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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Mar 14. 2024

골목길 야생화 5 큰개불알풀

이름 때문에 손해보지만 예쁜 꽃

큰개불알풀.
이름이 매우 망측스럽고 민망하고 남우세스럽죠?
그래도 낙엽 사이로 얼굴을 삐죽 내밀며 짓는 군청색 함박웃음만큼은 일품이랍니다.
몽글몽글 무리를 이룬 초록색 이파리들 사이에 콕 콕 박혀 있는 꽃들의 모습은 지상에 내려온 또 다른 별처럼 몽환적 느낌을 줘요.

영어명은 Bird's eye, 즉 '새의 눈'입니다.


군청색 또는  코발트 색의 큰개불알풀 꽃들. 얼핏 한 송이만 눈에 뜨여도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군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네이버 포스트 '김휴림의 엽서'


무엇보다 우리말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시죠?

야생화 동호인들 사이에 이름을 논의가 가장 분분한 대표적인 풀입니다.

일본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붙였다는 것, 너무 상스럽고 민망하다는 것, 예수와 연관된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는 것 등이 그 이유로 꼽힙니다.


일본명은 '큰 개(大犬)의 음낭(陰囊)', 발음은 오오이누노 후구리.

일본에서도 이름을 고치자는 거센 움직임이 있었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대요.

우리나라에선 동호인들 사이에 개명 캠페인이 일어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본 이름을 아울러 표기하곤 합니다.

정식 명칭은 여전히 큰개불알풀.

일본명을 그대로 쓴 `며느리밑씻개`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꽃보다 열매 모양을 보면 아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개의 거시기를 닮았어요.


사진 속 모습은 열매가 달린 지 얼마 안 된 시기의 것인데요.
저게 푸욱 익어 누리끼리해지면 개가 갖고 있는 거시기의 사실감은 배가됩니다.

학명은 Veronica persica. 페르시아의 베로니카.
베로니카는 성경에 나오는 여인으로 나중 성녀가 된 이름인데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의 형장을 향해 가던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준 주인공입니다.
그 손수건에서 예수님의 얼굴 형상이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것으로 황제의 불치병을 낫게 했다지요.


꽃의 하얀 중심부가 예수의 얼굴을 연상시켜 서양에서는 성스러운 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 `일본 & 웹이야기 나까마`


이 큰개불알풀의 꽃에서도 바로 그 형상이 보인다고 해서 서양인들은 이 꽃을 신성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4장으로 이루어진 꽃잎에는 안쪽으로 죽죽~~ 줄들이 그어져 있죠?
그게 예수님 얼굴 형상을 볼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선들인데요.

저는 아직까지는 그것알아볼 수 있는 은총을 입지는 못했어요.


안쪽을 향한 줄무늬들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은 이렇습니다.
거의 모든 꽃 피는 식물은 벌, 나비, 등에와 같은 수분매개자(pollinator), 즉 중매쟁이를 초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 온갖 노력을 다해요.
꽃에 도착한 손님이 있느냐 없느냐는 종족의 보존이냐 단절이냐를 가르는 핵심이지요.


대부분이 곤충인 이 귀한 손님들은 나름대로 먹고 살기 위해 꿀을 찾아 헤맵니다.

어찌어찌 찾아온 귀빈께 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안내자 역할을 바로 저 가이드라인 즉, 유도선들이 맡는다는 것이지요. 마치 공항 활주로의 착륙 유도등처럼요.
예쁜 꽃들이 친절하기까지 한 거죠!


중앙의 흰색과 군청색 잎에 그어진 줄무늬를 유심히 보면 예수님 얼굴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서양인들이 신성하게 여긴다.
개불알풀 꽃.  큰개불알풀 꽃이 군청색인 데 비해 핑크빛이 돈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예쁜 꽃에 맛난 꿀, 이는 수분(受粉)이라 불리는, 일생일대의 숙제, 즉 꽃가루받이를 위한 무대장치이자 선물입니다.

그  꿀을 찾아 유도선으로 들어가는 중에 곤충의 머리나 다리는 온통 꽃가루 투성이가 됩니다.

이미 다른 꽃을 찾아갔던 곤충의 모습은?

꽃가루를 잔뜩 묻혀 왔겠죠.

로운 꽃에 안착한  곤충들은 저 안내자를 따라가면서 이미 갖고온 꽃가루 일부를 떨어뜨릴 수밖에요.

이 순간 꽃가루받이가 이뤄집니다.


꽃가루받이가 수월하다면 어떤 식물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화려한 꽃이나  꿀을 만들 필요가 없겠죠.

바람이 수분매개자가 되는 풍매화들. 소나무나 은행나무 등도 꽃이 없지 않아요. 우리 눈에 잘 뜨이지 않을 정도로 초라할 뿐.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손님께 저는 맛난 꿀을 드립니다!"

