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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Mar 22. 2024

골목길 야생화 11 광대나물

봄꽃 축제를 알리는 서커스단 바람잡이


광대나물

광대들이 모여 재주를 겨루는 광대나물입니다.
사진을 잘 보셔야 하는데요.
토끼 귀모양 쫑긋 솟은 털방망이 보이시죠?
그 윗부분 뚜껑이 열리면, 아랫입술이 펴지면서 광대가 혀를 날름 내민 모습이 됩니다.
아니면 물개가 손뼉 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뚜껑이었던 부분은 자연 윗입술이 됩니다.


이처럼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벌린 모양의 꽃을 '순형화(脣形花)'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입술 모양 꽃'. 줄여서 입술꽃?
꿀풀과의 대부분이 입술꽃을 갖고 있어요.
샐비어, 라벤더, 꿀풀, 익모초, 방아풀, 박하ᆢ.


우리동네표 광대나물, 올해 처음으로 어제 만났다. 서커스단 광대처럼 봄꽃 축제를 알리는 바람잡이다.


이들 순형화가 벌 나비가 오도록 유혹하는 전략, 꽃가루받이를 거쳐 수정(受精)하는 전략은 대단히 놀라워요.
우선 꽃들은 자가수분(自家受粉), 즉 근친교배
(近親交配, inbreeding) 또는 동체교배를 극도로 회피합니다.
유전인자가 다양하지 못하면 전염병 등으로 멸종할 염려가 있거든요.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서는 전체 인구 800만 명 중 200만 명이 굶어 죽었어요. 그 원인은 주식인 감자가 잎마름병으로 전멸한 때문이었죠. 

감자는 싹이 나온 부분을 조각내어 땅에 심기에 유전자가 똑같은 자기 복제로 번식합니다.

잎마름병 같은 전염병에 면역력이 없다면, 그 종은 전멸하게 됩니다.


가깝게는 '그로미셜'종이라는 맛 있는 바나나가 멸종된 일이 있었습니다. 씨앗이 없는 바나나는 씨를 뿌려서 재배할 수 없어요. 우수한 품질을 가진 바나나의 뿌리나 줄기를 접붙여서 번식시키지요. 유전자가 극도로 단순해진 상태에서 곰팡이인 '파나마병'에 감염돼 전멸했어요.


현재는 파나마병을 견디는 '캐번디시'종으로 대체되어 전 세계에서 재배되고 있는데요. 이 또한 변종 파나마 곰팡이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해 있답니다.


감자나 바나나의 복제를 통한 번식보다 훨씬 우수한 방법이 바로 씨앗을 만드는 데요.

겉씨식물보다 속씨식물이 더 발달한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겉씨식물이란 솔방울처럼 씨앗이 겉으로 드러난 식물. 속씨식물은 씨방 속에 씨앗이  밑씨가 감춰져 있는 식물.


겉씨식물이든 속씨식물이든 씨앗으로 번식하는 식물 대부분은 같은 나무나 꽃에 있는 암술과 수술이 사랑하는 (자가수분) 막아야 해요.
그러나 같은 종의 다른 꽃가루는 적극 받아들여야(타가수분) 하죠.
종이 전혀 다른 녀석들은 철저히 가려내 아예 상대도 말아야 하고요.
꽃은 이런 3중의 난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정밀하게 가동시킵니다.


아래쪽은 착륙장이다. 이 곳에 안착한 벌은 무늬를 따라 들어가 꿀을 빤다. 윗입술에는 수분을 위한 암술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순형화 대부분이 아래쪽 쭉 내민 입술에 화려한 무늬를 갖고 있어요. 날아다니는 곤충들의 눈에 잘 띄어 내게 오라고 유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식물에게도 눈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은데요.

자신이 갖고 있는 무늬가 곤충에게 멋지게 보이도록 디자인하고, 실현하려면 눈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눈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는 그 무엇인가 있다는 게 맞겠죠.

곤충들이 일단 착륙해야 꽃 안쪽에 마련된 꿀샘까지 찾아 들어가겠죠?
넓은 아랫입술은 비행기 활주로나 기착장 역할을 합니다.

일단 아랫입술에 착륙한 곤충은 무슨 일을  겪을까요?
안쪽 깊숙한 곳까지 새겨진 무늬 따라 꿀이 있는 곳에 들어갑니다.
어릿어릿한 무늬는 활주로 착륙 유도등인 셈입니다.
이때 제일 먼저 곤충이 닿는 부위가 윗입술 쪽에 솟아나 있는 암술머리입니다.
다른 꽃에서 묻혀온 수술의 꽃가루 일부암술머리에 떨어뜨리죠. 

