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화자 Dec 07. 2021

글 쓰는 할머니 54

수염과 털보 영감

수염(鬚髥)과 털보 영감                     

                                    매원. 신화자


 내가 잘 아는 남자는 면도를 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 절반은 텁수룩한 수염이 너풀거린다. 그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다듬느라 이발을 하는 것 같지만 늘 텁수룩해서 답답해 보인다.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은 입 주변의 터럭들을 다듬기 위함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얼굴에 무성한 그것들을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방치(放置)(?)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스스로 자신을 털보염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는 청결하다. 겨울 목욕은 매일이거나 이틀에 한 번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양치는 식후 3분 이내에 한다. 그가 밖에서 들어오면 곧장 양치를 하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칫솔을 털어내는 소리가 탁! 탁!  하고 들리면 밖에서 밥을 먹었다는 신호다. 치아 관리를 잘해서 충치가 없으며 잇몸이 좋고 자신의 치아가 제 자리에 건재하고 있음을 자랑한다. 그는 오십 대 중반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근래에는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먹는 일도 점차로 드문 일이 되고 있다.  깔끔하고 단정한 신사(?)였을 때는 이틀에 한 번쯤 면도를 했었다. 날카로운 칼날은 간혹 피부를 흠집 내고 상처를 낼 때도 있었다. 남자들의 그것들은 쉴 새 없이 얼굴에서 자라고 또 자라고 있으므로 남자들은 고생을 하는구나.……라는 측은지심을 느끼게 하였다. 그가 수염을 밀어야 하는 작업이 귀찮다고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하더니 귀밑, 턱과 코 밑에서는 수염이 숲처럼 우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숲에는 어느덧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고고(孤高)한 표정으로 무료한 듯 명상에 잠기는 듯할 때, 그는 도사(道士)에 빙의(憑依)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염은 남성들의 성징(性徵)이고 매력이며 자부심인 것 같다.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들의 외양은 수수하고 치장을 하지 않는데 수컷들이 화려하게 치장을 한다. 수컷 새들의 깃털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암컷을 유혹하려고 괴이(怪異)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해서 주의(注意)를 끌기도 하지만 화려한 깃털이야말로 멋진 자기 과시가 아니겠는가.  말이나 사자 원숭이처럼 큰 짐승의 수컷들은 갈기 털로 위엄과 용맹함을 과시한다. 자신의 힘과 위용을 과시하거나 상대를 위협할 때는 더 크게 부풀리고 세워서 공격성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맹수들의 힘과 용맹은 갈기 털에서 나온다고 보인다. 힘이 세기로 당할 사람이 없었다는 삼손은 머리카락을 잘리고 힘을 잃었다니까 어떤 남자에게 터럭은 위대한 힘의 원천이었던 모양이다. 

  TV를 보면 ‘월드 스트롱맨 챔피언대회’라는 게 있다. 스트롱맨들은 몸무게가 200kg에 육박하는 거구들이며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힘겨루기를 한다. 대형 트럭을 끌고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들어 올리고 집어던지는 그들은 한결같이 수염이 텁수룩한 털보들이다. 그러므로 강한 남자의 힘과 카리스마와 수염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영국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 랜돌프 처칠의 수염과 독일 제2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의 상징 카이저수염. 그리고 채플린. 스탈린. 호찌민. 히틀러……. 그들은 개성이 있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했던 남자들이다. 수염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되고 그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다. 수염을 기르고 멋을 부린 이들은 나름대로 마초(macho) 기질을 발휘했던 남자들이다. 수염으로 종족과 가문을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털보들은 전해 내려오는 집안 내력이 있다고 하겠다. 

 「위대한 세기」는 16세기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오스만 제국의 10대 술탄 ‘술레이만 1세와 전쟁포로 출신의 노예에서 오스만 제국의 황후가 된 ’ 휘렘 술탄‘이 된 알렉산드라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 서사극이라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의상과 함께 남자들의 수염과 여자들의 머리카락이었다. 터키 궁중 암투극의 내용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수염과 머리카락이 대단히 풍성하고 아름다웠으므로 볼품이 좋아서 더욱 인기가 좋았던 게 아닐까. 

 우리나라의 만 원권 지폐를 보면 세종대왕의 초상(肖像)은 매우 어질었던 성군답게 수염도 단정하게 다듬었다. 오천 원 권의 율곡 이이와 천 원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초상화 중 권의 퇴계 이황의 수염은 학자다운 근엄(謹嚴)하고 준수(俊秀)한 풍모(風貌)를 보여준다. 공재(恭齋)윤두서(尹斗緖 1668-1715)는 그의 자화상에서 예리하고 세밀한 기법으로 자신의 수염을 묘사하였다. 국보로 지정된 공재(恭齋)의 초상화는 우리나라 초상화중 대표작이다. 눈빛과 수염에서는 위엄과 풍채(風采)가 살아 있는 인물인 듯 착각을 하게 한다. 미염공(美髥公) 관우(關羽)의 수염도 유명하다. 그는 의리를 중하게 여겼으며 자존심이 강했다. 자부심도 자만심도 강했기로 말년의 운명이 허무하게 여겨지는 인물로 삼국지에 그려져 있다. 관우는 그 멋진 수염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황제급 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의 사당은 중국 기복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동서고금을 뒤져봐도 역시 수염은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남자의 상징이라 하겠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을 보더라도 수염은 역시 양반의 자존심이었다.  

 수염은 남자의 권위와 자부심이라고 할지언정, 겨울에는 보온이 되겠으나 여름의 그것은 얼마나 덥고 거추장스러우랴? 보는 이는 갑갑하다. 정작 보는 이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는 터럭의 주인공은 “남들이 날 부러워한다.” 고 말한다. 누구는 수염을 기르다가 포기하고 깎았다는데 그 이유는 ‘볼품이 없어서’ 란다. 자신의 텁석부리 스타일에 지나친 자부심이라 하겠다. 

  “털 고르기는 남자들의 특권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데 좀 더 멋지고 기품 있는 스타일로 신경 써 주시기를 주문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사물과 사람] 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