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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1. 2019

[트렌드] 유튜버 브이로그에 진정성을 찾기란

모니터 너머의 친구


글·사진제공 문재연 

    



어렸을 적 나는 인터넷에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RPG 게임이나 포털 사이트 카페에서 말 몇 마디 주고받으면 휴대폰 번호를 교환해 놀았고, 엄마가 알면 까무러치겠지만 겁도 없이 얼굴을 공개했던 적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좀 더 불신하는 마음이 생기면 덜하겠거니 했지만 나는 아직도 인터넷에서 친구를 잘 사귀는 편이다. 인터넷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전혀 믿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이유로 상대방한테서 일말의 진중함이라도 보이면 신뢰감이 급상승하게 된다. 익명성이 높을수록 상대방에 대한 과신은 생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인터넷이라는 황무지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꼭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유튜버의 브이로그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과거에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현실을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캡처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모두가 흥분했다. 드디어 진실을 박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곧 편집, 세트, 특수효과, 합성, 그리고 보정의 발전과 보급으로 카메라에 찍힌 것이 꼭 팩트와 일치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를 담고자, 혹은 보고자 하는 욕망은 남아있었다. 같은 이유로 진정성은 유튜브 커뮤니티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터넷이라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공간에서 카메라를 이용해 만든 영상은 적어도 초기에는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정용 캠코더의 보급으로 저퀄리티더라도 개인이 영상을 직접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것을 불특정다수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플랫폼이 유튜브였다. 짧은 콩트로 유튜브를 시작한 사람들도 많지만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를 병행했던 사람들이 결국 단순 유튜브 업로더가 아닌 유튜버로 명명되었다. 아직까지도 큰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브이로그는 특유의 비형식성 때문에 만들기도 쉽고 보기도 쉬운데다가 잦은 업로드를 부추기는 유튜브 수익구조가 요구하는 대표적 유형의 콘텐츠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를 보다 보면 유튜버를 ‘안다’고 믿게 된다. 브이로그의 전반적인 인기는 인터넷 유저들의 관음증 혹은 노출증 욕망을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유튜버의 브이로그가 쌓였을 때 관찰되는 현상도 흥미롭다. 어떤 이유로든 한 유저가 한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꾸준히 보기 시작한 후 그들의 다른 소셜 계정도 팔로우하고, 매주 반복적으로 그들의 활동에 관심을 두고 본다면 유저는 그들을 ‘안다’고, 심지어 친구 같다고 느낄 수 있다. 한편 워낙 어린 나이에 유튜버 커리어를 시작했던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유튜버들도 많이 보인다. 이들이 유저들과 형성하고 있는 관계는 확실히 TV나 영화 스크린 속 연예인과 시청자 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유튜버와 유저는 친구인가

우리는 과거 사람들보다 스크린 속 세상을 믿지 않도록 훈련됐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정말 그 구분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가끔 유튜버들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들기고 밖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보다 유튜버는 유저들에게 더 가까운 존재로 여겨진다. 직접 만든 콘텐츠로 일대일로 말을 걸어오는 유튜버에게 몰입하기가 더 쉽고 그들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튜브 특유의 ‘진정성’은 요즘 다수의 유튜버들과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사업가들이 수익을 꾀하는 방식과 교묘히 얽혀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이 ‘믿음’ 현상은 존재한다. 그리고 유튜버와 유저 간의 신뢰 관계는 비단 유저들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상업성이 더 적은 유튜버일수록 이 진정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2008년부터 활동한 유튜버 크랩스틱스(crabstickz)는 2015년 한창 유튜브의 상업화가 북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을 때 ‘나는 누구? 이건 무엇?(What am I? What is all this?)’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자신이 진실되지 못하고 캐릭터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상황에 관해 답답함을 토로한다. 스크린 속 세상은 허구이고, 인터넷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본질이라면 왜 유튜버들은 그저 관객을 속이려 들지 않고 스트레스 받을까? 어떤 이유로든 유저가 유튜버를 친구라고 믿게 되는 것처럼, 유튜버도 유저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튜버들에게 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수익 때문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드물다. 현실에서 마음껏 ‘나답게’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일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만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아이러니를 기반으로 유튜브는 성장해왔다. 많은 유튜버들이 직업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나다운 것으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상업성이 개입되면 나다운 것 이외의 것이 얽히게 되고, 상업적이지 않다 해도 인터넷의 특성상 과신, 기대, 환상이 끼얹히면서 사람들에게 결국 전달되는 것은 나다운 것이 되기 힘들다. 모든 유튜버가 누군가의 구독자이고, 모든 구독자에게도 팔로워가 있는 이 시점에서, 관객 없는 삶이 불가능해진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크린 너머의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정답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2010년대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온라인 영상 내지 인터넷 문화에 전반적으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본인 이름의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어 인터넷의 ‘익명성’이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세대가 인터넷의 더 넓은 공간으로 유입되면서 인터넷의 불신 혹은 과신하는 경향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도 들어온 틱톡(Tik Tok) 댓글만 봐도 초기의 유튜브 댓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유튜브보다 십년 뒤에 등장한 틱톡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주고 성급히 몰입하려 들지 않는 것이 분위기이다. 또한, 제나 마블스(Jenna Marbles)나 앤서니 파디야(Anthony Padilla) 같은 유튜버들은 10년 가까이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구독자들과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제나 마블스는 과거 자신을 캐릭터화해서 제작했던 컨텐츠에 후회는 없지만, 드디어 ‘인터넷에서 내 스스로가 되는 법을 안 것 같다’는 사실을 구독자들에게 종종 알린다. 이전에는 댓글이 신경쓰여서 시도 못했던 브이로그도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냥 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이다. 이들은 유튜브를 무조건 비즈니스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몇몇 유튜버들보다 더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는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진정성과 상업성을 모두 잃지 않은 채 장수하고 있는 이 유튜버들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인터넷 영상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연 

영화 팟캐스트 '씨네는맞고21은틀리다'에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모자라 브런치와 왓챠에서puppysizedelephan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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