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Nov 16. 2021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정역 9번 출구 최원철 빅판을 만나다 ②

세상에 냉담해질 때가 있다.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출신·성별·질병·정체성·사회적 신분 등 내 잘못이 아닌 것들로 누군가 나를 차별할 때, 도움이 절실한데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 이런 순간이 쌓이면 세상에 좋은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나쁜 것을 예상하는 편이 차라리 편하다. 그러면 최소한 상처는 덜 받을 테니까.


최원철 빅판을 인터뷰하는 동안 나는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일이 안 풀리고 내가 혼자라고 믿었던 시절, 세상에 가졌던 냉담함을 말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잘하고 있다고, 잘될 거라고, 당신은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지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이 자꾸만 반대로 들렸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는 말은, 그만큼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는 얘기로 말이다. ‘최원철’이란 사람이 빅이슈 판매원이 되기 이전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10대에 길거리로 나선 이유


김은화(이하 ) 《빅이슈》를 어떻게 알고 빅판 일을 시작하셨어요?

최원철(이하 ) 거리에 있을 때, 노숙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한 시민단체를 만났어요. 그분들하고 같이 강화도로 도보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빅이슈 직원들을 만나서 하게 됐어요


 그때 같이 빅이슈 들어오신 분들이 지금도 있으세요?

 다 그만뒀어요. 이름도 가물가물해요.


 노숙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꽤 돼요.


 길에서 생활하셨을 때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생각나는 게 있으신가요?

 그런 건 없어요. 다 잊어버려서.


 노숙하기 전에는 어떻게 지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보육원에서 살다 나왔어요. 거기 선배들이 구타가 심해서 어릴 적에 나왔어요. 열네 살 때. 


 열넷이면 어릴 때인데…. 나와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쁜 짓도 많이 하고 했지요. 일단 배가 고프니까. 선배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도 하고 그렇게 벌어먹고 사는 거죠. 안 그러면 못 사니까. 받을 돈 밀린 사람들 돈 대신 받아주는 일도 했었죠.


 그때도 덩치가 꽤 크셨나 봐요.

 네.


 길에서 살아남으려면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죠. 받아주는 데 없지, 잡혀서 경찰서 가면 구속은 안 되잖아요. 그러면 보육원에 들어갔다가 도망쳐 나와 다시 그 일을 하는 거예요. 보육원은 대구 쪽에 있었어요.


 어릴 때는 자기보다 한두 살 많은 형이 되게 커 보이잖아요. 괴롭히고 그러면 견디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견디기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형들한테 덤빌 생각 자체를 못 해요. 덩치도 크고, 거기서 싸움이 일어나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요.


 그런 일이 벌어져도 원장이나 다른 어른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나 봐요. 

 네. 지금이야 감시 카메라 설치해놓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CCTV라는 게 없었잖아요.


 아유, 그랬구나. 그럼 그때 서울로 올라오신 거예요? 

 서울 와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죠. 대구에 있으면 잡히니까.

 

 스무 살이 된 이후 혹시 생활에 변화가 있었나요? 

 성인이 된 이후로도 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어요. 계속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지냈죠.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마흔두 살이에요. 1980년생. 


최원철 빅판이 전철에서 찍은 한강 사진


다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지만
희망을 아주 놓을 수는 없어서


 빅이슈 판매원으로 일하시면서 좋았던 순간이 있었나요? 

 아니요. 좋은 기억은 딱히 없어요.


 그러면 어떤 이유로 빅이슈에 다시 돌아오셨나요?

 제가 폐소공포증이 있어서 집에 혼자 못 있거든요. 그래서 밖에 나와 있거나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고 그때 떠오른 게 빅이슈였어요. 혼자 집에 있으면 할 것도 없지, 그래도 《빅이슈》를 팔면 사람들도 만나고, 빅이슈 직원분들도 만나고, 일도 할 수 있으니까 오게 된 거죠.


 《빅이슈》를 판매하면 사람들하고 접점이 생기고 병원비에도 보탬이 되니까 나오시는 거군요. 그럼 《빅이슈》를 판매하기 전에는 어디를 주로 가셨나요? 

 집 근처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거든요. 거기 직원분들이 저를 처음에는 무서워했는데 자주 나가니까 점점 편하게 맞아주시더라고요. 거기서 일하는 분들이 센터장은 장애인이고 나머지 분들은 아닌데, 그분이 일단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집에만 있지 말고. 제가 컴퓨터를 할 줄 아니까 와서 정보 제공 같은 거 해주고 하라고 하더라고요. 코로나19 때문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자주 가기 어려우니까 《빅이슈》를 팔려고 온 거죠.


 아주 잘 오셨어요. 장애학 아카데미도 다닌다고 하셨는데, 거기서는 어떤 걸 배우나요?

 서울 영등포에 있는데 거기는 장애인만 들어갈 수 있어요. 선생들 빼고는 다 장애인이에요. 인원수는 몇 명 안 돼요. 거기서 검정고시를 준비해요.


 거기서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는군요! 잘됐네요. 저도 검정고시 출신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이 나이 먹고 무슨 검정고시냐고 그러는데,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그러는 거예요. 검정고시에 도전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서 7년 뒤에 센터에 들어오라고요.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했더니 센터장이 “할 수 있어요. 우리도 하잖아요. 도와줄게요.” 그러더라고요. 거기 직원분들도 대부분 검정고시 출신이래요.


