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야생화 17 괭이눈

황금 식탁에 놓인 황금 도시락들

괭이눈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그 보고싶어 하던 괭이눈을 지난주 식장산에서 만났다고 말씀드렸지요. 어제 다시 그리로 가서 지천으로 널린 고양이 눈들과 눈맞춤을 하고 왔습니다.

웬 고양이 눈?

괭이는 사투리가 아니고 '고양이의 준말'로 국어사전에 나와 있어요.
이장희 시인은 고양이의 눈을 '금방울처럼 호동그랗다'라고 표현했군요.

사전에는 '회동그랗다'로 나와요. '놀라거나 두려워서 크게 뜬 눈의 모양이 동그랗다' 우리가 흔히 쓰는 '휘둥그렇다'는 회동그랗다보다 큰말.

금방울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과, 꽃 색깔이 황금빛인 '괭이눈'이라는 이름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황금 식탁 위에 차려진 황금 도시락들. 네모진 상자처럼 보이는 것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안에는 8개의 수술과 2개의 암술대가 있다.

개와 함께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의 대표로 꼽히는 고양이.
어근 '골'에 '앙이'가 붙은 말이라네요.
골앙이> 고랑이> 고앙이> 고양이> 괭이로 변했다고 합니다. 투르크 어에서는 고양이가 케디(kedi)인데, '골' 이전 고양이를 뜻하던 '곧'과 같은 어원일 것으로 추정한답니다.

단음절 '괴'도 고양이를 뜻하는데요.
흔히 '글씨를 개발새발 쓴다'라고 표현하는데, 이건 잘못된 표기랍니다. '괴발개발'이 맞고요.
그 뜻은 '(고양이 발자국과 개 발자국처럼 무질서하다는 뜻에서) 글씨를 함부로 갈겨써 놓은 모양'을 일컫습니다.

괭이눈 설명입니다.

쌍떡잎식물 장미목 범의귀과 괭이눈 속의 여러해살이풀.
산에서 자라며 4~5월에 연한 황록색 꽃이 핀다.
학명 Chrysosplenium grayanum 

속명 크리소스플레늄(Chrysosplenum)은 그리스어로 황금이라는 뜻을 가진 크리소스(chrysos), 비장(脾臟)을 뜻하는 스플린(spleen)의 합성어.
한국이 원산지. 금요자라고도 한다.

산이나 들의 습지에서 자란다. 수정과 열매 퍼뜨리기가 끝나면 시들어 사라진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산과 들의 습지에서 자란다.
꽃이 진 후 줄기가 땅 위로 벋고 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꽃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는 5~20cm.

잎은 길이 5~20mm, 나비 5~18mm.
꽃줄기에 2장씩 마주난다. 잎자루는 짧고 달걀 모양. 안으로 굽은 톱니가 있다.

4~5월에 노란색 작은 꽃이 촘촘히 모여 핀다.
꽃 둘레의 잎은 처음에는 녹색이다가 노란 꽃이 피면 함께 황금색으로 변한다. 꽃의 수정이 끝나면 다시 녹색으로 돌아간다.
꽃받침잎은 곧추서고 둥글며 수술은 8개, 암술은 2개. 가운데 꽃밥은 노란색.

열매는 삭과. 다 익으면 2개로 깊게 갈라진다.
갈라진 조각 끝에 1개의 봉합선이 있다.
씨는 다갈색이고, 광택이 있으며 전체에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있다.
열매가 익은 모양 또한 고양이 눈처럼 보인다.

열매가 익을 때면 4각형 모양의 꽃받침이 양쪽으로 찢어진다. 이 또한 고양이 눈을 닮았다. 씨앗은 빗방울에 튕겨  퍼져나간다 사진= doopedia

어린 순을 나물로 먹고 관상용으로 심는다. 한국·중국·쿠릴열도(남부)·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꽃말은 '골짜기의 황금', '변하기 쉬운 마음'.

고양이를 부정적 동물로 인식하는 일본에선 고양이 눈은 '쉽게 변하는 마음'을 뜻한다.

전체에 흰 털이 많은 것은 흰털괭이눈이다.
원줄기는 아래에서 갈라져 올라온다. 괭이눈 가운데 꽃이 큰 편이다. 열매를 맺으면 불그레해진다. 아래의 어제 제가 찍은 이 사진 속 주인공은 흰털괭이눈으로 보입니다.

