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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Nov 25. 2022

홈리스 여성의 지지 체계

최근에 노숙인생활시설에서 일하는 분들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노숙인생활시설은 내가 일하는 곳같이 홈리스에게 단기간의 긴급 잠자리를 이용하도록 하는 일시보호시설과 달리 몇 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생활하도록 하는 곳이다. 운영 목적에 따라 자활시설, 재활시설, 요양시설로 구분되어 있어서 사회복지사들의 고민이나 관심사가 다르면서도 홈리스를 지원하는 어려움이나 공통의 고민들이 없지는 않아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시설에 있는 홈리스 여성들이 자립하려면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까, 뭘 지원해야 할까가 화제에 올랐다. 실무자 한 분이 시설에서 독립하여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도록 지원하는, 소위 말하는 탈시설이 힘든 사례가 많다는 호소를 하자 또 다른 실무자들이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실무자는 자신들이 돌보는 홈리스 여성 중 어떤 이는 시설에서 독립하는 방안으로 귀가, 즉 가족결합을 꿈꾸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참 안타깝다고 하였다. 홈리스 여성들의 귀가 계획은 대부분 실현되기 힘든 비현실적인 기대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시설에서 20년을 넘게 생활하여 어느덧 노인이 된 여성이 자신의 연고자였던 가족이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했다. 

귀가의 소망은 실태 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작년에 실시된 ‘노숙인 등의 전국실태조사’에서 364명의 여성에게 면접조사를 했는데 ‘거처를 옮기고 싶다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냐’는 질문에 여성들의 4.2%가 귀가라고 답했다. 그러나 생활시설 실무자들이 걱정한 것처럼 귀가가 가능한 홈리스 여성은 드물다. 귀가할 집, 특히 가족이 없거나 가족들과 함께 살 형편이 아니다. 

홈리스 여성들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가족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어떤 경우는 가족이 반기지 않거나 돌볼 수가 없어서, 또는 반대로 가족과 같이 살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귀가가 힘든 이유는 처음 노숙 상황에 놓인 이유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작년의 ‘노숙인 등의 전국실태조사’에서 거리 노숙의 계기가 무엇이냐 질문했을 때 물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실직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21%)이었으나 그 외에도 질병이나 장애(17%), 가정폭력(15.2%), 이혼 및 가족해체(12.6%) 같은 답변이 있었다. 가족과의 연계가 끊어져 홈리스가 되었다면 귀가란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가족과 함께할  없는 사람들

얼마 전에는 집에서 남편과 자주 다투고 이혼을 준비 중인데 같이 지내기 힘들어서 집을 나왔다며 내가 있는 시설을 찾아온 여성이 있었다. 상담을 시작하고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흐느껴 우느라 말을 하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격했다. 조울증이 있는데 치료를 받지 않은 지는 꽤 되었다고 했다. 그날로부터 1주일 정도 일시보호서비스를 받는 중에 그녀는 아주 작은 일이 계기가 되어, 혹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시로 울거나 소리치며 화를 내는 등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1주일째 되는 날에도 사소한 일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욕설과 고성방가를 이어가 결국은 경찰이 출동하였고 시설을 나가게 되었다. 갈 곳이 없을까 봐 다른 시설의 정보도 주었는데 아무래도 집으로 가야겠다며 경찰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며 떠났다. 그로부터 3일쯤 뒤 그 여성의 친척이라는 분이 전화를 했다. 그녀가 지금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는데 가족들이 당장 돌보기 힘들다며 다시 시설을 이용할 수는 없겠냐는 문의였다. 당사자가 감정 조절이 힘들고 공격적인 행동을 해서 어려움이 크니 치료를 받도록 권유하는 게 좋겠다고 하자 시설에서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때린 건 아니지 않느냐며 당장 지낼 곳이 없으니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시설에서는 계속 갈등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가족분들도 그걸 알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 친지들이 왜 한사코 시설에서 돌봐주었으면 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아서였다. 아마 가족이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을 거다.

