과 지워도 되는 일을 세밀하게 느린 배속으로 틀어주고 있다.




유치원시절부터 엄마와 나와 동생들이 지독히도 맞고 사는 걸 보아왔다.

초등학생때엔 좁은 공간에서 반년이상 지속된 아동성범죄의 피해자였지만, 집안 환경과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까지 있었으니까 묵묵히 버티고 성인이 되고 한참후에야 이 것 때문에도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청소년 시절엔 가정폭력이 짙어져 내 허리가 망가졌고, 십수년을 참고 버티던 엄마가 단 한번의 힘을 빌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고 여전히 사회의 벌을 받고 있다. 그래서 몸이 불편하지만 몸은 커녕 마음도 쉴 곳 없는 병원도 못 가는 소녀가장이 되었다.


내 삶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며

내가 쌓아온 담을 여러차례 넘어온 그의 군복무를 기다렸고 결혼도 했다.

그는 제대후 수년을 방황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지속적으로 외도를 했다.

나는 이 상황과 삶 모든 것들이 끔찍한데, 이 모든 삶은 내 것이니 나 자신이 제일 끔찍했고 회사에서 스토킹을 여러차례 당하면서 엇갈리는 모든 것들에 패닉을 일으켰다. 제일 가까운 가족, 연인, 배우자, 동료, 상사, 친구 모든 것들이 공포스럽고 어려웠다.


그렇게 사람을 어려워하고 어설픈 내 자신을 숨기고싶었지만, 어릴때부터 비척거리면서도 버텨왔던 경험들때문에 평범한 성인, 사회인, 여자를 흉내냈다. 대인기피와 공황장애, 불현듯 찾아오는 스트레스로 인한 안면마비, 항상 가지고다니던 육체적 지병과 통증.


머지않아 동생들에게 검은 옷을 다시 입게 만들 것 같은 공포감에

잠든 그를 피해 불꺼진 화장실에 자주 들어가

터져나오는 소리를 참으며 조용히 울곤했다.


결국 몇종류의 자해와 자살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죽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때면,

정말로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내 자신을 체벌했다.

스스로에게 체벌을 주면 끔찍하면서도

내 상태가 한결 나아지는 모순이 있었고,

그것으로 버텼다.


끝끝내 10년을 채우고 이혼도 하게 되었고,

이젠 적어도 내 삶 밖의 누군가의 가족은 아니니

죽을 때가 된 것 같단 생각이 굳어갔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다.

물론 그 마음이 반나절도 가긴 힘들었다.


내가 책임져야할 작은 생명들인

그와 함께 키우던 고양이들을 안은 채

몹쓸 반려인간이라 미안하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울었다.


연년생 동생이 정말 나 같은 언니 하나 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묵묵히 내 주변을 맴돌고 들여다 봐주었다.

동생들 앞에서 처음이자 한 번,

대화하다가 자해충동을 참을 수 없어진 걸 깨닫고

황급히 자리를 떠서는 옆 방에 가서 벽에 머리를 박아댔고

내 자신이 너무 끔찍해서 또 엄청 울었다.


옆방으로 다급히 쫓아온 동생들의 표정과 말이 어땠는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으로

여생을 빼곡하게 채워줘도 부족할 내 동생들에게

무슨 짓을 보인건가 끔찍했다.

우리 남매에게 엄마아빠 일로도 충분한데

첫째인 내가 나이 서른이 넘어서 이 꼴이라니 사라지고 싶었다.


그래도 사라지지말고 살아야지.

어떻게든 그렇게 어느새 2년이 흘렀고

사라지지 못하고 살아지더라.


너무도 선명하게 매일 불현듯 괴롭히는 기억들이 많아

절대 지난 날이 그리울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냥 빈 깡통이었다.


시대가 조금 변해가고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떠먹여주고 응원하고 아끼는 것.

그 중요함을 사람들이 알아챘고,

다들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거나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은 내 삶에선 감히 욕심내면 안 될 마음가짐들이었고,

나를 향한 애정이 어떤 것인지 상투적으로는 알면서도

어떻게 하고 어떻게 내게 전달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가볍게 움직이는 그 입술들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처럼,

나 역시 내게 빈자리인 사람이었다.

옆에 항상 머물지만 온기도 향기도 세상의 고운 말,

반짝이는 눈빛 하나 주지 못 하는 메마른 사람.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모르는구나.

어떻게 나는 나랑 살아내야 할까.

쪽창 하나, 거울 하나 없는 투명했던 내 방이 형태를 드러냈다.


창문을 달아줘야지.

거울도 달아주고.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은 소소한 것들을 채워야지.

단 둘이 누군가랑 있는 건 역시 두렵지만, 악기도 배워봐야지.

내 몸 하나도 건강하고 자유롭다 느낀 적 없는데 자전거도 탈 줄 모르는구나.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내려놓았던 옷, 신발.

내 기분과 발밑을 다른 곳으로 만들어주는 마법도 가끔 부려줘야지.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옷가지나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동경했다.

당장이라도 큰 웨건이나 귀여운 스쿠터를 타고 훌훌 여행을 떠날 것 같은 가죽자켓도 동경했다. 얼마전에 커다란 남성용 인조가죽 자켓도 덜컥 샀다. (청렴한 비건은 아니다. 그냥 의식이 닿으면 주의하는 정도.)


이런 것들을 촘촘히 채워나가다보면

어느 날엔 나는 내게 닿을 수 있을까?

난 정말 괜찮아질까.

덤덤히 적당히 숨기고 힘들어하고,

마침내 담담하고 노련한 능구렁이가 되어

이 골목 저 골목 이 북적거림과 저 한적함 느긋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나는 내 곁에 있어.

내가 좋아하는 것, 사소한 것들,

흘러갈뿐인 작은 것들에 감동하는 순간들,

비집고 세어나오는 웃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어.

아는 만큼 보여주고 선물해주고 지켜주지 못 해서 미안해.







Cover photo by ÉMILE SÉGUIN ��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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