줄기에 난 흰털로 보아 흰털괭이눈으로 생각된다.

괭이눈 가족도 참 많은데요.
오대산-, 애기-, 누른-, 산-, 바위-, 털-, 금-, 선-, 가지-, 흰털괭이눈이 있군요.
이 밖에도 이름에 괭이가 들어간 식물이 더러 있어요. 괭이밥, 괭이사초, 괭이싸리 등이 그것입니다.

꽃이 필 때 주변 잎까지 꽃과 같은 색을 띠는 건 작은 꽃을 크게 보여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작은 꽃들은 크게 보이기 위해서는 일단 모여요.

그래도 부족하면 잎까지 동원하는 겁니다.

한 송이 큰 꽃보다 작은 꽃으로 모이는 방식이 더 진화된 것이라네요. 천적에게 먹히거나 손상을 당할 경우, 큰 꽃은 치명상을 입지만 모여 있는 작은 꽃들은 일부라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작은 꽃들이 힘을 합쳐 원추형이나 이삭모양, 우산모양을 갖추는 건 단순 아름다움을 위해서가 아니랍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나뭇가지 위에 앉은 참새들을 그린 화재 변상벽의 묘작도. 노인에게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고양이와 닭 그림으론 18세기 화가 화재(和齋) 변상벽이 유명한데요. 별명이 '변고양이', '변닭'일 정도였답니다.

고양이는 우리 옛 그림 특히 민화에 많이 등장해요.
까치와 함께 있는 묘작도, 나비가 있는 묘접도.
이는 고양이 묘(猫)가 70세 노인 모(耄)와 '마오(mao)'로 중국 발음이 같아서인데요.
묘작도의 경우, 참새 작(雀)이 기쁨을 뜻하는 까치의 이름 작(鵲)과 발음이 같아서랍니다.
70세, 즉 고희를 맞는 주인공을 축하하는 뜻이 담긴 거죠.
묘접도의 나비 접(蝶)은 80세 노인을 일컫는 질(耋)을 뜻해요. 70~80세까지 장수하라는 기원이 담긴 그림인 겁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양이가 둘이 있어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리고 몽테뉴의 고양이.
들어보셨나요?

먼저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odinger's cat).
양자역학 방정식을 고안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 그는 이런 사고실험을 해요.
'사방이 막힌 상자 속에 고양이를 반감기가 1시간인 치명적 방사성 물질과 함께 넣는다. 1시간 뒤 그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고양이의 생존 여부는 상자를 열어봐야 알 수 있겠죠?

기존의 해석은 관측하지 않아도 고양이가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상태일 것, 즉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건데요.

슈뢰딩거는 고양이가 죽었거나 살아있는 둘 중 하나이고, 관측하기 전에는 모른다라는 겁니다.

그게 그 소리이지만 결국 그는, 관측 행위 자체가 관측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미시 세계인 양자역학을 설명해요. 어렵죠? 어렵네요^^

몽테뉴의 고양이.
그의 저서 <수상록>에는 고양이와 노는 이야기가 더러 나옵니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을 연상케 하는 대목도 있어요.

"고양이와 놀고 있을 때,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ᆢ]
우리는 서로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며 함께 논다. 내가 장난을 걸거나 그만두겠다고 할 때도 있지만, 고양이가 장난을 걸거나 그만두겠다고 할 때도 있다. [ᆢ] 동물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물도 우리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물과 우리 사이의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결점은 동물의 결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결점이 아니겠는가."

몽테뉴는 이런 말도 남겨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위안을 주기도 하는군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자연이 상세하고 완벽하게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하여 걱정 말라."

■ 오늘이 4월 1일!
매달 첫날이 되면 인사를 전해오는 후배가 하나 있는데요. 멋진 사진과 글로 새로운 달을 열어줍니다. 2024년 4월은 또 어떤 말로 기운을 북돋울지 궁금합니다.

고양이와 관련된 우리 속담 하나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고양이 쥐 생각'

마음속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만 누구를 위하여 생각해 주는 척할 때 쓰는 말.

열흘 남은 총선.

고양이가 쥐를 생각한다는 말에 낚이면 안 되겠죠?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말을 해도, 어쨌든 그게 나 잡아먹자는 뜻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하며 투표합시다.

2024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