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크림은 가을이 제철이다
핸드크림은 가을이 제철이다. 손끝이 메마르고 손바닥이 버석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뜨거운 여름이 보낸 계절의 신호이자 가을의 도착을 알리는 몸의 신호가 된다.
특히, 작년과 올해는 손 씻기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우다 보니 전보다 더 건조해졌다. 신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유분이 씻겨나가는 속도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결국 봄, 여름에는 사용하지 않던 핸드크림을 꺼내 한 걸음 빠른 계절을 보냈다. 게다가 하나씩도 아니고 세 개를 동시에 개봉해서 썼는데, 고작 한 계절을 보냈으니, 이 정도면 손에 올라오는 유분기를 만드는 세포나 몸의 기관이 가을을 맞이해 파업을 해도 이해가 간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만 아니었다면 누가 뭐래도 핸드크림의 계절은 가을이었을 텐데.(겨울에 준비하면 늦다. 늦어도 너무 늦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핸드크림의 세계에도 유행은 있다. 요즘은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핸드크림보다 한번 구겨지면 펴기 힘든 알루미늄 튜브의 핸드크림이 많이 보이는 것도 일종의 유행 때문이다. 구겨지고 또 구겨져 구멍이 날지언정, 겉에 인쇄된 잉크가 벗겨질지언정 알루미늄 튜브만의 감성을 알아보는 나 같은 소비자 때문일 테다.
그래, 핸드크림은 포장과는 크게 상관없다. 어떤 걸 써도 영원한 촉촉함, 보드라움, 보습 같은 것은 없으니까. 나는 경험이 많을수록 잘 안다는 말을 믿는다. 내가 핸드크림을 기가 막히게 잘 알거든. 그러니까… 촉촉하면서 끈적이지 않는 핸드크림 같은 것은 없다. 적어도 내 세계에는 없다. 뭐, 세상은 넓고 핸드크림은 많으니 약간의 가능성을 열어두자면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끈적이지 않는 핸드크림, 보송한 느낌의 핸드크림이 있긴 하다. 다만 지속성이 터무니없이 약할 뿐. 만약 끈적이지도 않으면서 손이 코팅된 것마냥 촉촉한 느낌이 지속된다면! 그래서 인생 핸드크림을 만난 것 같다면! 조용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둬보자. 그것은 곧 기분 탓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젖은 발자국처럼 번들거리는 유분기로 가득할 터이니.
이토록 핸드크림에 비관적인 이유도, 많이 써봐서이다. 혹시라도 핸드크림 관계자가 이 글을 보고 속 깊은 곳에서 우리 제품은 아니거든! 하고 울분에 찬다면 안타깝게 생각하여 깊이 빌어달라. 나 같은 핸드크림 유목민에게 그 바람이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버석해진 손바닥은 손금을 따라 한껏 더 깊이 갈라져간다. 손금이 더 깊어지기 전에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하자면, 손바닥과 손등을 자기 전 맨 얼굴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눈치 보지 말고, 뒷일 생각하지 말고 손등에 콩알 두 개만큼 넉넉하게 핸드크림을 짠 후 촵촵촵 소리가 날 만큼 충분히 두드려주면 된다. 그럼 손등과 손바닥 속 그 텅 빈 공간부터 수분이 차오르는 기분이 들 것이다. 바싹 마른 손바닥이 수분으로 차올라 유연해지면 비로소 내 손이 사람 손 같아지는 기분이랄까.
작년과 올해, 유독 핸드크림을 많이 샀다. 단지 손 씻기가 늘어서가 아니다. 자고로 핸드크림이란, ‘내돈내산’의 비율보다 가까운 지인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시크하게 ‘오다 주웠다’를 시전하는 대표 품목 아니던가. 집 안의 핸드크림이 사라질수록 먼 여행을 다녀온 이들을 반긴 기억에 그리움이 묻는다… 감상에 젖은 기분은 잠시 멀리 두고,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 핸드크림이 쪼그라들수록 나는 촉촉함으로 충만해진다. 쪼그라드는 시간이 점점 멀어져 언젠가는 촉촉하고 무더운 계절엔 정말로 쓰지 않아도 되는 우리네 삶이 가까워지길 꿈꿔본다. 손을 조금 덜 씻어도 일상의 봄이 만개하는 그런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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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유진
*전문은 빅이슈 261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