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금요일, 넷플릭스에 '지옥(Hellbound)'이 공개되었다. 바로 다음 날인 20일, '지옥'은 넷플릭스 월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1위를 내어준 작품은 역시 한국의 TV쇼 '오징어 게임'이었다. KBS2에서 동시 방영하는 '연모'도 9위에 올라 해당 일에는 Top 10 프로그램 중 세 편이 한국 드라마였다. 개별 국가의 순위를 살피면, K-드라마의 인기는 더욱 두드러진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뜨겁다. 서구 매체는 마치 이것이 최근의 상황인 양 호들갑을 떨며 분석을 내어놓지만, 이는 지난 몇 년간 BTS가 미국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타는 등 미국에서 얻은 인정이 수치로 입증되면서 가시화된 결과일 뿐, 한국 드라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탄탄한 팬덤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 '대장금'이 ‘한류(韓流, Korean Wave)’라는 이름으로 이끈 K-드라마 붐이 이미 존재했다. 다만 이제까지는 한국 문화 영향력이 국지적 현상으로 과소평가되는 면이 있었다면, 현재는 글로벌 플랫폼의 명백한 수치 통계로 인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만이 다르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국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인가? '오징어 게임' 이후 많은 외국 언론에서 이런 분석을 시도했다. 한국 관계자의 말을 빌려 작성된 11월 3일자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제작 시스템을 받아들였으나 자국화된 방식으로 발전시킨 한국의 문화 산업 구조를 조명하고,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 쇼를 사들이면서 한국의 보수적인 방송국 검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더 다양한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드라마 내적으로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에서 히트하는 한국 드라마에 내용적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드라마 붐을 일으켰던 '사랑의 불시착'은 남북한 분단 상태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스위트홈'은 소위 크리처물이라고 하는 디스토피안 호러 장르였다. '오징어 게임'도 역시 디스토피아물이지만 데스게임의 문법을 발전시켰고 '지옥'은 '오징어 게임'과 사회비판적 성격은 함께하지만 오컬트적인 성격이 강하다. '연모'는 남장 여성이 등장하는 퓨전 사극 로맨스이다.
결국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힘은 로맨스, 스릴러, 오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있고, 서사 구조가 수준 이상 탄탄하다는 데 있다. 작품이 출시되자마자 클릭하는 시청자가 일정한 수 이상이 되어야 시청률과 화제성에 관성이 붙는다. 출시 하루 만에 1위를 할 수 있다는 건 한국 드라마는 어떤 작품을 선택해도 괜찮은 연기, 촬영 및 미술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이다. 무엇보다 한국 드라마에는 확실히 화려한 윤기가 흐른다. 가난한 주인공도 매회 다른 패션을 선보이는 한국 드라마의 미술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드라마가 시각의 오락이라는 점을 십분 강조한다.
한국 문화가 정신적, 기술적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춰가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어느 국가에나 서사를 잘 만들어내는 장인은 있고, 스토리텔링이라는 면에서는 모두 재미를 줄 수 있다. 한국 드라마는 아직 완벽하지는 않을지언정, 다원주의를 형식상으로라도 인식하는 정도의 제스처는 있다. 한국 드라마의 여성들은 자기 일을 하는 독립적인 개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서사가 점점 포함되는 추세이다.
또한, 한국 드라마는 케이팝이 세계적 팬베이스를 얻으면서 아이돌 겸업 배우들이 활동할 영역이 넓어졌다는 특징을 잘 이용했다. 배우-가수 겸업은 흔하지만 케이팝과 K-드라마가 시너지를 내면서 젊은 배우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수많은 팬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돌 소재의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케이팝의 인기를 반영한다. 잠재적 시청자가 이미, 저기 있는 것이다.
지금 디즈니+와 애플TV+까지 국내에 진출하면서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 닿을 수 있는 길은 더 많아졌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드라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높아졌으며, 이에 따른 제작도 활발하다. 웨이브와 티빙 등의 국내 플랫폼에서도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지원한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성공이 글로벌 오디언스를 염두에 둔 치밀한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다는 장점은 있지만, 역으로 글로벌 OTT 플랫폼에 공개되지 않으면 확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국내 플랫폼은 해외에서는 접속하기 어렵거나 다양한 언어 자막도 제공하지 않는다.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지금 한국 드라마의 시청자는 단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인식 또한 중요하며, 앞으로의 서사에서 다양한 국가의 시청자의 욕망을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해야 한다. 넓어진 시청 층만큼 K-드라마의 과제도 많아진다.
글. 박현주
전문은 빅이슈 264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