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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2. 2019

[스페셜] 서울생활사박물관, 과거와 현재를 잇다

뉴트로 탐닉일지3 


글·사진 김선화     




복고 열풍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올해를 대표하는 메가 키워드 중 하나는 ‘뉴트로’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요즘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뉴트로를 반영하는 추세인데, 지난 7월 서울에 뉴트로를 즐기기 좋은 곳이 생겼다. 서울 북부지방법원과 서울 북부검찰청 자리에 생긴 서울생활사박물관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에서 중장년층은 옛 물건을 통해 추억을 뒤적이고, 청년층은 재미와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서울 내에 있어 접근성도 좋은데다가 전시 콘텐츠가 풍부해 하루를 소일하기 좋은 곳이다. 날씨가 더 쌀쌀하기 전에 가면 좋은, 정겨운 풍경이 펼쳐지는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하철 태릉입구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서울생활사박물관이 보인다. 따로 위치를 찾지 않아도 북적거리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주로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았다. 보아하니 주말을 맞이해 나들이 나온 모양이었다. 전시를 즐기는 연령은 저마다 다르지만 들떠 있는 표정에서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녀노소 모두가 유쾌해하고 온 세대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이곳의 의의는 깊어 보였다. 아울러 최근 문을 연 서울생활사박물관은 근대와 현대를 넘나든다. 외형은 모던하면서도 내부는 클래식한데 입구로 들어가면 뮤지엄 숍조차 레트로한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판매하는 물건도 추억을 상기시킬 만한 물품으로 가득하다. 전시 규모는 의외로 큰 편이다. 전시관은 1층부터 4층까지 이뤄져 있고, 1층 순으로 관람을 즐기면 1945년 광복 이후 근대사부터 흐름대로 감상할 수 있다. 느긋하게 전시를 즐기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

1층 ‘서울 풍경’ 전시에는 천만 도시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처참한 폐허 속에서도 끊임없이 발전해온 서울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펼쳐진다. 지금의 서울은 산업이 고도화된 도시지만, 전쟁이 막 끝난 무렵의 서울은 폐허 그 자체였다. 시대별 사진과 다채로운 영상을 보며 옛 서울의 모습을 가늠해봤다. 풍부한 시각 자료 덕분에 서울의 궤적을 순조롭게 좇아갈 수 있었다. 특히 전시실 입구에서 연둣빛을 뽐내고 있는 택시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김만섭(송강호)이 몰던 80년대 포니 차량이다. 요즘 떠오르는 뉴트로 핫플레이스답게 전시 곳곳마다 당대의 레트로한 감성이 묻어 있는데, 여기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영향이 큰 모양이다. 포니 차량 외에도 삼양라면, 미원 등 먹거리의 옛 모습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서울로, 서울로

2층은 1층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 전시 공간이다. ‘서울살이’ 전시는 서울 사람들의 결혼·출산·성장을 조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인구는 20만 명밖에 안 됐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100년 사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50배 수준으로 늘어 약 천만 명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호적 조사에 의하면 대대로 서울특별시에 살아온 토박이는 단 4.9%라고 한다. 즉, 기회의 땅 서울을 찾아 지방에서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2층에는 서울 터줏대감임을 증명하는 한성부 증표, 호패 등 각종 토박이 물건이 전시돼 있다. 서울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단체, ‘서울토박이회’의 흔적도 재미를 유발한다.   

   




뉴트로의 정수를 만나다

상설전시 가운데 2층은 레트로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레코드판이나 영화 포스터, 비디오테이프가 가득해 마치 근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하다. 이곳에서 서울 가족 사진관은 옛 사진관의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해놨다. 걸린 사진은 전부 기증자들의 실제 사진이다. 빛바랜 사진에서 깊은 인생사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서울에 있는 문구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성문구사’도 만나볼 수 있다. 유리 벽 너머 전시된 간판은 폐업 당시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간판 아래엔 로보트 태권V, 종이인형, 딱지 등 어릴 적에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 즐비하다. 아마 이곳은 서울생활사박물관을 통틀어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닐까. 따로 도슨트 해설사가 없어도 방문하기 좋은 특별한 개괄 전시다. “엄마 아빠 어렸을 땐 말이야”라고 운을 떼며 아이의 부모가 도슨트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이곳에서만큼은 아이가 된다. 눈망울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어른들이 그저 순수한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서울살이의 꿈과 현실

3층은 ‘서울의 꿈’이란 주제 아래 서울 사람들의 바쁜 일상을 소개한다. 주거·자녀교육·생업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시대 변화에 따른 주택의 변화를 현실감 있게 잘 복원했다. 개량 한옥의 안방에는 미닫이문이 있는 흑백텔레비전과 나무 장롱이 보인다. 1950~60년대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연탄아궁이는 90년대생인 내게 생소하게 여겨지기도. 이 밖에 거실과 부엌에 빼곡히 채워진 종합 가전, 생활물품 역시 예전 물건 그대로다. 평소 보기 어려운 물건을 보고 있으니 쉽게 지나치지 못할 노릇이다. 카메라 셔터를 계속해서 누를 정도로 매력이 넘친다. 그야말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죄다 포토존이다. 다른 시대를 들여다보자니 놀면서 근대사를 공부하는 느낌이랄까. 덩달아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부동산 열풍이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호기심이 일었다. 옛 시대를 잘 몰라 전시가 지루할 줄 알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놀라운 건 이렇게 볼거리가 풍부한데 입장료는 무려 무료다.      


오래된 것이 주는 따스함

서울생활사박물관에 들러야 할 이유는 또 있다. 4층 개관 특별전 ‘수집가의 방’으로 시민 수집가의 소장품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라운지, 서울 스타디움, 연극의 거리, 그릇의 집, 포켓몬 체육관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음악 라운지의 마이클 잭슨 관련 컬렉션이 도드라져 보였다. 음반·인쇄물·피규어 같은 각종 물건을 접하자니 살아생전 마이클 잭슨의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 옆의 서울 스타디움에선 88 서울올림픽 시절의 벅차오르는 감동을 나누고 있다. 성화 봉송부터 폐막까지 올림픽 소식이 게재된 스포츠 신문 100여 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 그땐 이랬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수집가의 방에선 시민 수집가가 일생 동안 모은 물건, 아니 보물을 엿볼 수 있었다. 살펴본 물건 속엔 흘러간 시대상과 사람 사는 생활사를 품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듬뿍 담겨 있다. 사실 온전히 옛 시대를 공감할 순 없었지만 옛것을 보니 어쩐지 포근함이 느껴졌다. 요즘 뉴트로가 대세인 건 마음의 여유가 없는 현대인에게 따뜻함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인기의 요인을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끝으로, 다가오는 주말엔 서울생활사박물관으로 떠나보자. 충분히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위치 서울 노원구 동일로174길 27

전화 02-3399-2900

시간 09:00-19:00(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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