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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Nov 26. 2020

사람에게 상냥하게

출처: Unsplash

어릴 때에도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요즘 제가 주고받는 메일이나 업무 문자들을 보면 세상 차갑고 사무적인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과거에는 예의상이라도 ‘물결물결~~, 웃음웃음^^, 네넹, 감사합니다!!!’ 이런 감탄들을 덧붙였는데 요즘은 정말 그런 것 하나 없이 딱 떨어지게 할 말만 하더라고요. 


물론, 이게 업무 연차가 쌓이면서 생긴 스킬일 수도 있고, 불필요한 ‘쿠션어’를 덧붙이기보다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실은 에너지가 없어서인 것 같아요.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은 사실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할 일, 할 말만 하지 않고 거기에 1%의 다정함을 덧붙이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에는 사실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그 에너지가 떨어져 노력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신입 사원일 때에는 온통 눈치 볼 사람들 천지니 주고받는 업무 메시지에 쿠션어를 덧붙이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오타나 실수는 없는지 몇 번이고 읽어봤는데, 요즘은 그런 노력들을 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 필자분이 《빅이슈》의 담당 기자가 잡지 발송 시 해당 페이지에 북마크를 해서 보낸다며, “왠지 다정한 분일 것 같다.”고 SNS에 쓴 글을 봤어요. 그 다정한 기자가 물론 저는 아니고, 편집팀의 다른 기자였는데 사실 요즘은 제가 귀찮아서 잘 못 하는 일입니다. 잡지를 받아본 필자가 자신의 글이 실린 페이지를 바로 볼 수 있게 북마크를 해서 보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한 번 헤아려봐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꼭 안 해도 되는 업무인데 공들여 한 번 더 하는 일이고요. 저보다 나은 동료의 모습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출처: Pixabay


이것 또한 얼마 전의 일입니다. 공들여서 진행하던 타 업체와의 작업이 마지막에 어그러지면서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대체할 페이지도 찾아야 하고, 이런저런 섭외도 다시 해야 하는 데다 업무 과정에서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자책이 컸습니다. 잘 진행되어서 빅이슈 판매원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당에 추운 날씨에 역 앞에서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빅판분을 보니 강남역 한복판에서 눈물이 왈칵 날 것 같더라고요. ‘윽, 울면 안 돼. 하늘을 보자, 하늘을 봐!’ 무심한 가을 하늘은 왜 그다지도 높던지. 


그런데 어쩌겠어요.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내 맘대로 안 될 때가 더 많은 걸요. 시간이 좀 흐른 후, 함께 업무를 진행했던 업체 담당자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메일로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전화로라도 꼭 사과를 하고 싶었다면서요. 피치 못할 상황으로 성사는 안 됐더라도, 제 기획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고 나중에라도 꼭 같이 일하자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분도 굳이 안 해도 될 노력을 해준 거잖아요. 다시 안 봐도 그만인 다른 회사 사람에게 시간을 들여 마음을 전한 거니까요.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상냥하게 대하는 일. 그런 따뜻함이 필요한 계절 같아요. 어차피 저는 앞으로도 상냥한 사람은 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은 믿어요. 


글/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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