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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Nov 26. 2020

선명하고 근사한 주제를 품은 여행자

인도 북부 라다크는 히말라야산맥 한가운데에 있는 불교 왕국이다. 해발고도 5000m가 넘는 고개를 여럿 넘어야 갈 수 있는 곳인데,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도로가 라다크 가는 길이다. 워낙 험준한 고지대여서 눈이 녹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만 도로가 열린다. 때는 늦봄이었고, 도로가 막 열린 즈음이었다. 나는 라다크에 가기 위해 교통편을 알아보았는데, 대중교통이 운행을 시작하려면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낭패였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비행기를 타고 갈까, 아니면 라다크를 포기하고 다른 곳을 여행할까? 어쩔까 망설이던 중에 나와 같은 처지의 여행자를 만났다. 일본인 청년 ‘히로’였다. 



히로와 나는 마음을 합쳐 적극적으로 교통편을 수소문한 끝에 아주 우회적인 방법을 찾았다. 한번에 라다크까지 가는 교통편이 없으니 조금씩 조금씩 가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부산을 가기 위해 일단 수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수원에서 하룻밤 묶은 뒤 다음 날 수원에서 대전 가는 버스를 탄다. 다음 날엔 경주까지, 그다음 날엔 대구와 울산을 거쳐 부산까지 가는 식이었다. 그래도 버스가 없다면 히치하이크라도 하면 되겠지. 라다크까지 며칠이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는 아주 비효율적인 여정이지만, 여행이 어디 효율만 따져서 하는 일이던가.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인 것을. 나는 그렇게 히로와 친구가 되어 천천히 라다크로 향했다. 



우리는 급할 것이 없었다. 당시 나는 일을 때려치우고 장기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히로는 휴학 중인 대학생이었으니까. 한번은 화물차를 얻어 타고 2박 3일 동안 가게 되었다. 화물차의 실내 공간은 운전사와 그의 조수가 차지했고, 우리는 차 지붕에 자리를 잡은 채 아찔한 고개를 몇 개나 넘었다.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끼니때가 되면 운전사는 손수 밥을 짓고 나물을 삶아 무쳤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대로 손으로 밥과 나물을 집어 먹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밥을 먹지 못하고 배낭에 든 비스킷 몇 개로 끼니를 때웠다. 도로 사정이 워낙 좋지 않은 곳이라 시종일관 멀미를 한 탓도 있었지만, 그들의 나물 요리는 내게 너무 낯선 음식이었다. 더구나 손으로 먹어야 하는 것 또한 난감한 일이었다. 



하지만 히로는 손으로 잘만 집어 먹었고, 밥이 모자랐는지 밥솥을 닥닥 긁어 먹었다. 오지까지는 아니어도 험지 여행이 체질인 녀석이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한 뒤 세수를 하고 바람도 쐬고 나서 다시 출발했다. 하염없이 고개를 넘다가 해가 저물면 트럭 위에 누워 별을 보며 잠들었다. 



히로는 매번 방학 동안 세계 곳곳으로 배낭여행을 다니다가 티베트를 여행한 이후로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했다. 티베트 불교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싶어 아예 휴학계를 내고 긴 여행길에 오른 참이었다. 티베트와 시킴, 네팔을 이미 여행했고 라다크 다음으로는 부탄에 갈 거라고 했다. 티베트 불교는 히말라야산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하나같이 여행하기에 고단한 지역들이다. 나라면 엄두조차 못 냈을 텐데 대단한 녀석이구나. 히로는 내가 만난 여행자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근사한 주제를 품은 여행자였다.



글/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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