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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Oct 27. 2020

그때의 맛

이제는 추억이 된여행지의 별미

글/사진. 양수복


가끔 꿈을 꾼다. 여권에 비행기 티켓을 끼워 손에 든 채로 쫄랑쫄랑 출국 게이트를 지나 비행기에 오르는 꿈. 꼬박 몇 시간을 날아 도착한 낯선 이국에서 첫 끼는 뭘 먹을지 궁리하느라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가슴은 설렘으로 벅차오르는 꿈. 내가 스쳐왔던 세계의 여행지들이 “수복에게”라고 편지를 보내오는 듯하다. 그러면 나도 잠에 몽롱하게 취해선 답장을 쓴다. “나도 네 꿈을 꿔.” 잠에서 깨면 아쉬움을 달래려 과거에 박제된 여행지에서의 사진을 찾는다.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전처럼 자유로이 여행할 수있을까, 라는 회의적인 질문은 넣어둔 채로.

여행의 묘미는 식도락이다. 세계의 다채로운 음식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기에 여행 전부터 현지 먹거리를 샅샅이 검색하고 떠난다. 게다가 여행이란 필터를 입히면 실제별 세 개 정도의 평가를 받을 음식도 다섯 개짜리로 둔갑한다. 그러나 미각이 예민하지 못한 내가 여행지에서 최고로 기억하는 음식들은 대개 레스토랑보단 노점에서, 여유롭고 깨끗할 때보단 개고생을 하고 난 후 꼬질꼬질한 차림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찾았던 음식이었다. 첫 배낭여행지 페루에서는 고산병을 앓는 등 고생을 많이 해서 유독 기억에 남는 식사가 많다. 사실 고기와 감자, 그리고 날리는 쌀이 주식인 페루의 짜고 기름진 식사가 물려서 한동안 찰기 있는 한국 쌀과 매운 양념을 그리워했던 기억이 또렷한데도 ‘추억 필터’가 덧씌워지니 낭만적인 이국의 식사로 기억되는 건 아리송하고 재밌는 일이다.

페루의 안티쿠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안티쿠초 (Anticucho) 다. 안티쿠초는 소의 심장을 구운 음식인데 주로 길거리를 지나다가 노점에서 구워주는 즉석 꼬치구이로 접하곤 했다.

동물의 염통구이는 한국에서도 흔한 요리고 맛 역시 비슷하다. 때문에 살코기보다 저렴한 내장기관이 돈 없는 서민들의 단백질 보충원으로 활용됐다는 점에 기시감을 느껴서 더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날씨 예측을 못 해서 초겨울 날씨를 얇은 점퍼로 견디고, 무거운 배낭을 이고 지고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던 나날의 서러운 감정이 그 거리에 흔하던 꼬치구이와 곁들여 마시던 페루산 맥주 ‘꾸스께냐’에 투영된 듯하다.

혀가 아니라 뇌가 기억하는 또 다른 맛은 홍콩에서 맛본 새우완탕면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7월에 홍콩 땅을 밟았고 그 뜨거운 온도, 그 진한 습기,

작열하는 태양의 조명 탓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러다가 다종다양한 음식을 팔아서 홍콩의 ‘김밥천국’이라 불리는 식당인 차찬탱 한 곳에 들어갔다. 메뉴가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워진 내게 동행인이 완탕면과 병 콜라를 시켜줬고 빠르게 조리되어 식탁에 오른 새우완탕면의 얄팍하고 깊은 맛에 감동을 느꼈다. 인생 첫 완탕면이었는데도 한국 포장마차에서 먹는 잔치국수의 익숙한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레트로 마니아들이 열광할 법한 병 콜라와 유리잔, 미색으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자아내는 키치한 분위기도 이상하리만치 맛있는 완탕면의 기억을 완성하는 데 한몫했다.

홍콩의 새우완탕면

분위기로 맛을 기억하는 ‘막입’이지만, 백이면 백 반할 만한, 정말 추천하고 싶은 맛도 있다. 태국의 스트리트 디저트인 ‘로티’다. 태국식 팬케이크라 불리는 로티는 기름을 듬뿍 두른 큰 팬에 밀가루 반죽을 아주 얇게 펼치고 그 위에 달걀물, 바나나를 올려 튀기듯이 완성한다. 여기에 설탕과 연유를 듬뿍 뿌리면 환상적인 단맛이 완성된다. 어떤 재료와도잘 어울려서 누텔라, 치즈, 두리안 등을 얹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론 달달한 바나나 누텔라 로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태국에선 매일 망고, 땡모반, 로티와 팟타이, 그리고 태국 맥주 ‘레오’와 ‘창’을 먹고 마시기 위해 매일같이 2만 보, 3만 보씩 걸었다. ‘먹방’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들이 왜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COVID-19 백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해외여행은 요원하다고 한다. 혹은 백신이 보급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변이가 자주 일어나기에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고,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가 전 세계적으로 풀리긴 어렵고 껑충 뛴 비행기 표 값이 내려가지 않을 거라는 예측도 들려온다. 그래서 다시 사진첩을 뒤적인다. 그리고 그날의 풍경, 느낌,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기록해둘걸, 하는 후회가 들라치면 추억팔이는 그만두고 오늘의 일기를 쓴다. 미래의 아포칼립스에서 바라본 오늘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심심한 일상이었을 테니까.


위 글은 빅이슈 10월호 2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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