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제대로 된 마스크만 잘 썼어도 이런 사달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타깝고 답답하다. 영국은 2차 록다운(봉쇄)에 들어갔다. 11월 5일 현재, 누적 감염자 110만여 명, 사망자 4만8000여 명에, 신규 확진자가 2만 명이 넘는다. 정부가 허용한 외출 외에는 이동이 통제되고, 생필품을 파는 가게와 필수 공공기관, 그리고 학교 말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이 와중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더욱이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11월 5일에 록다운이 다시 시작되었다. 정부는 일단 4주라고 기한을 못 박았다. 한 달 동안 바이러스 확산을 바짝 잡아서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야심 찬 계획인데, 사람들은 이미 올해 안에 록다운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접은 것 같다(1차 록다운도 3월 20일에 시작되어 7월 4일에야 식당과 펍이 문을 열었다). SNS에는 ‘올해 마지막 외식’, ‘올해 마지막 쇼핑’ 같은 제목을 단 사진들이 올라왔다. 나도 록다운 전날 딸들과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점심을 먹었다. 2020년의 마지막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감염병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서 마스크를 꼭 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위험을 줄일 수는 있지만, 내가 감염되는 것을 막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안 써도 된다’는 것이다. 전염병이다. 감염의 고리를 끊으려면 걸리지 않는 것만큼 옮기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결론이 이상했다. 그러면서 아시아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이타 정신’이 강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가…?’ 어쨌든 이타 정신이 약한(!) 이곳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오히려 보균자처럼 보였다. 중국발 바이러스라고 해서 가뜩이나 동양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터라 나도 쓰지 않았다. 결국 전염병은 마른 풀밭에 들불 번지듯이 속수무책으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실내에서 ‘얼굴 가리개(face covering)’를 하는 것이 강제 조항이다. ‘Hands, Face, Space(손 씻기, 얼굴 가리기,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표어도 등장했다. (영국 사람들은 이렇게 운율을 맞춘 표어에 자부심을 갖는 것 같다.) 공식적인 용어로, 마스크가 아니라 ‘얼굴 가리개’라고 쓴 것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성능 좋은 마스크를 구입하면 필수 인력에게 돌아갈 개인 보호 장비(PPE)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입과 코를 가리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이제야, 지난봄에 정부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 사실은 마스크 공급 대란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한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얼굴 가리개는 그저 얇은 천을 두 겹으로 박은 것으로 허술하기 그지없다. 이걸로 이 감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 심히 의심된다.
지난 몇 달 사이에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거리에도 얼굴을 가린 사람이 절반쯤 되고(규정상 야외에서는 얼굴 가리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가게 안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얼굴 가리개를 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쇼핑몰에 갔을 때도 열에 아홉 이상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다.
얼굴 가리개를 하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법적 면제자’들이다. 11세 이하 어린이(영국 의료진은 특히 3세 이하 어린이는 건강과 안전상의 이유에서 쓰지 않는 것을 권한다), 신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건강에 해롭거나 어려운 사람들, 입술이나 표정을 읽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법적 면제’라고는 하지만, 이게 뭐 보건소 증명서 발급처럼 공식적인 확인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판단해서 해당자라고 생각하면 알아서 ‘면제 카드’를 만들고 외출할 때 목에 걸거나 지참하면 된다. 정부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샘플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카드에는 “나는 자폐 증상이 있어서 마스크를 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라는 문구를 비롯해 “장애가 있어서”,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돌보는 사람이 내 입술을 읽어야 해서” 얼굴을 가릴 수 없으니 이해해달라는 말들이 적혀 있다.
나는 그 전에는 마스크를 쓰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불편을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마스크를 쓰기 어려운 사람들을 고려하는 것, 방역에 구멍이 뚫린다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쇼핑몰에서 영국재향군인회(The Royal British Legion)의 포피 어필(Poppy Appeal, 재향군인회가 전몰장병을 상징하는 붉은 양귀비꽃을 판매하는 기금 조성 사업)을 봤다. 호호백발 노인이 정복을 입고 서 있었는데, 책상 앞에는 “오늘까지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내일 도시 봉쇄가 시작되면 쇼핑몰도 문을 닫고 포피를 파는 이 매대도 사라질 터다.
매년 11월이 되면 영국의 거리는 포피로 가득했다. 가게마다 붉은 포피 꽃으로 쇼윈도를 장식하고, 사람들은 가슴과 차량에 꽃을 달았다. 11월 11일이 영령 기념일(Remembrance Day)이 된 것은 1918년 그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기 때문이다. 재작년에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열었다. 별일이 없었다면 올해에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5주년을 크게 기념했을 터다. 그러나 올해는 하지 않는다. 런던의 전몰장병기념비(The Cenotaph) 앞 헌화도, 노병들의 행진도, 온 나라 교회에서 드리는 기념 예배도 없다(교회도 예배가 금지되었다). 크고 작은 의례가 다 취소됐다. 살아 있건 사라졌건 모두 올 한 해는 많은 것을 유예한다.
포피 매대에 있는 노인에게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고 말을 걸었더니, 자신은 한국에는 안 갔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아시아의 많은 곳에서 일본군과 싸웠다고 했다. 노인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마스크를 써서 잘 나올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제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웃는 눈을 잘 알아본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어 좋아진 점을 굳이 들자면 눈의 표정에 민감해진 것이다. 얼굴의 반을 가리니 표정을 눈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길을 비킬 때도 먼저 가라는 표현을 고갯짓과 손짓 그리고 눈으로 한다. ‘고맙다’도 ‘별말씀을요’도 다 눈으로 말한다. 다른 이의 눈을 주의 깊게 보고, 내 눈빛을 순하게 하는 것, 그것도 다 코로나19가 연습시키고 있다. 내 딸아이들은 눈 화장이 진해졌다. 마스크를 쓰니 볼이나 입술은 꾸민들 보이지도 않는다.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화장술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 틀림없다.
마스크를 벗고, 풀 메이크업을 한 딸들과 외출하는 기쁨은 언제쯤이나 다시 맛볼 수 있으려는지. 지금 필요한 것은 인내심인가 보다.
글/사진. 이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