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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Mar 25. 2024

골목길 야생화 12 개나리

깔깔깔 웃다가 목젖까지 노란 꽃


개나리

바야흐로 꽃들의 합창이 시작된 건가요?

어제 나들이를 다녀왔어요. 이때쯤 딱 하나 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원하던 걸 찾았고 덤으로 이른 봄에 피는 예닐곱 가지 야생화 보았습니다.

흰괭이눈, 세잎양지꽃, 현호색, 큰개별꽃, 제비꽃, 길마가지나무 꽃.

도심에서도 개나리, 진달래, 목련, 심지어는 벚꽃이 만개한 나무도 몇 그루 목격했네요. 


어떤 꽃을 먼저 소개해야 할지, 다시 말해 무엇을 소개하고 무엇을 건너뛰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어요.
독창이나 이중창, 사중창 때는 하지 않던 행복한 고민인 거죠?


춘추전국시대 온갖 사상과 학설이 난무하며 다투는 것을 일컬어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했지요.
지금 자연의 모습은 백화쟁선(百花爭先). 온갖 꽃이 앞을 다투어 피어나고 있어요.

그래도 자연의 질서란 오차를 허용치 않는지, 꽃 피는 순서가 딱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무로는 매실나무 꽃, 즉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 매형(梅兄)의 호칭을 획득했죠.

그다음으로 앵행도리, 앵두, 살구, 복숭아, 자두나무 순이라고 했어요.

영춘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도심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순서라고 할 수 있겠군요.

기상청에서는 매년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들의 개화(開花)와 만개(滿開) 시기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무얼 기준으로 개화다, 만개다 따지는 걸까요?
꽃이 매달리는 나무 한 그루에서 3 송이 이상 완전히 피면 개화, 한 나무에 80% 정도가 핀 상태를 만개라고 한답니다.
이를 판별하기 위한 나무도 지역마다 지정해 놓았다는데요. 그 기준이 되는 관측표준목은 왕벚나무래요.
생각보다 과학적이죠?


봄꽃의 개화는 온도와 낮의 길이에 매우 민감해요.
동일 위도, 즉 같은 지역이라도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온도는 0.6도씩 낮아져요.
개나리와 진달래의 경우, 고도가 100m 높아지면 2일 정도 늦게 핀답니다.


그러니 진달래꽃이 불타오르 듯 핀다고 하는 건 맞는 이야기인 거죠. 아래쪽부터 피어 정상을  향해 올라가니까요.
벚꽃은 온도에 훨씬 민감하답니다. 같은 나무라도 나무 아래쪽과 위쪽의 개화에 시간차가 뚜렷하대요.


산림청이 올 3월 초에 발표한 개나리 개화시기 예측 지도. 지난 주 길어진 꽃샘추위로 개화가 늦어진 꽃들이 많다.


개나리 웃음보

      민병도


바람이 겨드랑이에

시린 손을 넣었나 봐


늦잠 깬 개나리꽃

웃음보가 터진다


깔깔깔 웃다가 지쳐

젖마저 노랗다.


개나리를 소재로 한 국내 시인들의 시가 수백 편에 이르는데요. 대부분 그 귀여움과 해맑음을 노래했어요. 그 가운데 '목젖마저 노랗다'라고 하신 민병도 시조시인의 시를 읽으며 저 역시나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개나리 설명 들어갑니다.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명이 포시티아 코레아나 (Forsythia koreana)입니다.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 수 있죠? 우리나라 특산식물입니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갈잎떨기나무.
갈잎은 잎을 간다, 즉 낙엽 지는 걸 뜻하고요.
떨기나무는 키가 작고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은 나무라고 했어요.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한자로는 관목(灌木).

산기슭 양지에서 많이 자랍니다.
높이 약 3m.
가지 끝이 밑으로 처지며, 잔가지는 처음에는 녹색이지만 점차 회갈색으로 변해요.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
톱니가 있으며, 전체 길이는 3~12cm.
잎 앞면은 짙은 녹색, 뒷면은 황록색.
양쪽 모두 털이 없어 매끈.

잎겨드랑이에서 노란색 꽃이 1~3개씩 피죠. 꽃자루가 짧아 나무에 딱 붙어 보여요.
꽃받침은 4갈래로 녹색.
꽃은 끝이 4갈래로 깊게 갈라집니다.
갈라진 조각은 긴 타원형.
수술은 2개, 암술은 1개.


꽃의 구조는 똑같은데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어요.
암술대가 수술보다 위로 솟은 것은 암꽃.
수술보다 아래에 있는 것은 수꽃.

꽃이 4 갈래로 갈라진 개나리. 사진 속 꽃들은 꽃가루 주머니가 달린 2개의 수술이 암술보다 긴 수꽃들이다.


열매는 9월에 삭과로 달려요.
길이는 1.5~2cm이고 달걀 모양.
번식은 종자로도, 휘묻이 또는 꺾꽂이로도 해요.

