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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Mar 15. 2024

골목길 야생화 6 서양민들레

토종을 밀어낸 왕성한 번식력의 소유자


서양민들레입니다.

어제 근처 작은 공원에서 딱 한 송이가 핀 걸 발견했어요. 
이제 가을까지 전국 어디서든 실컷 보게 될 겁니다.


민들레면 민들레지 웬 서양?
원래 토종 민들레가 있었는데요.
서양에서 들어온 민들레를 구분하다 보니 '서양'이라는 '접두사'가 붙었습니다.

꽃이름 맨 앞에 붙는 접두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설명할 기회를 가질게요.


토종은 그냥 '민들레'.

도감에는 이 둘을 민들레와 서양민들레로 구분해 다루고 있습니다.

민들레의 어원은 들판에 지천이라는 뜻의 맨들에, 문을 둘러싸고 핀다는 의미에서 문둘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둘 다 흔하다는 느낌이죠?


토종과 서양 민들레, 겉모습도 다를까요?
거의 비슷한데, 딱 한 군데 차이가 납니다.
꽃의 뒷면을 보면 꽃잎들둘러싸고 있는 꽃받침 묶음, 총포편이라는 게 있어요.
그게 꽃잎 쪽으로 밀착되어 있으면 토종, 아래로 처져 있으면 서양민들레.
힙업 토종, 힙다운 서양!


총포편이 꽃잎들에게 바짝 붙어 있는 힙업이면 우리 토종 민들레.
총포편이 아래로 처져 있는 힙다운은 서양민들레,


전체적으로는 서양민들레가 덩치도 크고 꽃도 크고 억셉니다. 체격상으로 압도적 우위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속담은 민들레에 딱 맞는 말인데요.
서양민들레의 엄청난 '번식력'에 토종은 산이나 들로 나가서야, 그것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서양민들레는 가을까지 계속 꽃을 피워요. 토종 민들레는 6월까지만 꽃을 피우니 보기가 더욱 어렵지요.

번식력의 차이는 왜 생겼을까요.
토종 민들레는 같은 종끼리만 수분한대.
그리고 자가수분, 즉 같은 꽃에 있는 암술과 수술끼리는 꽃가루를 주지도 받지도 않아요.

다른 꽃에서 나온 꽃가루로 하는 타가수분만 해요.

고집 센 점에선 '일편단심'인 셈인데요.
이게 경쟁력에선 매우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서양민들레는 타가수분도 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자가수분도 합니다.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처럼 종류에 따라 꽃의 수명은 한정돼 있는데요.

민들레는 단 하루만 피었다가는 집니다!


피어 있는 날 마침 비나 추위 등 기상이 안 좋거 벌 나비 등 수분 매개 곤충이 없으면, 그 꽃은 번식이 어려워집니다.

서양민들레는 이럴 때 자기끼리 시집장가가는 자가수분을 해버려요.
'동계교배' 혹은 '근친교배'를 극구 피하려는  인간은 물론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인데, 이를 개의치 않는 겁니다.


같은 꽃에서 수정돼 태어난 2세는 유전자가 부모와 똑같아요. 자기 복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보았던 별꽃도 때로는 자기 복제를 한다고 했죠? 제비꽃, 닭의장풀도 그래요.

제비꽃은 꽃망울 상태로 있다가 날이 춥거나 비가 오면 아예 꽃을 피우지 않아요. 꽃봉오리 안에서 바로 꽃가루받이를 해버립니다.
닭의장풀은 일단 꽃은 피우되, 수분이 실패한 저녁 무렵 꽃잎을 닫을 때 대사를 치러요.

자기 복제를 통한 번식은 특정 미생물이나 질병에 감염될 경우, 전체가 멸종할 수 있다는 위험있어요. 

이에 비해 타가수분도 하고 비상시에 자가수분도 한다면, 번식력 측면에선 천하무적이 되는 겁니다.

토종 민들레는  동안만 꽃을 피워요. 서양민들레는 봄 여름 가을 내내~~.
게임 끝이죠.


토종 민들레중 하나인 흰민들레. 사진=들꽃사랑연구회.


서양민들레는 일편단심 토종 아가씨도 건드립니다.

아니, 이 표현은 옳지 않고요.

토종 민들레가 타가수분을 고집하기 때문에 서양민들레의 꽃가루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유전자가 반반인 잡종 민들레가  나오고, 이를 반복하면 3~4세대 후엔 서양민들레가 니다.
반대 방향, 즉 토종민들레의 꽃가루를 서양민들레의 암술이 받아들이기도 하겠지요.

서양민들레가 온 산하를 뒤덮게 된 건 환경 파괴 때문이라고, <풀들의 전략> 저자인 일본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지적해요.
도시 난개발로 인해 기존 토종 식물들이 사라진 자리에 외래종들이 자리 잡았을 뿐이니, 쫓아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원인을 제공해 놓고 외래종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지요.

민들레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이예요.
국화과는 꽃이 한 송이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수백 송이 꽃이 하나로 묶여 있는 꽃이에요.


민들레 씨앗들이 공 모양을 이루고 있다.각각의 씨앗들은 털 모양의  관모 아래 매달려 공중 비행을 한 뒤 지상으로 떨어져 번식을 한다.


