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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l 01. 2022

밤이 없는 여자들 ①

] ‘워킹맘’ 문정아·이정미 씨

‘돌봄의 위기’는 언제나 있었다. 코로나19 전에도, 후에도. 그러나 비장애인, 비노인, 비감염인에게는 이 위기라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기 어렵다. 돌봄에 종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이렇게 하는지, 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해본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서울에 거주하는 ‘워킹맘’ 문정아, 이정미 씨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직장에서 휴직, 퇴직, 이직, 전직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던 두 사람은 오늘도 매일매일 집 안팎에서 고군분투한다. 대담이 시작되자마자 담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내는 두 사람을 보며 이렇게 두어 시간 이야기를 들어도 ‘워킹맘’의 이중과업 고충을 십 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본 인터뷰는 2회 차에 걸쳐 연재된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이정미(이하 )  마을에서 활동하면서 자영업을 하는 이정미입니다. 열 살 남자아이와 일곱 살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직장 생활을 15년 정도 하다가 아이 키운다고 퇴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마포 성미산 마을회관에 있는 작은나무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했어요. 그러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저처럼 워킹맘인 친구와 렌탈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되었고, 두 가지 일을 같이 하기 어려워서 얼마 전 카페는 퇴사했습니다. 

문정아(이하 문)  저는 정책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등 컨설팅 일을 하다가 지금은 휴직 중이에요. 출산과 육아 때문에 17년 동안 퇴직과 이직, 전직을 여러 번 거쳤어요. 열세 살 남자아이, 아홉 살 여자아이가 있어요. 현 직장은 5년째 다니고 있는데 아이 돌봄을 위해 주 3일 일하다가 책임이 늘어나고 수입도 더 필요해서 주 5일로 바꿨어요. 그러다 보니 둘째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하게 됐죠. 

왼쪽부터 문정아, 이정미 씨


회사에 휴직하겠다고 말했을 때의 반응과 경과에 대해 듣고 싶어요

  벌써 눈물 날 거 같아요. 외국계 기업을 15년 다녔고 사내 커플로 결혼했어요. 아이가 생기고 일과 육아를 둘 다 챙길 수 없어서 저희 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셨어요. 애만 낳았지 키우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아이가 클수록 커리어는 승승장구하는데 친정 엄마가 돌봐주기 힘들어지니까 제 탓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퇴사하면 모두가 행복한 게 아닐까?’ 하고요. 주변 사람들도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며 지금은 아이를 키울 때라고 조언했어요.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죠. 저도 회사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썼어요. 보통 3개월 정도 쓰고 돌아오는데 저는 둘째 낳고 아이를 보면서 마을 안에서 활동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직장 생활을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끝없는 경쟁에 지쳤고요.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면서 3년간 육아휴직을 했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눈치가 보여서 회사에 둘째를 임신했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말하니까 “그럼 너 복직 안 할 거야? 승진 대상인데 휴직하면 승진 못 해. 승진 안 할 거야? 이래서 여자들은 안 돼.” 이런 얘기까지 나왔어요. 억울했어요. 그래서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했는데 이 정도는 배려해줄 수 있지 않냐고, 이제까지 회사에서 혜택을 받거나 일을 안 한 적이 있냐고, 간절한 사정이 있는데 좀 쓰게 해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사과하더라고요. 정말 속상했어요. 외국계 회사고, 육아휴직은 당연히 있는 제도인데 퇴사를 각오하고 따내야 하는 게요. 심지어 다른 여성 직원들이 다 제 처분을 기다렸어요. 선례가 생기는 거잖아요. 아직도 육아휴직을 잔 다르크처럼 선두에 서서 각오하고 싸워서 따내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해요.

문정아 씨

  그동안은 퇴직을 하고 새롭게 일을 찾곤 했어요. 휴직을 하는 건 이번 회사가 처음인데요. 회사 입장에서도 제가 첫 육아휴직자더라고요. 행정적으로 어떤 처리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 곤란한 일이 생겼어요.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6개월 차에 대전에 계신 부모님 댁에 보내서 2년을 키웠어요. 그러다 공동 육아를 하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 여기로 이사를 왔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퇴사하고 3년 정도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됐죠. 


