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아무래도 친근감이 들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백화점과 백화점을 잇는 연결 통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무언가를 사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아니, 애초에 이곳에서 구경하는 일 말고 다른 행위를 해본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단 한 번도 익숙했던 적이 없는 공간. 명품 매장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에게 같잖은 선민의식을 느끼며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지.’ 같은 소리를 내뱉기도 하지만, 영앤리치 유튜버의 명품 ‘하울’ 영상을 보며 ‘부럽다’는 마음을 갖지 않을 정도로 고결한 청백리도 될 수 없는 이중적인 나이다. 딱히 간절하게 원한 적도 없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면 마음이 쪼그라든다.
백화점이란 공간은 언제나 내가 있을 곳이 아닌 듯한 낯섦을 주지만, 그 안에도 자꾸만 정이 가는 나만의 은신처가 있다. 롯데영플라자 샤롯데 가든과 롯데백화점 본점의 7층으로 이어지는 연결 통로에 위치한 테이블과 의자, 커다란 창을 향해 자리한 그곳에 멍하니 앉아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다.
내게 맞는 사이즈가 없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곳에 올 때마다 소외감을 느낀 까닭 중에는 그것도 있었다.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너무 비싸거나 내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거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에 속했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을 빼놓고 짜여진 판, 그래서 친구나 언니를 따라 백화점 쇼핑을 올 때면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옷을 입어볼 때, 신발을 신어볼 때, 한쪽에서 관심 없는 척 물건을 뒤적뒤적하고 있었다.
“가져보니 별 거 없더라.” 만큼 공허한 말이 없다. 가지지 못한 입장에서 가장 부러운 건, 그 아무렇지 않음에 있는 까닭이다.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홀로 꽁꽁 싸매고 들키지 않으려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는, 비슷한 단어만 스쳐가도 마음이 쿵하고 떨어지는 예민함이 없는, ‘없는 것 또한 나다운 거야.’라고 그럴듯한 긍정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좋은, 이미 가지고 있어서 굳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무심함을 언제나 원했다.
백화점에 올 때마다 생각한다. 나도 한번쯤은 그러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이 안의 것들을 욕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차마 욕망할 수가 없어서 욕망하지 않는다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모든 것들로부터 초월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한번쯤은 말이다.
명동 입구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백화점 안을 평온하게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창문 밖 대로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복잡한 명동 안으로 스며드는 무리에게도, 그 어느 쪽에도 연결되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처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누구도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동떨어진 기분.
하지만, 오늘은 그 소외감이 나쁘지만은 않다. 세상에 속해 있지만, 그 속에서 바둥거리지는 않는 듯한 거리감이 마음에 든다. 마치 해변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듯이, 연결 통로에 앉아 도시를 구경한다.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위치가 조금 비겁한가 싶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약간 치사한 그 정도가 딱 마음이 편하다.
글, 사진/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