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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May 27. 2021

계속해보겠습니다, 유희!

0. 

“감독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어요.” 3월 어느 날, 영화감독 L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리 수술과 코로나로 꼼짝없이 집에만 머물던 1, 2월을 보내고 나니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다 싶었다. 천근만근이 된 몸도 몸이지만 경직되고 위축되고 예민해진 마음이 더 문제였다. 세상만사가 귀찮고 다 싫은, 내 안에 부정의 기운이 가득 차올랐다. (실제 그러한가와 별개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어!’라고 생각해왔는데,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돌봄받지 않고서는 살아가는 것도, 잘 살기도 쉽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우울감을 크게 느꼈다. ‘우울’이라고 뭉뚱그렸지만, 그 말에는 불안, 공포, 두려움, 좌절, 절망, 암담, 분노 같은 게 모양과 정도와 강도를 달리해가며 웅숭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 감정이나 상태를 그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고 치부하고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감정과 상태 역시 살면서 느끼고 인지하고 감각하는 다양한 마음의 상태 중 하나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때론 그런 감정을 통해 나라는 인간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한계를 인정하기도 한다. “약간의 우울, 약간의 고독, 약간의 내성은 삶의 가장 세련된 재미에 속한다.”는 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이런 감정들이 잘 버티며 일궈온 일상을 한순간에 집어삼키려 온 힘을 다해 달려들 때가 진짜 문제다. 


ⓒ 오소명

나이 들어가고 여기저기가 점점 아프고 미래를 준비할 구체적인 방법도 방편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을 때, 영화와 책에서 수없이 보고, 듣고, 탐했던 단단한 애정의 공동체 같은 건 손으로 움켜쥔 모래알처럼 금세 흩어질 듯하고 실체조차 보이지 않는 듯할 때, 그때를 기막히게 노리고 들어오는 부정의 소용돌이는 매섭고 무섭다. ‘모든 게 글러 먹었다, 다 틀렸다!’는 부정과 회의로 가득한 구렁텅이로 제 발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듯했다. 위험한 시그널을 가까스로 감지했을 때, 나의 ‘작은 거인’ L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이것만으로도 엄청나고 대단한 위로가 돼준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다.     


1.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 주기적으로 만나 산책 겸 하루치기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슬렁슬렁, 어슬렁어슬렁. 3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잘 하고 있다. 늘 만나던 서울의 종로 일대는 잠시 두고 조금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곳도 좋고, 평소 관심 두고 있던 곳도 좋다. 첫 만남에서 이유도 목적도 없이 무작정 인천으로 갔다. 구체적인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아니었고 대신 ‘떠난다’라는 감흥과 여흥을 느끼는 게 중요했다. 

경계 없이 나눈 대화, 함께 먹은 자장면과 만두, 그날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기억을 채웠다. 일산의 빈티지 숍에도 다녀왔다. 영화 의상팀들이 종종 이용한다는 대형 숍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숨은 물건 찾기에 나섰다. 서로의 옷을 골라주다 또 신나서 ‘호호호’, ‘깔깔깔.’ 근래 이렇게까지 기운을 쓴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투어를 한 끝에 요즘 잘 입고 있는 재킷을 단돈 2만 원에 ‘득템’했다. 식물원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던가. 열대우림 존에 들어섰을 때 그 기막힌 습기와 기기묘묘한 식물의 생김새는 아찔한 흥분감을 불러일으켰다. “아, 라틴아메리카 문학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왜 그처럼 엄청나고 광기 어린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 것 같지 않아요?” 끈적이는 공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내뿜는 무정형의 거대하고 야성적인 식물의 에너지 속에서 우리는 미지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지중해 존으로 들어서자 그야말로 ‘하드보일드’한 미국 소설 한가운데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하다. 공기는 건조하고 식물의 모양새는 열대림과는 확연히 다른 단조롭고 단순하고 암팡지다. 짧은 시간 식물들만 봤을 뿐인데도 두 대륙을 오간 것 같다. 


