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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10. 2021

문학이 아이돌 팬덤을 다루는 방식

우사미 린 '최애 타오르다' vs 이희주 '성소년'

2017~18년 즈음, 소위 ‘덕질’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서너 군데 출판사에서 받았다.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인기가 보도되고, 각종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이 활발히 만들어지며 평생 아이돌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모두 누군가의 팬이 되었다는 고백을 쏟아내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기에, 그런 책을 쓰기에 적절한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짤막한 글에서는 나의 덕질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팬덤을 주제로 책을 써달라는 제안은 일단은 다 거절했다. 형식상으로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댔지만, 내 마음속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아이돌에게 품은 마음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지 않다.’는, 약간은 감성적인 논리였다. 내 애정을 팔아봤자 돈이 되지도 않을 거라는 이성적인 판단도 있기는 했다.



내게 왔던 제안, 그리고 이후 케이팝 팬덤을 분석한 많은 책에 대해 내가 가진 불만은 이것이었다. 보통 이런 책들은 팬덤을 하나의 일체적 집단으로 보고 스타에 대한 열광을 해체해서 몇 가지 분류로 파악하려고 시도한다. 적지 않은 분석가들이 팬심을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난 대리 욕망의 실현이라든가, 정교한 퍼포먼스에 대한 감탄이라든가, 소통에 대한 욕구라든가로 눌러 압축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이 타인에게 갖는 애정은 그렇게 간단할 수 없으며, 특히 만나기도 힘든 스타에 대한 열광의 속성은 개별적 동기에 따라 달라진다.


실용서나 에세이에 비해 문학은 팬의 열망을 좀 더 집착적으로 파고든다. 최근에 주목받은 두 소설은 2021년 아쿠타가와 수상작인 '최애, 타오르다'(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미디어 창비)와 한국 소설 '성소년'(이희주 지음, 문학동네)이다.



두 작품 다 스타를 향한 팬의 강박적 애정을 통해 인간형을 탐구하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애, 타오르다'의 주인공인 아카리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마사키를 담당하는 팬이다. 일본에서는 최애를 남에게 추천할 만하다는 의미로 오시(推し)라고 하고, “타오르다”라는 말은 문제를 일으켜서 웹 등 파문을 일으켰을 때 쓰는 표현이다. 말 그대로 아카리의 최애인 마사키는 팬을 때리는 등 아이돌로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해서 논란에 휩싸였다. 일상이 마사키뿐인 아카리에게는 세계가 뒤흔들리는 사건이다.


최애가 논란이 된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지만 그렇다고 애정이 순식간에 식진 않는다. 다만 그 세계에 균열이 갈 뿐이다. '성소년'은 팬덤을 다룬 이희주의 데뷔작 '환상통'하고는 좀 다른 결의 작품으로, 파괴적인 정서는 오히려 마리 유키코의 '갱년기 소녀'(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문학동네)나 토머스 컬러넌의 '매혹당한 사람들'(이진 옮김, 비채)과 닮았다. 90년대 말, 나이도 계층도 다 다른 네 명의 여자가 당대 최고의 아이돌 요셉을 구조한다, 아니 납치한다. 안나, 미희, 나미, 희애.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요셉을 강원도 응랑의 산장에 감금하고 간호하며 그를 탐미적으로 숭배한다. 하지만 이런 유의 비틀린 욕망 속에서 모두가 살아갈 수가 없는 것, 결국 잔혹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여기, 이 사회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인간들이


'최애, 타오르다'는 팬심에 관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편의점 인간'(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살림출판사)이나 '여기는 아미코'(이마무라 나쓰코 지음, 홍미화 옮김, 알에이치코리아)에 나온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탐색하는 소설이다. 즉, 사회의 규범에 따라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직장을 가질 수도 없고, 친구를 사귈 수도 없으며, 현대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인간들이며 분석을 거부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온다. '성소년'은 삶의 수많은 실패에서 살아나온 여성들이 한 인간의 육체에 극단적으로 매혹되는 과정을 그렸다. 여기에는 범죄적인 욕망이 있고, 소설은 이를 전혀 옹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 팬이라는 여자들에게 동정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느끼는 건 공감이라기보다 미지의 두려움에 가깝다.


어떤 아이돌 팬들은 이런 식의 묘사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의 애정이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 생겨났다는 생각은 팬들이 지긋지긋하게 겪는 오해이다. 이는 팬덤 외부에서 팬을 바라보는 기존 관념을 더욱 고착화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현실감도 있다. 팬들은 각기 다른 개인이지만, 한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똑같은 특성을 띠고, 이 애정은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함이 있어서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소설들에는 이 애정에 대한 강한 긍정이 있고, 매혹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팬심은 본질적으로 신비로운 것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을 향해 느끼는 수만, 수백만의 애정의 속성을 명백히 밝혀낼 수는 없다. 적어도 문학은 이 모호함을 충분히 이해한다. 확실한 성격이 없기에 가끔은 명백히 발화할 수도 없지만 그렇대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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