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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10. 2021

연대의 구심점을 만드는 상담사

‘뜻밖의 상담소’ 오현정 공동대표

사회 변화를 위해 공익 활동을 펼치는 활동가의 삶은 고달프다. 2019년에 열린 ‘활동가 건강권 포럼’(고 박종필 감독 추모사업회 주최)에서 논의된 이야기에 따르면, 활동가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요인은 다양하다. 적은 보수로 인한 빈곤, 일과 쉼이 구분되지 않는 불규칙한 업무환경, 활동 내외에서의 스트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돈도 없고 쉴 시간도 없는데 일도 많고 마음 쓸 데도 많아서 건강이 무너지기 쉽다는 것.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면서 활동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까. 

그래서 오현정 상담사는 작년 7월, ‘뜻밖의 상담소’를 만들어 활동가 마음 건강검진, 자조 모임, 이야기 모임 등을 통해 활동가의 심리를 지원해왔다. 여러 파업 투쟁 현장에서부터 노동자, 활동가와 연대해왔던 오 상담사는 인간다운 삶의 최전선을 지키는 활동가의 곁이 되어주려 한다. 


그동안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 해고노동자가족들의 심리 상담을 도운 와락치유단’, 활동가와 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通統talk)에서 활동해왔다두 단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2011년에 와락치유단이 만들어지고 2014년에 후발 멤버로 들어갔다. ‘뜻밖의 상담소’를 함께 운영하는 김지연 상담사도 거기서 만난 인연이다.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되면서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컸고, 수십 일의 파업 끝에 무력으로 진압되는 과정에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하는 등 심리적인 어려움도 컸다. 게다가 끝까지 공장을 점거해서 싸웠던 노동자들에게 낙인이 생겨서 재취업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상담자, 치유자 그룹에서 연대 활동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와락센터* 안에 와락치유단을 꾸렸다. 

‘통통톡’은 2016년도 7월에 발족했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법적으로 허용되면서도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노동운동계에서 운동에서의 심리적인 지원이나 치유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었고, 그 방법에 대해 숙고하다가 노동단체, 종교 단체, 상담치유 그룹이 모여 ‘통통톡’을 창립했다. 

 (*와락센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 치유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  

    

오현정 대표 ⓒ김화경


 공동 대표와 뜻밖의 상담소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누군가는 활동가들의 실태를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마음 건강에 필요한 욕구나 어려움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 의기투합하게 됐다. 활동가들의 신체 건강과 관련해서는 이미 지원 제도가 있는데, 정신 건강에 대해서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과 공감대가 무르익으며 여러 단체에서 사업으로 시작됐고, 마침 상담소를 준비하던 시기와 맞물렸다. 특히, ‘활동가 건강권 포럼’이 상당한 마중물 역할을 해줬다. 거기서 활동가 당사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후 공익 활동가 사회적 협동조합 ‘동행’에서 활동가 실태 조사(2019)를 했는데, 젊은 여성 활동가분들의 우울 수치가 연령대 평균과 비교해 상당히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서 ‘인권재단 사람’에서도 작년 처음으로 활동가 마음건강검진 사업을 진행했고, 우리(뜻밖의 상담소)도 작년 다음세대재단이 공모한 인권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약수역 인근 뜻밖의 위치에 자리해 상담소가 맞나 싶어 여러 번 확인했다뜻밖의 상담소라는 이름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상담소에 오는 일이 일상적이지는 않은 거 같다. 아직까지는 살면서 뜻밖에 힘들거나 마음이 어려울 때 찾게 되는 곳인 거 같다. 그런데 그런 고통이 우리 삶에 있어서는 치유와 성장이라고 하는 뜻밖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는 의미에서 ‘뜻밖에’라는 이름을 지었다. 또 하나는 여기에 와보면 ‘이런 곳에 상담소가?’ 하고 놀라신다. 약국이나 카페라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다.(웃음) 


현대사회의 어느 누구도 정신 건강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활동가들의 위험도는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대부분의 인권 단체가 규모가 작고 형편이 열악하다. 개인 활동을 하는 분들도 있고. 활동과 개인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감이 있어야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데 처우가 보장되지 않는 게 위험 요인이다. 또 활동과 쉼, 일상의 경계를 세우기가 어렵다. 예컨대, 피해 당사자를 지원하거나 연대하는 일을 하는 분은 퇴근했다고 도움 요청이나 하소연하는 연락을 안 받을 수 없을 거다. 또 여러 활동가들이 활동가 자격에 대해 엄정하다. 사실 그게 있어야지 이 어려운 일들을 지속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한편으론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수용하기보다는 더 잘했어야 한다고 자책하거나 비판하게 하는 면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고용 불안과 관계 단절 등으로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늘었는데활동가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었나.코로나19가 우리한테 알려준 건 통제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거다. 활동가의 경우에는 집회나 시위를 할 때 인원이 제한되고 방역수칙이나 지침을 다 지켜야 하니까 계획에 고려 사항이 더 많아지면서 어려움이 큰 거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계획을 유보하는 상황도 생기고, 안 그래도 해야 하는 활동의 양이 많은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생겨서 거기서 오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높지 않을까 싶다. 연결감을 느낄 때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데 많은 만남이 온라인으로 이뤄지다 보니까 아쉬움도 크다.