사실 열매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이 수꽃인 때문인데요.
그래서 인간이 휘묻이나 꺾꽂이로 번식시킵니다. 이는 더더욱 열매를 맺을 필요가 적어지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번식이 되는 판에 굳이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어쩌면 소위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열매를 약재로 쓰기 위해서는 별도로 재배해야 하는데, 중국 원산의 '의성개나리'라는 품종이 그것이랍니다.
병충해와 추위에 잘 견디므로 관상용이나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지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개나리 열매 모습.                                 사진= 연자당연자약초수목원님 블로그 캡처.


개나리 열매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는 연교라고 부르는데요.
화농성질환·신장염·습진 등에 처방한답니다.
뿌리, 줄기, 잎을 모두 약용으로 쓴다네요.
개나리꽃으로 담근 술은 개나리주, 햇볕에 말린 열매로 담근 것은 연교주.
함경남북도를 제외한 전국과 중국에 분포합니다.

개나리라는 이름은 나리 앞에 '개'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으로 보는데요.
그럼 참나리도 있다는 뜻?
네, 백합과에 속하는 참나리가 있습니다.
물론 먹을 수 있지요.
하지만 개나리는 나무고, 참나리는 풀입니다.

그럼 나무와 풀의 차이는 또 뭐지?
옆으로 뚱뚱해지는 건 나무, 그렇지 않은 건 풀.
즉 나이테가 있는 건 나무, 없는 건 풀.
겉껍질이 있는 건 나무, 없는 건 풀.


대나무는 이 중간쯤에 있어요. 벼과에 속하는 대나무는 한해에 쭉 자라고는 더 굵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나이테가 없지요. 이는 풀의 특성입니다. 의견이 분분해도 보통은 나무로 취급한답니다.

고산 윤선도가 대나무를 '풀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라고 읊은  이유가 있었던 거죠.

개-가 붙은 식물은 가짜, 못난이라는 비하성 의미가 있고요. 참-이 붙은 식물은 진짜, 식용가능이라서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접두어 총정리 편에서 소개드렸어요.

한자로 연교(連翹) 잇닿을 연, 꽁지깃 교.

길게 자란 가지에  꽃이 달린 모습이 새의 긴 꼬리를 닮아 붙여졌대요.

신리화, 어사리, 어리자나무, 어라리나무로도 불려요.
북한에서는 개나리꽃나무.
영어로는 Korean golden bell tree.
꽃말은 희망, 기대, 깊은 정, 달성, 집중력.


개나리보다 3주 정도 앞서 피는 영춘화. 꽃잎이 6장이라  4장인 개나리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개나리와 비슷하게 생긴 걸로는 영춘화가 있는데요.
색깔만 노랗지, 많이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꽃잎이 4장인 건 개나리, 5~6장이면 영춘화.
맞이한다는 영춘화가 3주일 정도 일찍 핍니다.


개나리 사촌으로는 산개나리, 만리화, 장수만리화가 있답니다.

산개나리는 한때 멸종설이 있을 만큼 귀했는데요. 복원에 성공했다는군요.

만리화 2종은 중부 이북 깊은 산속과 북한에서 자생한답니다.


학교의 담을 따라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포근하고 눈부신 봄햇살 속에서 그 샛노란 꽃의 홍수는 싱그러운 생명감을 맘껏 발산하고 있었다. 흰옷을 입고 스치기만 해도 금세 샛노랗게 물들 것 같은 그 개나리꽃의 낭자함은 믿기 어려운 계절의 기적이고 경이로움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겨울 추위 속에서 얼어 죽어 버린 것 같았던 가늘고 긴 가지들에서 그리도 화사하고 찬란한 꽃들이 피어난 것이었다."
- 조정래, <한강> 1권.



■ 게으를 수 있는 권리(right to be lazy)
산업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work)가 노동자를 노예와 다름없이 만들었다는 성찰에 따른 반대 개념.
칼 마르크스의 둘째 사위인 폴 라파르크가 1883년 처음 주장.
노동시간을 하루 4시간으로 대폭 줄여 노동자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자는 그의 주장은, 100년이 넘은 최근 프랑스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 일자리나누기(job sharing)의 이론적 토대가 됨.


■■ 이제 꽃천지가 열리는 3월 말입니다.

봄꽃들의 전성기는 4월~5월입니다.하지만 비바람 뚫고 먼저 세상 구경 나온 용감한 꽃들이 있기에, 산과 들로 향하는 발걸음은 기대에 가득 차게 됩니다.

아직땅에 바짝 붙어 있거나, 나무에서도 서너 송이가 피어 시선을 사로잡지는 못 해요.


혹여나 먼저 나왔다가 꽃샘추위에 스러진 꽃들의 경우, 그 죽음의 흔적마저 사라지는 걸까요?

다 그렇지는 않지만, 같은 꽃대에서 올라온 다음 꽃들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동료의 용감한 죽음을 기억하듯 열매 위쪽에 그들의 흔적을 간직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런 것까지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글로 남겨놓았고요!


이를 보면, 의미 없는 죽음은 단 하나도 없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과 죽음이 다르지 않을 진대, 의미 없는 죽음이 없다면 의미 없는 삶도 없지 않을까요.

내 삶이 의미있다면 귀하의 삶 또한 그러하리라는 믿음으로  봄 목젖이 노랗도록 웃으며 살아보자구요.


2024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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