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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Apr 02. 2024

골목길 야생화 18 꽃다지


꽃다지

내일로 예보된 비가 봄과 꽃을 주춤거리게 하는 마지막 인가요?
낮엔 더워 소매를 걷어야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할 때는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으스스하게 만들더군요.
이번 비 그치면 전형적인 봄날이라죠?
우리 동네 벚꽃동산은 80% 정도 만개한 상태라 약간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성급한 젊은이들은 낮엔 물론 자정 무렵까지 벚꽃 사이사이를 누비며 하하 호호 왁자합니다.

1년에 딱 너 닷새 동안 동네는 활기가 넘칩니다.



왕벚나무 꽃이 핀 우리 동네 공원. 꽃으로 하늘을 가려야 만개된 상태다. 그래도 인파가 몰린다.


이름도 예쁜 꽃다지를 소개합니다.
꽃이 닥지닥지 붙어서 핀다고 이름이 꽃다지가 되었다네요. 꽃따지, 딱지나물이라고도 불립니다. 광대나물에게도 코딱지나물이라는 별명 있었죠.


배추과(과거 십자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예요. 냉이도 배추과였죠?

4장의 꽃잎이 열 십 자 모양으로 핍니다.

냉이는 흰색, 꽃다지는 노란색 꽃을 피우죠.

냉이 근처엔 꽃다지가 반드시라고 할 만큼 붙어 있습니다. 생육 조건이 비슷해서일 겁니다. 볕 잘 드는 들판이나 산 어디서든 만날 수 있어요.


꽃잎이 열 십자로 갈라진 식물을 십자화과로 분류했다. 지금은 배추과라고 부른다.

키는 약 20㎝.

방석처럼 잎을 땅바닥에 넓게 펼친 채로 겨울을 났어요. 이런 식물을 '로제트 식물'이라고 했지요. 땅에 붙어 겨울바람을 피하고요. 겨울 햇볕이나마 고루 받아 꾸준히 양분을 축적하면서, 땅의 열기까지도 가두어 뿌리가 어는 걸 막았지요.

겨우내 3중 보온장치를 풀가동한 거죠? 이른 봄 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공통된 겨울나기 방식입니다. 냉이, 민들레, 지칭개, 엉겅퀴, 망초, 애기똥풀.


이 정도로 작은 키와 작은 꽃을 찍으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뿌리에 달린 잎은 주걱 모양의 긴 타원형이고요.

잎 길이는 2~4㎝, 폭 0.8~1.5㎝.

풀 전체에 짧은 털이 빽빽이 납니다.

줄기는 곧게 서며 가지를 칩니다.

4~6월에 노란색 꽃이 줄기 끝에 다닥다닥 피어요.

꽃잎은 주걱 모양이고 길이 3mm 정도.

열매는 7~8월 긴 타원형으로 길이 1㎝ 미만으로 달립니다. 갈색의 씨앗을 씹으면 매운맛이 난다네요.


꽃다지 열매. 사진= 듀프레인님 블로그


어린순은 나물이나 국거리로 먹는답니다.

씨는 변비에 좋고, 한방에선 전초(全草)와 씨를 이뇨제로 쓴대요. 잡초는 대개 약하든 강하든 거의 모두 이뇨작용이 있다는군요.

꽃말은 ‘무관심’.



강원도 구전 민요 ‘나물 타령’ 들어보시죠.


비 오느냐 우산나물/ 강남이냐 제비풀/ 군불이냐 장작나물/ 마셨느냐 취나물

취했느냐 곤드레/ 담 넘느냐 넘나물/ 시집갔다 소박나물/ 오자마자 가서 풀


안 줄까 봐 달래나물/ 간지럽네 오금풀/ 이산 저산 번개나물/ 정 주듯이 찔끔초

한푼두푼 돈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 꾸부정 활나물/ 돌돌 말아 고비나물


칭칭 감아 감돌레/ 집어 뜯어 꽃다지/ 쑥쑥 뽑아 나생이/ 머리끝에 댕기나물

사흘 굶어 말랭이/ 안 주나 보게 도라지/ 시집살이 씀바귀/ 입 맞추어 쪽나물!