 그 말 좋네요. 내가 하고 있으니까 당신도 할 수 있어. 그럼 그 일을 할 때까지 빅이슈 판매원으로 일하시는 건가요?

 모르겠어요. 제가 척추협착증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일단 내년에 MRI 찍어보면 알겠죠. 수술하면 두 달 정도 입원해야 하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죠. 관두려나, 계속 일할 수 있으려나.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다녀야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연락만 미리 해주시면 괜찮겠죠. 디스크 증상도 있으신가 봐요. 

 네. 2016년에 건물 8층에서 일하다가 떨어져서 수술했거든요. 병원에 두 달인가, 석 달인가 있었나 봐요.  


 평소에 운동하는 게 있으세요?

 아니요, 전혀 못 하죠. 


 활동보조인이 혹시 운동에 도움을 주지는 않나요? 

 활동보조인도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면 운동도 도와주고 이것저것 해주는데, 새로 알게 된 사람이면 잘 안 해주려고 해요. 거리를 두려고 하죠. 또 활동보조인이 여자분이다 보니까 그런 건 말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얘기를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그런데 “혼자 할 수 있잖아요. 혼자 해요.” 딱 그래요. 그러면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떠세요?

 다 포기하고 싶죠. 활동보조고 뭐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빅이슈도 좋은 거 하나도 없다더니 돌아오시고, 오늘은 활동보조인도 새로 만나신다면서요.

 기존에 해주시던 분인데 멀어서 그만뒀다가, 얼마 전에 연락이 온 거예요. 오전만 한다고 해서 오늘 오기로 했어요. 


 다시 만나는데 설레지 않으세요? 

 네. 그런 것도 있죠. 


 좋은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시네요. 웃으면 소년 같으신데.  

 하하, 그건 오바죠.


 정말인데. 무표정으로 있으면 좀 무서워 보이는데 웃으면 인상이 굉장히 선해 보이세요. 혹시 취미가 있으세요?

 취미는 따로 없어요. 유튜브도 안 보고,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도 없어요. 한마디로 행복한 일은 전혀 없죠. 


 선생님이 일상에서 좋아하는 게 생기면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여쭤봤어요.

 제가 다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이용하는 장애인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이 저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데, 일반 사람들하고는 아예 말을 안 해요. 거기 오시는 장애인분들은 다 제 또래예요. 우리끼리는 서로 아니까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그런 말 안 하거든요. 근데 나이 드신 분들은 제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저한테 휠체어 타지 말고 걸어 다니라고 그래요. 근데 병원에서는 걸어 다니지 말라고 하거든요. 제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총 아홉 차례 입원했어요, 쓰러져서. 만약에 넘어져서 뇌출혈이라도 오면 누가 책임지느냐고요. 사람 많은 데서는 신고라도 해주는데 사람 없는 데서 쓰러지면 책임져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계속 전동 휠체어 타고 다니죠. 


 그렇겠네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조언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죠. 그래도 함께 있을 때 맘 편한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상황도 잘 이해해주고 간섭도 안 하고. 그분들하고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세요?

 사진 모임을 해요. 카메라는 아니고 휴대폰으로 찍어요.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찍은 것도 있고, 경의선숲길을 찍기도 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같이 나가서 찍거든요. 화요일은 검정고시 대비 수업에 참석해야 하고, 수요일은 사진 모임에 나가야 하죠. 매일 활동하려고 해요. 집에 안 있고. 


 월·목·금요일은 또 《빅이슈》를 판매하러 나오시잖아요.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게 보내시네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하고 싶은 건 딱히 없어요. 그냥 센터에서 말한 대로 검정고시 보고, 장애인들하고 어울리려고요. 


 앞으로 단골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최 단골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요


최원철 빅판이 전철에서 찍은 한강 사진


최원철 빅판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어릴 적에는 보육원의 폭력적인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번 도망쳤고, 홈리스로 지내다가 빅이슈를 만난 뒤로는 그만뒀다가도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왔다. 그는 말로는 기대도, 희망도 품지 않는다고 하지만 끝끝내 놓아버리지는 못한 모양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날은 그에게 여러모로 중요한 날이었다. 보름간의 임시 빅판을 거쳐 정식 빅판이 되는 날이고, 새로운 활동보조인을 만나는 날이었다. 그는 빅판 한두 번 해보는 것 아니고, 활동보조인도 전에 만났던 사람이라 별 감흥 없다는 듯 말했지만 꼬치꼬치 캐물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기대가 덜하면 실망도 덜하니까 입으로라도 기대를 내뱉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그에게 누군가는 “제가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잖아요.”, “혼자 해요. 혼자서 할 수 있잖아요.”라며 모진 말을 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할 수 있어요. 우리도 하잖아요. 도와줄게요.”라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누가 나를 배척하는지 환대하는지는 눈빛만 봐도 안다. 굳이 《빅이슈》를 사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길 가다가 빅판과 눈이 마주치면 응원의 눈빛이라도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 포기를 모르는 최원철 빅판에게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알려줄 사람이 많아지길. 물론 단골이 늘면 더 좋고.  


 <빅판 자서전> 연재는 이번 호를 끝으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이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은화  

구술생애사 작가. 딸세포 출판 대표. 저서로 어머니의 생애를 생계 부양자 관점에서 정리한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망원시장 여성 상인의 구술생애사를 담은 <이번 생은 망원시장>(공저)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과 삶 사이] 느그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