가족, 친지의 거부로 귀가의 기대가 허물어지는 예는 많이 보아왔다. 지금은 생활시설에 입소한 개순(가명) 님의 경우도 그랬다. 일시보호시설 보호기간이 끝나갈 때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계획인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지를 상담하고 며칠 후 자신은 가족과 살 것이라면서 오빠나 동생과 연락을 취해 달라 했다. 자신이 전화하면 이상하게 통화가 안 되더라는 말을 덧붙이며. 사무실에서 전화하여 당사자의 부탁으로 전화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자 몇 초간 침묵이 이어지더니 한숨을 쉬며 “그래서 어디라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개순 님이 오빠 집에 가서 살기를 원한다고 하자 말도 안 된다는 투로 자신은 같이 살 수 없다며 이제 질렸다고 했다. 정신과 치료를 하고 수급신청을 하도록 돕겠다는 정신건강 전문 요원의 간곡한 설득도 거부하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누이를 이제 자신도 어쩌지 못하겠다고 했다. 앞으로는 전화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통지도 했다. 개순 님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이번에는 동생에게 전화할 것을 재촉했다. 나조차 이미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었지만 부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고, 통화가 연결되어 “안녕하세요? 이곳은 개순 님이 계시는 시설입니다.”라는 인사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전화는 끊겼다.  

영지(가명) 님은 임대주택에서 생활하며 자활근로를 하러 시설에 오는 분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적은 급여지만 자신의 주거를 씩씩하게 잘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우울증으로 몇날며칠 누워만 있다가 결국은 고시원에서 쫓겨나 일시보호시설을 찾았을 때와는 영 딴판이다. 고시원에 가기 전에는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대책 없이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지 님을 봐주기 힘들었는지 언니와는 더 못 살겠다며 나가라 해서 쫓겨났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었다. 역시 지금의 모습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얘기들이다. 지금 영지 님은 당뇨병을 관리하고자 약을 먹는 것은 물론이고 식단조절도 잘하고 매일매일 한 시간 이상씩 걷기 운동도 하는 ‘성실녀’이다. 그런 그녀에게 얼마 전에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다. 그날도 매일 그러하듯이 한강까지 걷고 있었는데 우연히 자매를 딱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당황했고, 어정쩡한 상황에서 그냥 헤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시설에서 연계한 병원을 가지 않는지 아냐고 되물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시설에서 연계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어느 날 병원에서 일하던 또 다른 자매를 마주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날도 서로 당황했는데 그 자매가 먼저 조용히 아는 척 말자고 하더라며 자조 섞인 웃음을 보였다. 서울이 손바닥만 한 곳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우연이 생길 수 있냐고 하며 넘어갔지만 그때의 씁쓸하고 아렸을 마음이 읽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는 선생님들이 있잖아요

2021년의 ‘노숙인 등의 전국실태조사’의 면접조사에 따르면 가족친지와 만나거나 연락하는 일이 전혀 없는 여성은 61.4%이다. 그 외 만나거나 연락하는 지인이 없는 경우는 85.8%이고, 홈리스 친구나 동료와 만나거나 연락하는 일이 없는 경우도 64.9%였다. 홈리스들의 가족관계와 지지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짐작하게 하는 데이터이다. 임대주택에 입주한 후에도 가끔 시설을 찾아와 안부를 전하고, 명절이면 감사 인사를 전하는 여성분이 있다. 너무 고적한 삶을 살까 걱정되어 집에만 있지 말고 동네 복지관에라도 다녀보라 권하면 자신은 괜찮다고, 실무자 선생님들을 가끔 만나고 동생도 가끔 만날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저는 선생님들이 있잖아요, 그거면 돼요.” 하는 그분에게 답했다. “그래요, 쓸쓸하고 무료하면 저희 보러 오세요”. 누구든 살면서 누구라도 한 명 곁에 있어주는 이들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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