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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2. 2019

[스페셜] ‘사진 찍기’의 온전한 복기

뉴트로 탐닉일기4


글·사진 라나    

 




숫자는 6에서 3으로 떨어지고 있다. 슬픈 일이다. 앞으로 딱 세 장이 남았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산 것은 작년 여름 도쿄 여행 때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남들만큼 필름 카메라라는 유행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미 한국 사람들이 코닥 어플이라느니 라이카 필름 카메라라느니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한창 호들갑을 떨고 난 뒤였다. 일본에서 후지 일회용 필름 카메라 하나쯤 사 오는 일은 그다지 개성적인 소비가 아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의미가 사뭇 달라져 있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체하고 있었던 사진 찍기의 전 과정을 샅샅이 복기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찰칵’소리

셔터를 처음 눌렀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왜 ‘찰칵’이 아니지? 검지에 힘을 주니 조그만 몸집 끝에서 ‘탈칵’ 하고 불편한 소리가 났다. 투박하고 어설펐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찰칵하는 ‘완벽한 소리’가 난다. 찰칵은 합법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우리가 알던 찰칵은 찰칵이 아니었다. 찰칵은 탈칵을 모방한 소리다. 그런데 탈칵보다도 더 탈칵스럽다. 스마트폰 화면을 누르면 찰칵하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토옥’이란 의성어가 적합하다. 그런데 찰칵이라니! 모사가 원본을 대체한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다.

그래도 마주한 진실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찰칵이야 365일 똑같은 소리를 내지만, 탈칵은 셔터를 누르는 강도와 속도에 따라 장음이 달라진다. 셔터를 누를 때 검지 끝에서 작은 떨림도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찍은 뒤의 ‘이완’의 경험은 또 어떤가. 셔터를 누르기 위해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검지엔 긴장이 맴돈다. 한쪽 눈을 질근 감은 뒤 스마트폰 화면의 77분의 1쯤 되는 뷰파인더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몰입감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탈칵. 그러고선 다음을 위해 얇은 톱니바퀴를 바짝 조인다. 톱니바퀴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팽팽하게. 플래시를 터트리기 위해선 별사탕처럼 조그만 정사각형 플라스틱을 오른손 검지로 들어 올려야 한다.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단계적이고 구체적이다. 동시에 육체적이다. 스마트폰에선 느낄 수 없었던 물리적 교감이다. 이는 필름 카메라와의 관계를 돈독히 만든다. 필름 카메라를 보면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애착도 생긴다. 필름이 유한한 탓도 크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는 아무 사진이나 마구 찍어댈 수 없다.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 장 한 장이 소중하다. 카메라 머리면 중앙의 숫자는 한 칸 한 칸 떨어지면서 우리들의 남은 시간을 알린다. 남다른 결단이나 의도가 있지 않는 한,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들고서 티라미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위(물론, 맛 좋은 조합이다.)를 각도나 배치를 달리하는 호들갑을 떨면서 20장, 30장씩 찍기란 쉽지 않다. 대신, 하우스 메이트들과의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나 생일 파티, 6년 동안 키우고 있는 선인장처럼 보다 특별한 풍경을 위해 아껴 쓰게 된다. 하루에 서너 장을 찍고 싶어도 다음 장면을 위해 남겨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사진과 사진 사이의 시간이 덤벙덤벙 튄다. 지난해 12월 24일에 사진을 찍은 뒤에 이듬해 3월, 밤 벚꽃을 담는 식이다. 1년 동안의 풍경은 조각조각 쪼개어져 기록된다.     


수정도 대체도 안 되는 불완전함의 매력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보면 불완전함을 오롯하게 받아들이는 미덕도 배우게 된다. 단연코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스마트폰 시대에 우리는 자주, 아무 때에나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하면 된다. 그러고선 새로 찍는다. 촬영도, 삭제도 손쉽다. 어플로 빛도 달리할 수 있다. 빛 말고도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가능한 예쁘고 완벽하게 편집할 수 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다. 사진을 찍은 뒤엔 뒤돌아볼 수 없다. 삭제도 안 된다. 필터도, 수정도,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하는 일도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무슨 사진을 찍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그러다 현상할 때야 비로소 그날의 사진과 재회하게 된다. 낯설고 반가운 순간이다. 하지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지 모른다. 사진 중에는 남자 친구의 눈 부분이 잔인하게 잘려 있는 사진도 있었고,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진, 또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힙(hip)한 분위기가 물씬 풍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진실도 맞닥트리게 된다. 필름 카메라를 써보고서야 사진 찍기가 당혹스러운 경험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시공(時空)을 되돌릴 수 없으니 진실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사진만큼 완전하지는 못해도 사진 속 우리는 탈칵처럼 진실하다. 원본이 편집본 앞에서 주눅들 필요도 없다. 원본은 원본 그대로 당당하게 존재한다.

맥주를 사려고 집 근처 마트로 향하는 고개에서 핑크빛 노을을 보았다. 너무나 예뻐서 필름 카메라로 찍어두고 싶었다. 집으로 냅다 뛰어가 카메라를 낚아채 왔다. 하지만 다시 고개에 섰을 때 노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허무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하지만 이 또한 어쩔 도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사진을 찍고 싶을 때 사진을 찍지 못하면 좀 어떤가. 불편함과 당황스러움. 이것이야말로 사진 찍기 본연의 모습이다. 필름을 다 채우면 당분간 새 필름 카페라를 사지 않을 계획이다. 그것이 지금의 필름 카메라에 대한 마땅한 도리일지 모른다. 일회용은 일회여서 하찮지 않다. 도리어 뜨겁다. 나의 첫 필름 카메라야, 그동안 즐거웠어. 안녕!      


라나  글쓰기 싫다면서 자꾸 글을 쓰는 사람. 유행 따라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샀다가 필카 매력에 빠졌다. 계속해서 일상을 필카로 기록할 예정.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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