암술은  곤충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검문소인 셈입니다.


윗입술에는 암술이 있다. 벌이 날아들어 꿀을 찾아 가려면 암술 머리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이 순간 가루받이가 이루어진다. 사진= 지라프님 블로그


꿀을 먹고 밖으로 나갈 때는 다시 온몸에 수술 꽃가루를 묻힐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묻은 꽃가루를 안고 간 벌은 같은 방식으로 다른 꽃에게 날아가 가루받이를 시킬 테지요.
꽃은 중매인에게 꿀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분에 성공합니다.
이렇게 자연은 주고받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수분, 즉 가루받이 자체가 곧바로 수정으로 연결되진 않아요.
암술은 자기 꽃가루인지, 건강한 다른 꽃의 꽃가루인지, 아니면 종이 완전히 다른 꽃가루인지 확인합니다.

3가지 난제를 철저히 확인하는 겁니다.


그런 뒤에야 장차 씨앗을 만들 수정 절차를 시작하죠.

그 절차는 또 다른 편에서 정리할게요.


대부분의 꽃에서 암술이 수술보다 길어요.

자가수분 회피 전략입니다. 서로 맞닿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요.

소나무 암꽃이 꼭대기에, 수꽃이 밑동에 피는 것도 마찬가지. 목련도 높이 솟은 암술 주위를 수술들이 감싸고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고 곧바로 수분으로 연결되진 않아요.
암술머리가 열려야 하고, 수술 끝 꽃밥에선 꽃가루가 방출되어야 하거든요.
이때 암술이 열리는 시간과 수술 꽃가루가 터지는 시간을 달리하면, 자가수분을 피할 수 있겠죠?
오전과 오후로 달리하거나, 날짜를 달리하는 겁니다.

수분 매개자의 방문으로 암술의 가루받이가 성공하면 즉시 꽃으로서의 기능은 정지됩니다.
향기도 사라지고, 필요 없어진 수술들은 꽃잎과 함께 제거되죠.
이는 아직 수분하지 못한 꽃으로 곤충을 유도해 주는 효과도 있어요.


별꽃의 경우엔 수분이 되면 고개를 숙여 옆의 꽃을 돋보이게 해 준다고 했죠?
끝내 가루받이 기회를 놓친 꽃들은 강제로 퇴거됩니다.
일시에 꽃을 떨어뜨리는 나무들.
그 꽃들 가운데는 어쩌면 못다 이룬 청춘의 꿈을 간직한 비운의 꽃도 있을 겁니다.


花落憐不掃 (화락련불소)
月明愛無眠 (월명애무면)
꽃이 지니 불쌍하여 쓸어내지 못하고,
달 밝으니 아까워 잠들지 못하네.

광대나물 설명 시작합니다.
줄기에서 층층이 잎을 돋우는데요.
층층마다에서 꽃이 빙 둘러 나오죠.
진분홍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 땐 코딱지만 해요.
그래서인지 ‘코딱지나물’이라고도 불립니다.


꽃봉오리가 생길 무렵에는 코딱지만한 분홍색이 비친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꿀풀과의 두해살이풀.
전국의 양지바른 밭이나 길가에서 자라요.
키는 10~30㎝.
줄기는 네모지고, 자줏빛이 돕니다.
잎은 둥근 모양으로 지름이 1~2㎝.
앞뒷면 맥 위에 털이 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어요.

꽃은 붉은색.
잎겨드랑이에 여러 송이가 돌려나죠.
꽃 지름은 약 0.7~1.2㎝, 길이 2~3㎝.
대롱 부위가 길죠.
아랫입술꽃잎은 3갈래로 갈라지며 윗입술꽃잎은 앞으로 약간 굽어요.
열매는 7~8월경 달걀 모양으로 달립니다.

달걀 모양의 열매. 사진= 산들두리님 블로그.


연한 어린잎은 나물로도, 된장국으로도 먹습니다.
꽃만으로 차를 만드는데 맛은 시고 쓰답니다.
민간에서는 풀 전체를 토혈과 코피를 멎게 하는 데 사용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해요.


코딱지나물, 보개초, 진주연, 접골초, 긴잎광대수염, 작은잎꽃수염풀 등으로 불린다네요.

꽃말은 ‘봄맞이’, ‘그리운 봄’, '조화', '빛나는 봄'
영어명은 Henbit Deadnettle.

광대나물은 집 주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을 만큼 흔해요. 이 시기에는 가장 따뜻한 양지, 바람 불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부터 꽃을 피웁니다.


주 5회 연재가 쉽지 않네요.

오늘 비온 뒤에는 제대로 봄날씨를 되찾을 테니 들로 산으로 나가봐야겠어요.





2024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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