ⓒ 오소명

우리의 산책과 여행의 말미엔 어김없이 맛있는 음식이 있다. L 감독은 “작가님과 만날 때마다 좋은 기억이 생겨요. 재밌는 곳에 가서 열심히 걷고 맛있는 것 먹으니까요(웃음)”라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주기적으로 좋은 걸 보고, 많이 걷고, 많이 웃으며, 맛있는 걸 먹는 유희의 시간. 몸과 마음의 재건을 위해 요즘 빼놓지 않고 하는 일, 다른 무엇보다 앞서 하는 일, 계속해보고 싶은 일이 바로 이 산책이다.     


2.

산책과 여행.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이 두 가지는 가장 중요한 삶의 양식이었다. 양식이라는 다소 거창한 말까지 끌어온 데는 산책과 여행을 통해 그간 얻은 게 많기 때문이다. 육체라는 덩어리와 움직임을 감각하고, 사고하는 방식을 터득하고, 길 위로 나섰다가 되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버리고 얻으며 깨달은 바가 크다. 산책은 지금 당장이라도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간편하고 효율적이며 즐거운 활동이다. 마음이 하 수상할 때면 일부러 걸으러 나선다.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온전히 나를 느끼고 나에게로 집중하는 시간은 조금은 외롭지만 견딜만한 고독이다. 

한참 그렇게 걷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얽히고설킨 마음과 머릿속이 하얗게 리셋 된다. 대신 동네의 풍경, 공기의 흐름,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 같은 것에 시선이 간다. 그러다 다시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는 ‘이곳’과 완전히 다른 시간대로의 물리적, 공간적 이동은 식물원에 들어섰을 때만큼 아찔하고 강렬하며 매혹적이다. 산책과 여행, 둘 다 길 위를 걷는 일이고 떠난 뒤에 돌아올 곳이 있다는 전제 아래 얼마간은 안도하며 그래서 또 얼마간은 과감해지는 것도 같다. 물론, 떠날 때와 돌아왔을 때의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같지 않음은 분명하다. 적어도 산책과 여행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언제나 조금은 단단해져서, 약간은 더 마음이 커져서 돌아왔다. 문제는 물론 돌아온 다음이지만.  

   

3.

걷기에 관해서라면,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2017, 반비)이 흥미로운 지침서가 돼줬다. 보행을 둘러싼 전방위적이고 방대한 역사서이자 보행에 관한 솔닛의 해석과 주석이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책의 서론에 솔닛이 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째서 나는 그토록 걷기와 그 연정인 여정의 길을 탐하고 사랑해왔을까, 홀로 걸을 때 느끼는 충만함 못지않게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경험은 또 얼마나 긴요한가. 


출처: Unsplash

솔닛의 사려 깊은 통찰과 해박한 지식을 통해 나는 마음의 행로와 상태를 살피고 친밀하고 다정한 타인과 걷기와 여정을 지금도 여전히 소망한다. ‘의지에 내재된 힘을 발휘하는 데는 일상의 경험을 통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솔닛의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니까, 걷기나 어딘가로 떠나보는 경험은 나중으로, 다음으로 미룰 게 아니다. 그것이 일상에 자리 잡고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끌어당겨 오겠다. 우울이라는 이름 안에 있는 갖가지 감정들이 제 몸집을 키워 일상을 순식간에 집어삼키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겠다. 이런 다짐과 그 실현으로 올해를 채우고 기억하고 싶다.     


4. 

그날 우리는 식물원을 나서며 새삼 밤의 식물원이 궁금해졌다. 밤에 식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니까요, 감독님, 영화 좀 만들어주세요. <밤의 식물원>, <식물의 밤> 어때요?(웃음)” 신나서 우리는 또 깔깔깔, 호호호. 다음 행선지는 남산식물원이다. 이러다가 정말 뭔가 찍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계속해보겠다,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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