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었습니다만' 진고로호 작가 인터뷰
직업의 수는 사람의 수보다 적다. 하지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각자 품은 직업에 대한 이상과 향하는 방향은 다르다. 직업에 얽힌 수많은 장면이 존재하는 이유다. 사람 하나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만들어지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들을 ‘직업으로서의 ◯◯◯’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공무원이었습니다만>을 쓴 진고로호 작가는 글과 그림을 통해 자신이 8년 8개월간 경험한 공무원 ‘체험기’를 전한다. 힘든 시간을 버텨낸 후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진 그에게선 자신의 자리를 찾은 사람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인생에 큰 궤적을 남긴 공무원을 그만둔 후, 그가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던 서울 망원동의 책방 ‘이후북스’에서 그를 만났다.
공무원에서 작가로 전업한 경우가 흔치 않을 텐데요. 남들한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 <공무원이었습니다만>이 출간된 후엔 그 앞에 ‘전직 공무원’이라는 말을 꼭 붙이게 돼요.(웃음) 공무원일 땐 내 직업을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게 조금 어색했거든요. 그만두고 나서 오히려 내가 공무원이었고, 지금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게 굉장히 즐거워졌어요. 전직 공무원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무원에 대해 흔들릴 리 없는 일자리라는 인식을 갖고 있죠. ‘최고의 일자리’로만 여겨지는 데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저 역시 ‘공무원이 되면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식의 부정확한 정보를 믿고, 어떤 감에 의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힘든 거예요. 업무도 굉장히 복잡하고 숙지해야 할 사항도 많더군요. 민원인을 대하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적인 모임에 나가서 제 직업을 말하면, “편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언제부턴가 그냥 회사에 다닌다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나름대로 분투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아무래도 내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잖아요. 당시에는 제 직업을 뿌듯하게 생각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지 4년 정도 되셨는데, 작가로 사는 삶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나요?
아주 많이 달라졌어요. 공무원일 때는 항상 쫓기는 느낌으로 일했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잘 기다리지 못하잖아요. 관공서에 오시면 바로 처리해주길 바라는데, 제가 일하던 곳은 인구가 많고 민원도 굉장히 많았거든요. 점심시간에는 교대로 근무하는데, “왜 여기는 두 명밖에 일을 안 하냐.”며 소리를 지르는 분도 많았어요. 지금 가장 좋은 건 쫓기는 기분에서 벗어나서 내 속도대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이죠. 내 하루를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는 점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퇴직을 앞두고 신입 공무원에게 건강관리에 대해 조언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님이 자신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별생각 없이 공직에 발을 들였는데, 일하면서 점점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짐이 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공무원 사회에서 일하기는 조금 힘든 성향을 가졌다고 느꼈거든요. 조직 안에서 주어진 일을 착착 처리하기에는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다 힘들어하면서 공무원 생활을 견디고 버텨내는 걸 봤어요. 결국 스스로 이겨낸다기보다 사람에게 위로를 많이 받기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톡 쏘기보다 따뜻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말에 상대방이 기운을 낼 수도 있는 거고요. 서로한테 연민을 좀 느끼면 좋지 않을까 싶었죠. 그 신규 직원들한테 제 모습을 투영해서, 저 자신한테 말하는 것처럼 쓴 것 같아요.
퇴사는 병든 몸과 마음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이 말에 공감하시나요?
전 누구보다 그만두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웃음) 공무원 생활을 해서 그만뒀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홀가분했거든요. 근데 1년쯤 지나고 나서 점차 현실을 보게 됐어요. 회사를 안 다니면 몸이 마냥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이게 약발이 오래가진 않는구나, 일상을 잘 유지해야겠다 싶었죠.
책에서 캐릭터를 사람이 아닌 동물로 그린 이유가 있나요?
여러 인물의 특성을 결합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좋아서 동물을 그리게 됐어요. 비록 제가 힘들게 한 공무원 생활이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저만의 세상을 좀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빌런’ 같은 캐릭터에게서도 귀여운 면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작가로서 갖게 된 고민이 있었나요? 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공무원으로 일할 때는 오로지 버텼거든요. 그런데 작가가 되기 위해선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어요. 또 중간에 슬럼프가 오래가서 공무원을 괜히 그만뒀나 싶어 고민도 했어요. 그 와중에도 조금씩이나마 작업해나가며 손을 안 뗐던 것 같아요. 온라인에 글도 꾸준히 연재하고요.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까 운 좋게도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생겨서 이렇게 책도 낼 수 있던 것 같아요.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이 일에 대한 확신을 어느 정도 되찾았어요.
책을 통해 공직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데 대한 부담은 없으셨나요?
제가 그동안 쓴 일기를 정리했었거든요. 글도 몇 편 써봤는데, 일할 당시 느낀 힘들고 부정적인 감정이 글에 다 투영돼 있더라고요. 조직의 부조리를 객관적으로 보는 건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업을 멈추고 1년 반 정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제가 겪었던 일과 거리가 생기니까 방향을 다시 정할 수 있더라고요. 정제된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따뜻한 시선을 담아서 쓰고 싶어졌고요.
오랜 시간 하던 일을 그만둔 후 드는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고 견디셨는지 궁금해요.
처음엔 ‘철벽 차단’을 해서 ‘나는 절대 그리움을 느껴서는 안 돼.’라고 생각했어요. 책 속에 제가 주민센터 유리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는 ‘그리워’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웃음) 그날을 기점으로 제 감정이 확실한 그리움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 감정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고, 이 책을 쓰면서 그런 감정들을 풀어냈어요.
공직이 평생 직장이 아니라 학교에 가깝다고 하셨어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평생 되새길 만한 것은 무엇인가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 말이 제가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수련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예를 들면, 악성 민원인의 포스를 풍기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부딪치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썼는데, 그럴수록 그분이 저한테 착착 붙더라고요.(웃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공직 생활 마지막 1년은 내려놓는다는 마음으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그 1년간은 일이 좀 수월하더라고요. 지금도 작가로서 자립은 아직 못 했다고 생각하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올 때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는 있게 된 것 같아요.
에필로그 제목이 ‘나의 자리를 찾아서’입니다. 작가님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과정은 요즘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공무원 생활을 할 때는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작업할 때만큼은 편안하게 느껴져요. 시야를 조금씩 넓혀가면서 내 주변을 보고 살핀 내용을 글로 써보고 싶어요. 공무원을 그만둔 후 자립하기 위해 애쓰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정리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사람의 사회에서 동물들이 지내는 현실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어요.
삶에서 분명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도 소속감이 사라진다는 게 굉장히 헛헛하더라고요. 큰 조직에서 일할 때는 확실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되지만, 거기서 오는 압박감도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되게 자잘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모임이나 공간을 찾아다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 이후북스도 그렇고, 퇴직하고 그림책에 대해 공부할 때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금까지 만나면서 같이 스터디도 하고 있어요. 동네 책방의 글쓰기 모임에 같이 참여하는 친구들과도 만나고요. 작은 인연들을 계속 유지하고, 느슨하지만 기댈 수 있는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게 큰 힘이 돼요. 불안감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는 의지할 곳을 찾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글. 황소연/ 사진. 김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