공처럼 둥근 열매에서 민들레 씨앗 하나하나가 하늘로 두둥실 떠서 퍼져나가는 것 많은 꽃이 한 송이로 묶여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볕이 잘 드는 곳이면 시멘트 틈에서도 자랄 만큼 생명력이 막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뿌리가 최대 2m가 넘을 정도로 땅속 기초가 튼튼합니다.
키는 10~30㎝. 잎의 길이는 20~30㎝, 폭은 2.5~5㎝.
줄기 없이 잎이 뿌리에서 뭉쳐나며 옆으로 퍼집니다.
냉이처럼 로제트 형태로 겨울을 나요.


잎들이 장미 모양의 로제트 형태로 퍼져 있다. 겨우내 지열을 가두고, 햇볕을 받을 수 있었기에 이른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다.


잎은 깃꼴로 깊이 패어 들어간 모양이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털도 약간 있어요.
'사자의 이빨' 같다고 해서 영어로는 dandelion. '댄딜라이언'으로 발음해요.
라틴어에서 유래한 dan은 이빨이라는 뜻, lion은 사자. 치과의사를 뜻하는 dentist도 여기서 나왔다죠.

열매는 수과(瘦果 : 익어도 터지지 않는 씨)로 길이 3∼3.5mm의 긴 타원 모양입니다.
길이 6mm 정도의 은빛 관모(冠毛 : 갓털)가 달려 있어요.
낙하산처럼 바람에 두둥실 날아갈 수 있는 구조. 최대 46km까지 날아갔다는 보고도 있군요.

한방에선 포공영(蒲公英)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맹장염, 황달 등에 효과가 있대요.
민간에선 젖을 빨리 나오게 할 때 쓴답니다.
앉은뱅이, 안질방이라는 정겨운 이름으로도 불리네요.

사촌으로는 흰-, 흰 노랑-, 산-, 좀-, 키다리민들레가 있고요.
원예종으로는 알프스민들레가 있습니다.
꽃말은 ‘일편단심’이 아니고, ‘행복’, ‘감사의 마음’, ‘사랑의 사도’, ‘바람둥이’ 등으로 엄청 많아요.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포공구덕'이라는 글 받았습니다.

민들레가 갖춘 아홉 가지 덕을 칭송하는 내용인데요. 수정을 거쳐 소개합니다.

원문 출처를 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포공구덕(蒲公九德)


포공(蒲公)이란 민들레를 부르는 말로, 한의학에서는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한다.
옛날 서당에서는 뜰에 민들레를 심어, 제자들로 하여금 매일같이 보면서 민들레의 아홉 가지 덕목배우도록 했다.

이를 포공구덕(蒲公九德)이라 다.

1)인(忍)

민들레는 밟히거나, 우마차가 지나다녀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어, 인(忍)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2) 강(剛)

민들레는 뿌리를 자르거나 캐내어 며칠을 말려도 싹이 돋고, 호미로 난도질을 해도 가느다란 뿌리를 내려 굳건히 살아나는 강(剛)의 덕목(德目)을 지니고 있다.

3) 예(禮)

민들레는 돋아난 줄기의 수만큼 꽃대가 올라온다. 먼저 핀 꽃이 지고 난 뒤 다음 꽃대가 꽃을 피우니, 예(禮)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4) 용(用)

민들레는 인간에게 여린 잎이나 뿌리를 먹을 수 있도록 온몸을 다 바쳐 쓰임새가 있으니, 용(用)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5) 정(情)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민들레는 꽃에 꿀이 많아 벌과 나비에 나누어주는 정(情)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6) 자(慈)

민들레는 잎과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흰 젖이 상처를 낫게 하는 약이 된다.
이는 사랑과 자비를 뜻 하는 자(慈)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7) 효(孝)

민들레는 소중한 약재로서 뿌리를 달여 부모님께 드리면, 흰머리를 검게 하니, 효(孝)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8) 인(仁)

민들레는 모든 종기를 낫게 하는 을 내어 자기의 몸을 희생시키니, 인(仁)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9) 용(勇)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돌밭이든  옥토이든 가리지 않고 스스로 번식하고 융성하니, 용(勇)의 덕목(德目)을 지니고 있다.


민들레 씨앗. 아래쪽이 씨앗이다. 위의 털은 갓털 또는 관모라고 한다. 바람에 날리기 쉽고, 공중에 오래 머물 수 있다. 적당한 땅에 떨어지면 뿌리부터 내린다.

■ 민들레 씨앗은 홀씨? 땡~ 아닙니다!


가수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노래 제목과 가사는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홀씨'를 대부분 '홀로 날아가는 꽃씨' 정도로 이해하는데요.


홀씨는 고사리, 곰팡이, 버섯, 이끼처럼 꽃이 없는 식물(민꽃식물)이 번식할 때 배우자 없이 홀로 만든(무성생식) 세포입니다. 세포로 이루어진 씨앗이라서 포자(胞子)라고도 하고, 포자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포자낭이라고 부릅니다.


민들레는 암수 배우자가 있는(유성생식) 식물이므로, 그 씨앗은 홀씨가 아닙니다.


2024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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