ⓒ김화경


활동가의 고충과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다른 곳에서 상담을 받는 것과 다른 점이 분명 있겠다오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IT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면 IT 용어 몇 개만 알아도 라포를 형성하거나 이분들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 또 상담자들은 듣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어떤 직군을 만나도) 잘하는데, 가끔 그런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상담을 받는 활동가들이 어떤 불편감이 있냐면 너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본다는 거다. 어쩜 그렇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을 사냐고 추켜세우는데, 그게 나쁜 얘기는 아니지만 일반 직장인에게 헌신하고 희생한다고는 안 하지 않나. 좋아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인데 너무 대단하게 보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분도 있고, 역으로는 정말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고 상담자가 갖고 있는 틀 안에서 평가하려는 게 불편해지기도 한다더라. 

또, (활동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니까 한참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어렵다고도 한다. 나도 콜센터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처음에는 계속 질문을 해야 한다. 실적에 대한 중압감이 어느 정도인지 노동조건을 이해해야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조금 더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해도가 높은) 여기서 상담을 받고 조금 더 이해받고 공감받는 기분이 든다는 소감을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이제껏 상담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모든 한 분 한 분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다. 그래도 회복의 과정을 같이할 수 있을 때 보람차다. 예를 들어서 더 이상 활동을 못하겠다고 소진된 상태에서 오신 분이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그만두고 다른 단체로 가셨다.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를 어려워하셨는데 상담을 하면서 힘이 생겨서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거다. 그러고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 자신이 조금 더 하고 싶거나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리로 가셨다. 내가 여기를 그만두면 세상이 끝날 거 같고 여기에 쏟아부었던 에너지와 시간과 네트워킹되어 있는 모든 관계가 다 조직 안에 있는데 그럴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데 그만둬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쉬면서 조금 더 넓게 세상을 조망하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과정을 상담사와 함께 하는 게 의미 있다고 느낀다.      


여러 파업 현장에서 찾아가는 상담을 해왔고 지금도 활동가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듣는 입장에서 힘든 점도 있을 것 같다소진된다고 느낄 때는 없나.버겁다는 느낌이 찾아오면 마음에서 사이렌이 돌아가는 때인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삶의 무게감이 버겁게 느껴질 때 내가 좀 지쳤나 보다,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선은 상담자로 훈련되는 과정에서 잘 듣는 훈련을 다른 사람에게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한다. 마음과 몸의 목소리와 사인을 잘 자각하고 알아차려야만 나를 돌볼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과노동에는 장사가 없다.(웃음) (마음 상태를) 자각해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다 피해가기는 어렵다.(웃음)     


활동가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 단계에 있다정신 건강에 대해서 제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가 우리의 마음 건강에 너무나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환경에서 기본적인 인권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 산재 현장에서도 사고가 일어나면 개인의 과실을 먼저 따지는 것처럼 마음 건강에서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과실을 잡고 따지는 거 같다. 성장 과정이나 부모의 양육 과정에서, 성격 때문에 더 취약해진 게 아니냐고 한다. 이게 인간을 이해하는 데 소용이 없다는 게 아니다. 자기 히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히스토리가 다 있고 문제가 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지만 여태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때로는 즐겁고 신나게 잘 살아왔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의 활기가 시드는 게 개인의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단체 내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조직 문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건강이란 게 개인적인 게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과 사회구조에 영향을 받으니까 통합적인 측면들을 다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화경


2005년에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심리학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30대 후반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 같다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둘째 아이를 낳고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들과 책을 읽고 마음 나누는 활동을 하러 다녔는데 몇몇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무겁고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막막했다. 당시만 해도 정신과는 있지만 지역 공공 기관에는 상담이나 정신 건강을 다루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랑 졸업하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했어서 마음 한쪽에 내가 즐겁고 잘할 수 있는 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삶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거창하게 ‘이제 철학의 시대는 가고 심리학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다.(모두 웃음)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했고, 20대에는 공부를 잘 안 했는데 늦은 나이에 내 돈 들여서 공부하니까 너무 재미있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배울 데가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 그래서 만학도들이 열심히 하는구나 싶고(웃음), 사람 마음을 이해한다는 게 나에 대한 이해를 도와줘서 공부를 하면서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편안해졌다. 대학원 면접 때 어떤 교수님은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돈 많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돈은 없는데 하고 싶다고 꿈을 위해서 왔다고 했다. 면접에 있던 교수님 한 분은 내가 바라는 상담센터의 상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하시더라. 그러다가 이제 아지트 같은 상담 공간을 마련했고 여러 사람들을 모으고 만날 수 있는 중심을 만든 느낌이라서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 공부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이 멋지다늦은 나이는 없다는 어떤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엄마는 다 자기 좋은 것만 한다고(웃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순 없는 것 같다. 가족에게 덜 좋은 사람이라는 게 내 아킬레스건이기도 해서 가족에게 고마움을 좀 표현하고 싶다. 아기 때 엄마가 필요했던 순간은 지났지만 앞으로 엄마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으면 잘해야겠다. 진짜 앞으로 다시 기회가 온다면 절대 놓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뜻밖의 상담소가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연결을 키워드로 하는 거다. 일대일 개인 상담에서 하는 것과 집단에서 다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게 좀 다르다. 집단이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상담자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집단원과의 관계에서 유대와 지지가 큰 힘이 되어준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신입 활동가들, 사회적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싶은 상담자들을 연결해 서로의 공감대를 넓혀나가면 우리 사회에 자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뜻밖의 상담소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하면서 중심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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