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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0. 2023

여기도 사람 있어요!

지방이 실종된 정치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며 지방자치제도를 강력히 밀어붙였고, 정부가 미적거리자 단식투쟁을 단행했다. 당시 3당 합당으로 여당 당수이자 이후 대통령이 되는 김영삼은 김대중의 제안을 통 크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자치가 제도화됐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 1992년 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졌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이제 지방자치제도는 자리를 잡았다. 작은 지역의 대표도 우리 손으로 뽑고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과거 정치인들이 꿈꿨던 만큼 지방자치제도가 시민들에게 의미를 지니는지 의심스럽다. 사람들은 지방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도지사나 시장 정도는 알 수도 있지만, 도의원, 시의원, 구의원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고 도지사나 시장에 관심이 있는 것도 중앙정치의 연장선인 경우가 많다. 

출처: Unsplash

뉴스나 인터넷만 보고 있으면 모두가 정치에 과몰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우리 편을 지지하기 위해서든 상대편을 비방하기 위해서든 어쨌든 대립한다. 기꺼이 길거리에 나와 촛불을 든다. 하지만 이런 적극성은 지방정치로 오면 극적으로 사라진다. 마치 월드컵은 보지만 국내 축구에는 관심 없는 이들처럼 군다. 사람들은 국회의원의 말실수나 대통령의 사생활에는 관심이 있을지언정, 자기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편법과 착복에 대해서는 별스럽지 않게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면 별스럽게 생각하지만, 일단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대선이나 총선보다 늘 10% 이상 낮다. 그리고 투표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은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중앙정치의 연장선에서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에 그대로 투표한다. 후보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당이 맞으니 괜찮겠거니 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관심이 없는데 당에서라고 관심이 있겠는가. 그냥 대충 공천을 한다. 솔직히 대충 한다고 하는 것만 해도 좋게 이야기해준 것이다. 성범죄자를 버젓이 공천하는 경우는 양반이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공천한 적도 있었다. 놀랍게도 이 죽은 사람은 유세 한 번 하지 않았는데, 모두 그 당이 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냥 당선이 됐다. 

출처: Pixabay

우리가 아무리 무시해도 지방 권력은 막강하다. 집행할 예산도 많다. 하지만 중앙과 관련된 몇몇 이슈를 제외하고는 시민들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의원 하나가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이상한 법안을 슬쩍 하나 밀어 넣거나 예산을 이상한 곳에 집행해도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지역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잠깐 문제는 되겠지만 어차피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그 사람은 다시 당선되고 그 언론과 시민단체를 짓누른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누구도   없는

오늘 소개할 콘텐츠는 대구 지역 언론인 뉴스민이 제작하는 <김수민의 뉴스밑장> 속 ‘월간 지방정치’라는 팟캐스트다. 팟캐스트는 일종의 녹음된 오디오 포맷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한국에서는 팟캐스트 시장이 적은 편이지만 미국에서는 꽤나 큰 시장 규모를 자랑한다. 스포티파이가 대표적으로 팟캐스트를 활용해 성공한 경우다.

참고로 지방은 서울의 반대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걸 오해하는데, 서울도 한 지방이다. 서울에 있는 법원은 서울‘지방’법원이다. 사람들은 서울과 중앙을 헷갈려 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오해는 아니다. 일정 부분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방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중앙이 있는 서울에는 관심이 있다. 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사람들은 서울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러니 서울은 지방이 아닌 셈이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은 옳진 않지만 우리 마음속의 진실을 보여준다.

아무튼 ‘월간 지방정치’는 서울을 포함해서 지방자치단체, 그중에서도 지방 의회에서 벌어진 일을 브리핑해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방이 워낙 세분화되어 있기에 다 다루지 못한다. 지방자치법 제2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로 나뉘는데 광역자치단체는 전국에 17개(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8도, 1특별자치도)이며, 기초자치단체는 226개(75자치시, 82자치군, 69자치구)가 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다루겠냐고. 그러다 보니 지방정치를 다루더라도 중앙 이슈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가령 최근에는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성남시와 경기도의 문제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용산구와 서울시의 문제를 다루는 식이다. 이건 청취자들의 공통 관심사, 그리고 진행자도 나름의 관심사가 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나조차도 내가 전혀 모르는 동네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관심이 떨어질 테니까. 무엇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는 업데이트 기간은 너무 큰 단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너무도 긴 시간이다. 

출처: Unsplash

그런데 과연 한 달에 한 번 이상 지방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지방정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방송의 가치는 명확하다. 지방정치가 중요하다고 입으로야 얼마든지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 콘텐츠가 없다. 인터넷의 발달 이후 오히려 지역 언론들은 거의 궤멸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니 우리 지방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어도 뉴스를 구하기도 어렵고 그 뉴스 속에서 어떻게 사건의 맥락을 잡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렵다. 

많은 정치인들이 지방정치로 시작하지만 결국 중앙정치로 가기 위한 교두보 정도로 지방정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듯이 당시의 경험을 금방 잊어버린다. ‘월간 지방정치’의 진행자인 김수민 평론가는 경북 구미 출신으로 과거 시의원을 한 경험이 있어 지방정치가 굴러가는 생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선에서 플레이어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평론가로 뛰어들었기에 당시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가 모든 지방정치를 다루진 않지만, 청취자로 하여금 자신의 지역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워주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김수민 평론가 외에는 없다. 누군가는 분명 할 수 있겠지만, 하지 않으니 할 수 없는 거지.

고백하자면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 방송을 들은 이후에서야 내 고향과 현 거주지의 구의회와 시의회 의원들을 찾아봤다. 물론 지금 아는 것도 고작해야 그들의 이름과 전과기록 정도지만. 


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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