구전 민요 '나물타령'에 등장하는 나물 모두 재미있는 이름을 가졌지요?


나무만 등장하는 '나무타령'도 그 못지않습니다.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방귀 뽕뽕 뽕나무/
물에 똥똥 똥나무/ 바람 솔솔 솔나무/ 방귀 쌀쌀 싸리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하늘 중천 구름나무/ 달 가운데 계수나무/ 땅땅땅땅 땅버들나무/ 구십구에 백자나무/


열아홉에 쉬인나무/ 처녀 애기 자장나무/
요실고실 실버드나무/ 따끈따끈 가지나무/ 밑구녕에 쑥나무!
- <조선구전민요집>


온갖 사물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요.

통성명을 하지 못한 사람을 제삼자에게 일컬을 때 우리는 키다리, 홀쭉이, 둥글넓적이, 왕방울눈, 수다쟁이처럼 그의 전체적 모양이나 얼굴 생김새, 특징에 따라 부르겠지요. 어제 본 괭이눈처럼요.


서로 다르게 칭하다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별명이 되겠지요. 같은 식물이라도 지역에 따라 이름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다른 별명들이 통합될 필요성 때문에 정식 이름으로 정해진 식물들이 많아요.


조팝나무 꽃. 좁쌀 넣은 밥이라는 데서 유래. 우리동네엔 이미 피었다. 이팝나무는 순쌀밥인 이밥에서 유래했다.


우선 나무 몇 가지 예를 들면,

조팝나무는 조가 섞인 밥.

이팝나무는 흰쌀밥의 북한 사투리인 이밥.

자귀나무는 밤에 짝처럼 포개지는 잎

쥐똥나무는 열매 모양이 쥐똥.


풀이름도 셀 수 없지만,

애기똥풀은  줄기 자르면 애기 똥 같은 노란 즙

우산나물은 우산을 펼친 모양

피나물은 줄기 자르면 붉은 즙

노루오줌은 뿌리에서 나는 냄새

곰취는 곰발바닥 같은 넓은 잎.


계란꽃이라는 귀여운 별명을 가진 망초는, 이 꽃이 일본에서 들어온 뒤 우리나라가 망했다는 데서 유래했어요. 식물 이름에는 이처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도 담고 있습니다.


큰개불알풀이라는 남사스러운 꽃 이름에 예수님의 사연이 얽혀 있고, 연꽃이나 털부처꽃 혹은 불두화 이름에는 부처님이 관련 있고,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 우리 할미꽃은 씁쓸한 노년의 모습을 드러내는 전설과 맞닿아 있지요.

식물인문학이 성립 가능한 이유입니다.


제가 만든 네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정답은 똑같습니다.


저 들과 산에 피다 지는 꽃과 나무는 인류보다 오래되었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먹여 살리고 있고, 생장소멸  또는 생노병사의 법칙을 드러내 인간을 가르치고 있고, 나약한 인간이 길흉화복을 빌고 있대상입니다.

그들과 인간 중 과연 누가 더 위대한 존재일까요?


꽃다지나 냉이나 별꽃이나 괭이눈을 만나기 위해서 무릎을 꿇거나 주저앉아야 하는 건,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나무를 우러러보아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몸을 낮춰라/겸손해라, 눈높이를 맞춰라/배려하라, 들어라/경청해라.

누구가 더 잘하고 있을까요?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송을 받는 분들이 산과 들로 쏘다니며 영감을 얻어 우뚝 선 뒤 귀담아듣지 않는 인간에게 외쳤던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라, 용서하라 혹은 덧없다 등등이죠? 이 모두  혹은 대부분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처럼 살고 싶다고 말할 기회가 있을 때, 그 당신은 누구였으면 좋겠습니까?




2024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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