자연계에도 공짜 점심은 없는 셈이지요.

꽃들은 대개 제 역할을 다하면 시들어 떨어지고 마는데요.
벚꽃의 경우는 쿨하다고 할 만큼 일순간에 꽃비가 되어 사라지죠?그래서 일본인들이 좋아한다고도 하고요.
순백의 목련은 칙칙한 갈색으로 변했다가 퍽 하고 떨어져, 주변을 눈살이 찌푸러지도록 지저분하게 만들어요.


수분을 마친 큰개불알풀은 산들바람에도, 살짝궁 터치에도, 톡 소리가 날 만큼 꽃모가지가 통째로 떨어져 버립니다.

임무를 마친 수술은 꽃잎과 운명을 함께하지요.


앞으로 수정(受精)의 과정을 거쳐 씨앗을 잉태할 암술은 아직 제자리를 지켜요.

밑둥에 씨방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갖는 종족보존의 본능은 참으로 사람을 숙연케 만듭니다.


현삼과의 2년생 풀.
외국 귀화식물.
우리나라에도 분홍빛 꽃 피우는 ‘개불알풀’이 있는데요.
걔네들보다 꽃이 2배쯤 커서 ‘큰개불알풀’이라는 이름 얻었답니다.
귀화종으로 `선개불알풀`도 있고요.


길가나 빈터의 약간 습한 곳에서 자랍니다.
10~30cm까지 큰다는데, 지금 시즌엔 완전 땅꼬마입니다.
가지에 부드러운 털이 있어요.
잎은 줄기 밑부분에서는 마주나고 윗부분에서는 어긋납니다.
삼각형 또는 달걀모양 삼각형 잎의 길이와 폭은 각각 1~2cm.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잎 양면에 털이 있어요.

도감에는 꽃이 4~6월에 핀다고 되어 있는데, 전성기가 그렇다는 뜻이겠죠?
꽃의 지름은 8~10mm.
꽃받침도 4개, 꽃잎도 4개. 암술 하나에 수술이 양옆으로 뿔처럼 돋아나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분포.
한국에서는 남부 지방에서 많이 자라지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꽃말은 봄의 전령답게 ‘기쁜 소식’
봄까치꽃, 큰지금, 봄까지꽃, 큰봄까지꽃, 왕지금꼬리풀(북한), 큰봄까치꽃 등으로도 불려요.

사실 ‘개불알’이 들어간 꽃과 풀이 의외로 많은데요.
개불알꽃은 복주머니난이라고도 해요.
꽃모양 자체가 진짜 닮았죠.
사촌들로는 흰개불알꽃, 털개불알꽃이 있네요.


개불알꽃/복주머니란.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매우 귀하신 몸이다. 사진=들꽃사랑연구회


 이름인 큰개불알풀을 제목으로 해서 쓴 시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시인 이해인 수녀는 '봄까치꽃'이라는 시를 썼군요.


봄까치꽃  


까치가 놀러 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이해인


 위의 제 사진은  지난 주말 우리동네 작은 동산 양지바른 곳에서 찍었어요.
쓸고 닦고 몇 송이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답니다.
무작정 들이대는 무대뽀 사진, 저만의 야생화 감상법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여기 빼어난 사진들은 블로그 `일본 & 웹이야기 나까마`를 운영하시는 김타쿠닷컴 님.

네이버 포스트 `김휴림의 엽서`를 발행하시는 김휴림 님 두 분의 흔쾌한 허락으로 실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무늬만 회원이지만, 들꽃사랑연구회 밴드에서도 사진 신세졌음을 밝힙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대의 좋은 면만 보려는 습관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물리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큰개불알풀'도 이름만으로는 상스러울 거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겠어요.
하지만 앙증맞고 예쁜 꽃, 꽃에 얽힌 성스러운 이야기, '좋은 소식'이라는 꽃말.

이러한 장점들만 고려한다면, 선입견은 어느새 사라지고, 결국은 이 꽃을 사랑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좋은 사람, 좋은 가정, 좋은 이웃, 좋은 사회, 좋은 나라, 좋은 세상이 되는 비결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상대와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집중하자.'


작금의 세계 정세나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의 양극화는 차이를 최대한 부각해 차별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김동인의 단편 <발가락이 닮았다> 주인공이 자신과 갓태어난 아기와의 공통점을 찾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끝에 얻은 결론이죠?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무서워도, 약하고 무기력한 듯 보이는 민초들이 항상 제 갈 길을 가면서 세상을 바꿉니다.


개똥철학인가요?

큰개불알풀, 개똥철학,  용서해주시리라 믿습니다.


2024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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