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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0. 2023

모든 극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해는 지독한 불운으로 휘청이며 시작되었다. 난 아직 성우 지망생이었고 학원을 옮기는 문제로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안장혁 선배님께 연기를 배운 지 2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선배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에도 고민을 한가득 안고 있었다. 그때의 고민은 ‘연기를 잘한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고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본 것만 같았다. 몇 마디 나눈 이야기와 그의 짤막한 시연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였다. 어떤 연기가 바람직한 것이고 어떤 연기가 그렇지 못한지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커다랗게 고지가 보이는 듯했다. 1차 시험에 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손을 뻗으면 닿지 않았다. 2차 시험에서, 혹은 3차 시험에서 계속 떨어졌다. 그게 반복되자 나는 초조해졌고, 내게 보인 고지가 사실은 신기루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선배 앞에서 연기하는 게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쪼그라들고 또 쪼그라들다가 소멸되어버릴 것 같았다. 다시금 환경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는 속삭임이 마음속에서 점차 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다른 쪽에서는 지금의 환경을 이겨내야 한다는 소리가 울려댔다. 선배 덕분에 눈이 뜨였는데 기왕이면 옮기지 않고 합격하고 싶기도 했다. 배신하는 듯한 기분도 들어서 고민하는 내내 괴로웠다.

출처: Unsplash

2010년 새해가 밝았다. 다른 학원에서 무료 공개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했다. 주말 아침, 신촌. 특강을 기다리는데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하필 그날 스키장에 가자고 했다. 나는 선약이 있어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신촌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가 있어. 특강 마치고 바로 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야.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해서 가 있을 테니까 수업 마치고 얼른 와.”

종구 형(KBS 38기 성우)의 길 안내가 너무 상세해서 안 가기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약속 당일 특강이 끝나고 승강장에 가니 간발의 차로 버스가 떠나버렸다. 나는 형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더욱 상세한 길 안내였다.

“그러면 지금 바로 택시를 타. 바로 강변북로를 타고 잠실역으로 가자고 해. 셔틀버스는 시내로 가니까 더 늦게 도착하거든.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출처: Pixabay

“뭐? 신촌에서 잠실까지 택시를 타라고? 나 돈 없어.”

“내가 줄게, 임마. 빨리 와. 오늘 내 생일이야.”

역시 안 가기 민망했다. 그대로 하니까 3, 40분쯤 뒤에 정말 내 몸은 셔틀버스에 실려 강원도 횡성으로 가고 있었다. 그 버스 안에서도 학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해야 방송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스키장 가는 길처럼 그렇게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면, 조금 늦어도 따라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범한 기적


스노보드를 타러 스키장에 간 세 번째 해였다. 성우 지망생으로 학원에 다닌 지도 딱 그만큼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제 조금 뭔가 알 것 같고, 머리로는 어떻게 될 것도 같은데, 좀체 몸은 따라주지 않는 시기. 슬로프에 올라 첫 보딩을 하며 내려오는데 어쩐지 그 전해보다 매끄러운 느낌이었다. 시원한 공기가 고민을 다 씻어주는 기분도 들었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속도를 올려보았다.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느낀 순간, 나는 정말 하늘로 떠올랐다. 

출처: Unsplash

바닥 어딘가에 보드가 탁 걸리며 몸이 붕 뜨더니 다리가 눈높이보다 위로 올라왔다. 머리로 착지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왼손을 뒤로 내밀었다. 손이 지면에 먼저 닿으며 우당탕 눈밭을 한 번 굴렀다. 다행히 다른 사람과의 충돌은 없었다. 휴우… 몸을 일으키려는데 왼팔이 조금 저린 것 같았다. 배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팔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저리기만 하고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만 겨우 꼼지락거릴 수 있었다. 아, 어깨가 빠졌나 보다. 옛날에 봤던 영화 <정무문>에서 이연걸이 결투 중 어깨가 빠지자 바닥에 대고 우두둑 다시 끼우더니 쿨하게 싸움을 이어나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 별일 아닐 거야. 이연걸처럼 혼자 바닥에 대고 끼우지는 못해도 누가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 패트롤을 불러 의무실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의무실에서 혹시 모르니까 가까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가장 가까운 병원이 횡성의 종합병원인데요. 3, 40분 거리에 있어요.”

아, 신촌에서 잠실까지 그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그게 가까운 거리였구나. 길 안내를 하던 종구 형은 이제 아예 길잡이가 되어 나를 차에 싣고 병원까지 달렸다. 

“형… 히터 튼 거 맞아? 나 너무 추워…”

팔에 힘은 안 들어가는데 묵직한 통증이 올라왔다. 식은땀이 나고 자꾸만 어디선가 <영웅본색> 주제곡을 부르는 장국영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의식이 아련해질 때쯤 병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동작조차 해내기 힘들 정도로 통증은 심해져 있었다. 거의 기다시피 해서 엑스레이실로 들어갔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팔을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맞아, 나는 어려서부터 손 드는 게 참 싫었어. 벌을 서든 발표를 하든.’ 젊은 의사의 도움으로 팔을 들어 올릴 때 나도 모르게 어마어마한 비명이 터져나왔는데, 살면서 늘 조그맣던 목소리가 그때 트였던 게 분명하다. 

어깨 바로 아래 팔 뼈가 골절되어 있었다. 이연걸처럼 주먹질도 안 했고 <영웅본색>처럼 총질도 안 했는데 팔이 부러지다니. 종구 형은 그대로 날 싣고 서울까지 차를 몰았다. 

출처: Unsplash

수술을 했다. 뼈에 철심을 몇 개 박고 팔을 몸통에 바짝 붙여 고정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2주를 보내고 대전 집에 내려가 또 몇 주를 지냈다. 스스로 머리도 감을 수 없어서 동생이 감겨주었다. 몸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먹고 자고 책만 읽었다. 그러다 <오디션>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었다. 성우 공채시험은 필기시험 없이 오디션으로 치러진다. 혹시 이 책 속에 합격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다. 

기대했던 바와 달리 오디션의 열쇠 대신, 그 시기 내내 하던 고민의 답을 찾았다. 이 문장을 만나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내가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미친 사람이 무슨 학원 하나 옮기는 문제로 그 많은 고민을 한단 말인가. 그 길로 새 학원을 알아봤다. 팔이 회복되자마자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매일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인식시켰다. 평범해지려다가 불행을 자초하지 말자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기운이 났다. 그때부터 연기를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누가 듣기에 좋은 연기가 아니라,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했다. 어깨에 철심까지 박혀 있으니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 힘이 실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내가 도저히 시험에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해 처음 본 시험이 대원방송 2기 공채시험이었다. 5차에 걸쳐 시험을 봤다. 시험이 너무 길어서 미친 시험이라고들 했지만, 더 미칠 게 없었던 나는 합격을 하고 말았다. 

다치거나 미치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하면 너무 비약일까?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배우들이 멀쩡해 보인다면 그들이 정말 멀쩡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이 연기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날에는 사고도 없지만, 기적도 깃들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든 극은 균형을 잃으며 시작된다. 


글. 심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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