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런던한겨레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여러 놀이를 하면서 논다. 책상에 앉아서 한글 공부를 하던 아이들은 마당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사방팔방으로 (아무 목적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오래전에 과학 시간에 배운 기체의 분자운동이 생각났다. 교실에서는 고체였던 아이들이 밖에서는 기체가 된다.
개나리반 담임선생님이 3교시에는 바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나 보다. 아이들은 2교시가 끝나자마자 마당에 나가 자기들끼리 술래를 정하고 놀이를 시작했다. 나는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이 놀이를 척척 알아서 하는 것이 대견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술래가 뒤돌아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멈춰 선 아이들을 살폈다. 석고상처럼 굳은 아이들은 눈동자도 굴리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는데, 입 꼬리는 다들 장난스럽게 올라가 있어서 얼굴이 생기로 가득 찼다. 한 아이 몸이 흔들거렸다. 그것을 본 술래가 오른 팔을 뻗었다. 엄지는 하늘을 향하고 검지는 그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탕탕. 너 죽었어!” 움직인 참가자를 총을 쏘아 ‘탈락’시키는 것을 보고 실소가 터져나왔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덕분/때문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규칙이 바뀌어버렸다. (물론, 나는 곧 선생님의 본분을 잊지 않고, 원래의 규칙을 잘 설명해주었다.)
'오징어 게임'은 영국에서도 몇 주 동안이나 넷플릭스 시청 1위를 기록했다. 우리 식구는 물론, 아이들 친구들과 내가 아는 이웃들도 다 봤다. 대학에 간 큰딸 애린이는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친구들과 공용 부엌 식탁에 앉아 같이 봤단다. 비상한 인기를 실감했다.
어릴 적에 즐겨 했던 놀이들이 목숨을 건 잔혹 서바이벌 게임으로 재탄생했다. 나는 폭력 수위가 높은 영화는 좀처럼 보지 않는데, 뭐에 홀렸는지 이 게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밤을 새워 ‘정주행’ 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워낙 미술감독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시각적 장치가 많아서 내게도 기억에 각인된 장면이 적지 않다. 별로 중요한 장면도 아니고, 특별히 멋진 장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쩌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뜻밖에 ‘한미녀’의 입을 통해 들었기 때문일 거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네 번째 게임은 2인 1조 경기였다. 전체 생존자가 홀수라서 짝을 짓고 나면 결국 한 사람이 남게 된다. 혼자 남은 사람은 아무래도 ‘탈락’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절박하게 파트너를 찾았다. 게임을 끝내고 사람들이 묵묵히 숙소로 돌아왔을 때, 짝을 구하지 못해서 혼자 남았던 (그래서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한미녀가 거기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이런 말을 한다.
“가면 쓴 놈들이 나보고 깍두기래. 짝이 안 맞아서 혼자 남은 사람을 깍두기라고 하잖아! 야, 너희들도 들어봤지? 깍두기! 그러더니 곱게 숙소로 데려다주더라. 뭐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옛날 애들이 놀이할 때 지키던 아름다운 규칙이라나? 하, 씨발! 졸라 멋있지 않냐?”
깍두기가 영어로 어떻게 표현되었을지가 궁금했다. 영어권 문화에 깍두기라는 존재가 없으니 당연히 이 말을 고스란히 대체할 단어도 없다. 영문 자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e weakest link(가장 약한 연결고리)” 번역가의 고심이 전해졌다.
편을 갈라야 하는 놀이에서, 짝이 안 맞아서 남는 아이가 있거나, 누가 봐도 능력이 달려서 어느 편에서도 데려가고 싶어 하지 않은 아이(보통은 눈치 없이 따라 나온 동생들)가 있으면, 깍두기를 시킨다. 깍두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다. 놀이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실수를 해도 웬만하면 넘어간다. 깍두기는 어느 편에 속하든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아무 편에나 들어가도 되고, 양편에서 다 뛸 수도 있다.
놀이를 일상으로 확대하면 (굳이 이러는 건 예능을 다큐로 바꾸는 나의 고질병 탓이다), 깍두기가 되는 사람은 소속과 역할이 분명하게 꽉 짜인 사회에서 애매하게 존재하는 ‘잉여’적 존재이거나 혹은 여러 이유에서 기존의 사회 틀에서는 온전히 한 몫의 역할을 하기 어려운 약자들이다.
나는 영국에 온 후 늘 내가 이 사회에서 깍두기로 산다고 생각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되어 있지 않고, 딱 정해진 사회적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있든 없든 세상 돌아가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우리는 ‘노는 손’이다. 그런데 좋은 점도 있다. 어디에 묶인 게 아니라서 시간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자기 역할을 하느라 바쁠 때, 우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러나 ‘하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남편이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푸드 뱅크’에 기부할 식료품을 모아보자고 제안하고 한동안 그 일을 맡아 한 것도, 그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기가 장애연금을 받을 때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신청서류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일을 한다. 덕분에 펍에서 만나 우연히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 여럿이 연금을 받게 되었다. 이건 그의 본업도 아니고(본업이 없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일도 아니다. 그냥 그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한다. 사회적 책임이 없는 깍두기들은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
내가 몇 년 전에 런던한겨레학교 자원 교사를 한 것도 그냥 깍두기로 한 것이었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학교가 돌아가고 아이들이 배우는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혹시라도 사람 손이 더 필요한 곳이 있으면 돕고 싶었다. ‘잉여’는 유용하다. 노는 손이 있어야 다들 바빠서 놓치는 빈 곳을 채우고, 일이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지 않도록 여유를 준다. 나는 세상을 그런대로 살 만하게 만드는 데는 깍두기들의 공이 크다고 본다.
한때 깍두기였던 나는 어쩌다 이 학교 교장이 되었다. 이제는 내 역할이 분명하고 책임질 일들도 있다. 담임선생님들과 어찌어찌 반을 꾸려나가는데, 아이들의 수준과 성향이 제각각이라 하나하나 다 맞추기가 어렵다. 고민 끝에 자원교사 모집 공고를 냈는데 여러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지금은 깍두기 선생님들만 다섯 명이다. 한결 잘 돌아간다.
영어 격언 중에 “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하다.(A chain is only as strong as its weakest link)”는 말이 있다. 이 참에 깍두기의 위상을 높여 보고 싶어서 자꾸 비슷한 문장을 만들어본다. ‘사회는 깍두기들이 있는 만큼 잘 돌아간다.’ '오징어 게임'에서 시작해서 멀리도 왔다.
글 | 사진. 이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