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를 문해력, 혹은 정보 해석 능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문서나 책이 아닌 영상 콘텐츠가 대세가 될 때에는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포괄적으로 부릅니다. 올드미디어에 해당하는 잡지를 만들다 보니, 저 역시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심이 많은데요. 제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잡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로 접근하다 보니 현 세대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생존과도 연결됩니다. 지금의 10대, 20대는 태어날 때부터 영상으로 언어와 정보를 습득하면서 자라니까요. 이들에게 텍스트 중심의 잡지가 유명무실해진다면, 수요가 없어지니 살아남을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물론 그에 따라 창작자들도 온라인으로, 영상 매체로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지만요.
그런데 얼마 전까지 저의 생존이나 미디어 트렌드를 읽기 위해 리터러시에 관심을 두었다면 요즘은 이것이야말로 경제,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10년 후의 한국 사회를 가늠해보는 중요한 나침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만 알고리즘이 추천하고 그 방향의 확증 편향이 짙어지는 유튜브 세계만이 정보 습득의 창구가 된다면 그게 과연 괜찮을까. 어느 계층, 세대에나 통용되는 공통의 화제가 사라지고 자기가 알고 접하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게 되면 어쩌나. 이는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몰이해, 소통의 부재, 비공감으로 확장되지 않을까요. 내가 아닌 타인, 내가 모르는 세계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미디어 리터러시란 해독 능력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세계를 해석해보려는 접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김성우‧엄기호 공저, 따비 펴냄)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합니다. “안다는 착각, 그래서 더 알 필요는 없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만 남은 상태는 세계에 대한 이해라는 점에서 보면 무척 반리터러시적입니다. 안다고 착각한 다음부터는 자기의 앎을 정당화해주는 글과 말만 찾아다니게 되죠.” 그러니까 내가 알고 싶은 것의 영상이나 글을 찾아보는 것은 사실은 내 가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조카도 없고 양육자도 아닌 저는 10대들의 교육 현장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기사화되는 ‘10대 쉬운 단어도 해석 못 해’, ‘초등학교 교실에서 거친 유행어 남발’ 등의 자극적인 뉴스를 통해서나 교실 내 언어 오염이나 문해력에 대해 알게 됩니다. 이번에 ‘미디어 리터러시’로 스페셜 기사를 준비하면서 현재 교육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을 만난 이유 역시 현장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밖에서 ‘아마 이럴 거야’라고 추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제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관심을 가진 주제라 말이 길어졌네요. 더 자세한 내용은 이번 호 스페셜 기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물론 책이 유튜브에 비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요. 콘텐츠를 소비하는 속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뒤처지지 않은 기사를 만들려고는 하는데 속도가 빠르다고는 할 수 없는 《빅이슈》를 읽는 독자들이라면 왠지 공감해주실 것 같아서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쉼표를 찍고, 무엇이든지 공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필요하니까요. 이번 호의 기사들도 독자들에게 가서 ‘당신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글/ 김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