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일시보호시설의 사무실 입구에는 A4 크기의 종이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환영합니다~!” 반기는 마음으로 맞이하려는 건 사실이다. 특히 진심으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느끼는 때가 거리에서 오랜 기간 노숙하다 오는 경우이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생명의 위험, 안전의 위협, 그리고 고난에 빠졌던 어떤 여성을 ‘구조’할 때 느끼는 그런 것이다. 오래 노숙한 분들은 씻고 옷 갈아입기기 수월치 않으니 그분들과 상담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가면 한나절 문을 열어두어야 냄새가 빠질 지경일 때도 있다. 그래도,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그 여성이 더 이상은 위험천만한 거리 생활을 하지 않겠다며 마음을 바꾸어 시설을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거리에서 아웃리치 활동을 하는 상담원과 그 지역 구청 공무원이 함께 거리 노숙을 하던 여성을 모시고 시설을 찾았다. 상담원은 살짝 흥분했나? 싶을 정도의 목소리로 그 홈리스 여성을 언제부터 만나왔는지, 그날 어떻게 해서 함께 올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건 겨울이라 했다. 추운 날 노숙을 하고 있어 인사를 나눠봤지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어서 어찌 해볼 수가 없었단다. 그러다 며칠 전 처음으로 그녀와 말을 틀 수 있었단다. 그리고 “정말 기적적으로” 시설을 가겠노라고 했다는 것이다.
거리 노숙이 몇 달 이상 되면 흔히 그 상황에 익숙해져서 노숙이 장기화되거나 만성화되고, 그러면 거리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니 상담원이 “기적”을 얘기한 게 실제로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상담원은 그 노숙 여성과 우리 실무자를 번갈아 보며 이제 이분은 어떻게 되는 거죠? 방은 혼자 쓰나요? 여기 있다가 다른 시설을 간다고 하던데 갈 수 있는 거겠죠? 등의 질문을 했다. “방을 혼자 쓸 형편은 아닙니다. 다른 시설들도 독방을 주는 곳은 없어요. 식사는 세 끼 다 드리고, 아프면 무료로 병원에 가실 수 있도록 하고요.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을 가기 원하면 알아봐 드리고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당사자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남의 이야기라는 듯이 앉아 있었다.
다음 날, 그리고 며칠 후 상담원도 공무원도 각각 시설로 전화를 해서 자신들이 연계한 여성이 잘 있는지 궁금하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어딘가로 나가버리지도 않고 식사 잘 하고, 잘 있다고 답했다. 그 여성의 상황만을 놓고 보면 거리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전한 곳에서 자고 잘 먹고 잘 지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뿐이었을까? 그녀는 잘 지냈을지 모르나 다른 이용인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녀는 온 날부터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려 했다. 다 같이 잠자는 시간에 자지 않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거나 새벽에 시도 때도 없이 샤워를 해서 다른 이들의 잠을 깨우기 일쑤였다. 밤에 잠을 설치니 낮에는 누워 있는 때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면 식사 시간을 놓쳐서 식당을 다 정리하고 난 뒤에 밥을 내놓으라 했다. 식사 장소인 식당에 이불을 펴고 누워 있기도 했고, 머리를 감은 후 말리지도 수건으로 싸매지도 않고 방을 횡단해서 방에 물이 흥건할 때도 많았다. 사람들이 출입하는 현관이나 계단에 혼자 어색한 포즈로 가만히 서 있어서 다른 이들의 통행을 방해하기도 하고, 방구석에서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오고 난 후 같은 층을 쓰는 다른 여성들은 수시로 사무실에 찾아와 그녀의 행동이 초래하는 불편을 호소하기도 하고,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밤에 잠을 못 자서 생기는 일이니 잠이라도 편히 자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한번 만나보면 어떻겠는가, 이렇게 그녀를 설득도 하고, 다른 이용인들과 무리 없도록 행동하지 않으면 정말 함께 지내는 게 힘들어진다고 호소도 하지만 치료에 동의하지도 않고, 생활 행동의 변화도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쯤 되면 처음 거리에서 구조되어 시설로 왔을 때의 환영의 마음은 매우 희석되고, 공동생활에 지장을 주는 그녀의 부적응과 부적절함만이 아주 크게 보이게 된다.
내가 일하는 시설에는 이렇듯 정신건강이 취약한 여성들이 꽤 많이 온다. 한 해 동안 시설을 거쳐가는 여성들은 200여 명 내외가 되는데, 이 중 반 정도는 소위 정신병이 있다. 조현병, 양극성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망상장애 등등의 질환으로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고성방가를 하는 예도 많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 욕을 했다, 누군가 밤에 들어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냈다 등등 사실이 아닌 망상으로 타인과 자신을 괴롭히는 일도 흔하다. 다행이라면 이런 정신병이 있는 여성들이 진료에 동의하여 정신병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극적인 감정이나 행동이 감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오해도 줄어 함께 지내기가 수월해지기도 하며, 일을 할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모두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시보호서비스를 받은 여성들 중 정신병이 관찰되는 분들의 반 이상은 자신이 병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해서 치료의 동기를 찾지 못한다. 거리에서 오래 노숙한 여성들의 대다수는 사실 그런 경우다. 치료를 거부하는 여성들. 치료를 받았더라도 중단한 여성들. 치료를 한 번도 받은 적도 없고 받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여성들.
그러나 어쩌겠는가. 치료를 강제할 수는 없으니. 정신건강복지법상 자신을 해하거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없는 한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데 억지로 치료를 받게 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는 없다. 강제적 치료와 입원으로 인한 폐해를 줄여 정신병 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려 법의 취지가 있으니 자해타해의 위험은 매우 소극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며칠 전 우리 시설을 이용하던 한 홈리스 여성이 옆집에 무단으로 들어가 베란다의 물품을 던지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었다. 남의 집이니 나오라고 설득했지만 나오질 않아 부득이 경찰을 불러야 했다. 경찰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거 같다고 설명하자, 옆집 주민에게 상황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옆집 주민은 애처로움이 발동한 것인지 그녀가 자신을 해치진 않았다고 매우 우호적으로 얘기해줬고, 경찰은 돌아갔다.
정신병이 있는 홈리스 여성들은 생활의 곤란과 고난이 정말 크다. 정신병의 부정적 증상들 때문에 자고, 먹고, 씻는 등의 일상생활을 꾸려가는 데 한계가 있고,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기 힘드니 일자리 유지도 쉽지 않다. 더구나 치료조차 받지 않는다면 의사에게 근로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 수급 신청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신병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재활시설에 입소할 수가 없고, 일을 통해 독립 준비를 하는 자활시설 입소도 여의치 않다.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일을 유지하지 못하고, 고시원비를 못 내 쫓겨나고, 거리 노숙을 한다. 일시보호시설을 이용하여 위기를 넘기나 정신병 증상 때문에 공동생활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설 이용을 중단하기도 하고, 단기보호 후 적당한 다른 거처를 찾지 못하고 재노숙에 이르기를 반복한다.
사실 정신건강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한 방에서 여럿이 지내면서 생활의 스트레스를 주고, 생활의 스트레스를 받는 건 정말 복지적이지 못하다. 독립 공간을 주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복지사든, 활동가든 도우미들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와 사회복지 서비스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질적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정신병을 갖고 홈리스 생활을 전전하는 여성들의 고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글/ 김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