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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07. 2021

[사물과 사람] 김치

최 이사가 문자를 보냈다. “교장 선생님 김치 좀 드실래요? 제가 많이 얻어 왔는데 필요하시면 조금 드릴게요.” “네, 그럼 학교 가기 전에 댁에 들를게요. 김치통을 가져갈까요?” 가져오라고 했다.


김치통


어떤 크기의 용기를 가져가는 게 적당할까? 받을 양보다 통이 너무 크면 내 욕심이 들킨 것 같아서 민망할 거고 (주는 사람도 당황할 거고), 너무 작으면 아쉬움이 남을 거다. 선반 위에 올려놓은 플라스틱 김치통 두 개 중에 뭘 가져갈까 망설이다가 중(中)자 통을 대(大)자 통 안에 포개 넣었다. 공짜로 얻으면서 큼직한 통을 두 개나 들고 온 것이 부끄러워지는 상황이 생기면 ‘아, 이 안에 통이 하나 더 있었군요…’ 하며 짐짓 시치미를 뗄 작정이었다.


중(中)자 통만 해도 반절 배추 여섯 포기는 너끈 담기는 크기이니 그만 해도 우리 식구 먹기는 충분하고도 남는데 이렇게 욕심을 부린 것은 선생님들에게도 나눠 주고 싶어서였다. 얼마나 받을지도 모르면서, 벌써 선심 쓸 마음만 앞섰다. 타향살이에서 귀한 게 김치다. 교사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최 이사님이 김치를 준다고 합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통을 가져오세요.” 나처럼 통을 앞에 두고 고민한 선생님도 있었을까?


©LocknLock


최 이사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6년 전에 우리 학교를 세운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나를 런던한겨레학교 교장으로 초빙했으니 내 고용주인 셈이다. 같이 일한 지는 이제 8개월쯤 된다. 합을 맞춰보니, 그가 잘하는 것이 있고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 각자 잘하는 것으로 자기 몫의 기여를 한다. 좋은 학교를 만들려는 방향과 뜻이 같으니 부딪힐 일이 많지 않고,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금세 조율이 된다. 이견이라고 해도, 따지고 보면 ‘대세에 별로 지장이 없는’ 것들이다. 학교 일에서는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정성으로 가르치는 일 말고는 다 사소하다. 그는 나를 교육자로 인정해주고, 나는 그를 설립자로 존중한다. 최 이사 아들 삼형제는 모두 우리 학교에 다닌다. 학교를 찾은 그가 아들과 노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그가 좋은 아버지인 줄 알겠다. 학교도 그래서 세웠을 거다. 아무튼 그는 욕심이 없고 손이 큰 양반이니 김치도 많이 줄 거다.


묵은지


과연 그랬다. 그가 미리 봉지에 담아둔 것만 넣었는데도 두 통이 꽉 찼다. (두 통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하나는 묵은지이고, 하나는 새로 담근 김치라고 했다. 묵은지는 그냥 먹기에는 너무 익었으니 김치찌개를 끓여 먹으라는 말을 세 번쯤 했다. 걱정하지 마시라. 묵은지라는 말에 벌써 계획이 섰다.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만두, 김치전, 김치볶음밥, 두부김치… 상상하다가 침을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입을 꼭 다물었다.


수업 중에 여러 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최 이사다. 급한 일인가 싶어 전화를 거니, 실수로 두 통 다 묵은지를 줬다며, 하교 길에 다시 들르면 새 김치를 주겠다고 했다. 새 김치가 진짜 맛있는데 이걸 안 드렸다고 이미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나 보다. 골목길 운전이 서툴기도 하거니와 겨울 해가 짧아서 벌써 어두웠다. 괜찮다고, 그냥 알아서 잘 나눠 먹겠다고 했더니, 너무 신김치를 줘서 욕이나 먹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들이 모여서 컵라면이나 김밥 같은 것을 먹는다. 자원교사 임 선생님은 늘 우리 모두 먹을 수 있는 끼니를 집에서 만들어 온다. 무료 봉사도 감사한데, 매주 10인분이 넘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가져오시니, 그분은 이렇게 남을 먹인 공덕으로 하늘의 복을 받으실 거다. 컵라면이 익는 동안 묵은지를 풀었다. 곰삭은 냄새가 순식간에 우리 학교가 빌려 쓰는 영국 교회의 큰 홀을 가득 메웠다. (내일이 일요일인데 그때까지 냄새가 빠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잠깐 걱정이 스쳤다.) “진짜 맛있어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결국 통을 가져오지 않은 선생님들도 한두 포기씩 비닐봉지에 꽁꽁 쌌다. 기차로 집에 가야 하는 젊은 교사들은, 차 안에서 한두 시간 풍기게 될 냄새와 혼자 먹는 소박한 밥상 위에 올라올 고향의 맛 사이에서 갈등했을 거다. “그래도 사람들이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에요.” 연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비닐을 한 겹 더 쌌다. 큰 통이 금세 비었다.


작은 통은 우리 동네에서 풀었다. 한국 엄마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제가 받은 묵은지가 있어요. 김치찌개를 끓일 테니 일요일 점심 드시러 오셔요. 통을 가지고 오시면 나눠 드릴게요.” 모자를 만드는 M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E가 왔다. E는 한 조각을 맛본 후 가지고 온 통이 너무 작은 것을 속상해했다. M도 아쉬운 눈치였다. 이제 나도 남은 게 별로 없어서 슬슬 아끼고 싶었지만, 그 안타까움이 느껴져서 집에 있는 플라스틱 배달 용기에 하나씩 더 담아줬다. 엄마들은 김치찌개 하나에 밥을 두 공기씩 먹고, 김치통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행복한 얼굴로 돌아갔다. 고맙다는 인사를 열 번쯤 들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이래도 되나 싶다.



출신

최 이사에게서 받아 온 김치는 결국 아홉 집으로 나눠졌다.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만드신 분께도 인사 전해달라고 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속을 채우고 김장 비닐 속에 꼭꼭 눌러 담은 그 손의 주인, 거기가 시작이다. 궁금해서 물었다. “근데, 북한 김치하고 남한 김치가 좀 맛이 다른가요? 저한테 주신 이 김치는 어디 김치인가요?” 이 묵은지의 출신을 묻는 질문이다. 최 이사가 주었으니 북한 김치일지도 모른다. “김치도 북한, 남한… 크크. 모르겠어요. 저는 다 같은 거 같은데…”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호호. 자꾸 다른 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이 머쓱해서 괜히 딴 사람 핑계를 대고 얼버무렸다. 아직도 조금은 궁금했지만, 이 김치를 만든 사람이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재차 묻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이걸 먹고 있는 이 인연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챙긴 네 포기는 김치전과 김치볶음밥과 두부김치와 김치찌개로 거듭났다. 집에 오자마자 부친 김치전은 막내 린아와 남자 친구 타이의 부지런한 젓가락질로 순식간에 없어졌다. 대학 기숙사에 있는 큰딸 애린이 몫은 일찌감치 병에 담아놨다. 내게 그렇듯이, 집 떠나 사는 애린이에게도 이게 위로 음식(Comfort food)이 되면 좋겠다.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아주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내가 일한다고 밖에 있을 때 어린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신 분이다. 늘 맛깔스러운 김장 김치를 한 통 가득 가져다 주셨다. “올 김장은 하셨어요?” “이제 해야죠. 늘 12월에 하잖아요.” 내게 김치는 나눔이고 그리움이고 위로고 고마움이다.



글 | 사진. 이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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