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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Nov 15. 2021

[말과 삶 사이] 느그들

나에게는 세 명의 제자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F는 정년퇴임을 앞두신 교수님의 제자로 있다가, 석사논문 심사를 앞두고 나에게 오게 된 제자이다. F를 처음 만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가 모르게 휴대폰으로 아제르바이잔을 검색해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카스피해 서쪽 연안에 있는 동유럽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은, 나에게 생소한 곳이었지만, 그 생소함과 무지를 들키는 것이 선생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일인 것만 같았다.


사진. 김강희

F가 살아온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그 역시 한국의 많고 많은 도시 중 바다와 산이 있는 부산을 선택했다고 했다. F는 한국어 피동 표현과 아제르바이잔어의 피동 표현을 대조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한국어에서는 ‘컵에 물이 다 마셔지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반면, 아제르바이잔어에서는 물이 있다가 사라진 빈 컵을 묘사할 때 ‘컵에 물이 다 마셔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아제르바이잔어 학습자를 위한 한국어 문법 연구는 희소하기 때문에 F와 논문을 구체화해가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둘째 제자는 처음부터 나에게 온 첫 제자이기도 한데, 베트남에서 온 L이다. L은 자신 없어 했던 첫 만남에서의 모습과 달리 굉장히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지난여름부터 석사논문 주제를 잡고 2주에 한 번 논문 지도를 해오고 있는데, 한국 사람이 교정을 봐주었는지 의심을 했을 만큼 학술적 담화에 적합한 글쓰기 실력을 보여주었다. 남에게 거절을 잘 못한다고 했던 L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절화행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거절을 할 때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를 상호 문화적 관점에서 비교하고, 베트남인 학습자를 위한 한국어 거절 표현 교육 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수행해나가고 있다.


Unsplash

처음에는 석사과정만 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L에게서 연구자의 면모를 많이 발견한 나로서는 그에게 박사과정 진학에 대해 제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행 연구를 촘촘하게 읽어내고 분석하는 능력, 연구의 좌표를 그리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연구를 학술적 근거에 입각하여 풀어내는 능력, 무엇보다도 정직하고 묵묵하게 연구 문제를 추적하고자 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L은 나에게 이미 훌륭한 한 명의 연구자였다.


마지막 제자는 학부 때부터 가르친 중국 사람 C이다. C는 학부 수업에서도 1교시 수업을 맨 앞줄에 앉아 듣던 성실한 학생이다. 단짝 친구와 늘 같이 다니던 C는 웬일인지 단짝 친구를 떼어놓고 홀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나를 다시 만났다. C와 석사논문 주제를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냥’이라는 표현을 한국 사람들은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며 중국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냥’에 꼭 알맞은 표현이 없다고 했다.


‘그냥…’은 무언가를 얼버무리는 것처럼 사용되기도 하고, 어떤 화제를 이야기하다가 다른 화제로 전환하려고 할 때 쓰이기도 하고, 시간을 벌거나 또는 상대방의 말에 끼어들고 싶을 때도 사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어쩌면 자기의 주장을 강조하고 싶을 때도 ‘그냥 막’이라며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꽉 막힌 것을 영 안 좋아하고, 웃음이 넉넉한 C에게 담화 표지 ‘그냥’은 정말이지 어울리는 주제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인연


Unsplash

한국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 여전히 사람들은 한류를 떠올리고, 방탄소년단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어 교육은 그렇게 한류 위에, 대중문화와 함께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을 중심으로도 나날이, 어쩌면 더 깊게, 발전해가고 있다. 한국에서 한국어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단순히 취미나 한류에 대한 관심으로 온 경우보다는, 한국 사회의 문화와 역사, 삶, 그리고 언어 그 자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으로 한국어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부산에 오고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느그[1]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듣는다. 이곳 부산에서 가르치고 살아내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느그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정겨운 말인지, 그 안에 얼마나 ‘뜨신’ 애정이 담겨 있는지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 ‘느그들’을 하나하나 부르며 말해주고 싶다. 느그들이 바로 한국어 교육의 오늘이고, 또 내일일 것이라고. 느그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는 이 삶이 참으로 귀하고 감사하다고 말이다.


[1] ‘너희’의 방언, 다수의 상대방을 지칭하는 경상도 사투리. 



글. 김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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