당시 남편(혹은 파트너) 육아  가사노동 분담은 적절하다고 느끼셨나요

  결혼할 때부터 가사 분담은 확실히 했어요. 다만 아이를 가지면서 생기는 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나누지 않았고 알아서 눈치껏 했어요. 최근에 글쓰기 모임에서 돌봄에 대한 글을 쓰면서 되짚어봤는데요. 일 때문에 아이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속상하니까 회사를 그만둘까 싶다고 고민을 털어놨을 때 남편이 “네가 생각해보고 알아서 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 미국의 어떤 작가가 가사노동 항목을 쭉 나열해놓고 배우자와 하나씩 나눠서 하는 방법을 써보니까 남자의 가사노동과 돌봄 참여가 많아지더라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저도 정량화를 해보려고 모든 가사와 돌봄노동 항목을 써봤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억울해하는 거예요. 자기가 잘 도와준다고 생각하니깐요. 물론 ‘도와준다’는 표현을 하진 않지만 할 일을 다 하니까 ‘적어도 이 동네에서 평균은 된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돌봄과 가사를 아무리 나눠서 해도 결정적인 책임은 결국 저한테 있으니까 절대 같을 수 없다고요. 가사와 육아의 빈틈을 제가 다 채우고 있죠. 이걸 더 정확히 나누면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까 이건 책임의 문제지, 일의 문제는 아니더라고요.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면 좋지만 아이들이 엉망으로 해놔서 세 번, 네 번 할 때가 생겨요. 그러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청소하는 게 책임을 갖는 건데, 남편은 그걸 발견하지 못해요. 그런 빈틈을 발견하게끔 자라지 않은 거죠. 


각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경험했고원했던 돌봄의 형태가 다를  있을  같아요어떤 차이가 있어요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의 돌봄 어젠다와 지금의 어젠다가 다르거든요. 물론 좋은 점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더 크게 느껴져요. 제가 자랄 때는 부모님께 마음의 깊은 곳까지 돌봐달라고 요구하면서 자라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너무 바쁘시니까 사춘기에 진입하면서는 진학이나, 여러 고민과 마음의 상태를 주로 친구들에게 나눴어요. 가끔 선생님이랑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슬픈 일이나 힘든 일을 얘기하면 뭔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게 있나 봐요. 친해도 속상하거나 슬픈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로하진 않더라고요. 선생님한테도 당당한 모습만 보이고요. 마음을 어루만지는 돌봄이 거의 가족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게 속상한 지점이 있어요. 

  저도 고민이에요.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죠. 어릴 때 엄마보다 아빠랑 친밀하게 지냈어요. 편지도 써주시고, 마당에 장미가 피면 잘라서 맥주 컵에 넣어주시고요.(웃음) 그런 것들을 보고 자랐으니까 저도 친구 같은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일과 병행하니까 육아도 일로 느껴지더라고요. 대화하고 교감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딱 언제까지 빨리 끝내야 할 것처럼 느껴요.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할 일과가 굉장히 많고 그중에 돌봄이 있는 거죠. 

이정미 씨

반면에 제 남편은 어릴 적에 부모님과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반대예요. 아이랑 같이 엄마를 놀리는 식으로 공감대를 쌓고 유대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둘 사이에도 분쟁이 생기네요. 자아가 생기면서 시키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어요. 나름 논리적으로 반박해요. 예를 들어, 단답형으로 ‘TV 보지 마.’ ‘유튜브는 안 돼.’ 하면 ‘근데 아빠는 왜 맨날 회사 갔다 오면 핸드폰만 봐?’ 해요. 말문이 막히죠. 


아이의 성장 과정에 따라 필요한 돌봄도 달라지는 거네요.

  첫째가 열세 살인데요. 어릴 땐 양육에 초점을 맞췄다면 자라면서는 정서적 돌봄이 필요해지더라고요. 동네 언니들이 아이가 커갈수록 힘들다고 했는데,(웃음) 이제 그 말이 와닿기 시작했어요. 특히 지금 첫째가 축구 쪽으로 진학하기를 원해요. 자유롭게 지내던 아이가 심한 경쟁을 겪어야 하는 게 안타깝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돌봐주고 싶은데 이게 참 어려워요. 동네 언니들이랑 얘기하다가 귀에 딱 박혔던 얘기가 ‘축구로 진로를 정하면서부터는 이 아이 몸이 내 게 아니라, 감독님 거’라고 느꼈다는 거예요. 그렇게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데 아이가 경기하다가 다치고 아프면 속상해지잖아요. 팀에 도움이 못 되어서 더 마음이 불편하고요. 그 마음을 집에서 돌봐줘야 하는데 어떤 기술을 부려서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잘 설명해주신 거 같아요. 뭘 시켰을 때 아이가 거부하잖아요. 그때 제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화부터 내면 엄청 삐진단 말이에요. 달래주는 게 정말 오래 걸려서 힘들어요. 어릴 때는 먹이고 재우고 이런 거만 신경 쓰느라 육체적으로 힘들었는데 이제는 정서적으로 돌봐야 해요. 요즘은 제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커요.(웃음) 아침은 바쁘니까 버럭 하고 보내고 돌아서면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고 저녁에 ‘엄마가 미안해.’ 하는 거죠. 아이는 잊었는데 괜히요.(웃음) 


글. 양수복/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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