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는 내가 누리는 권력의 실체를 확인했다.
11월하고 중순이 지나갔다. 회사에서 지난 달 지출한 내역에 대한 회계결의를 마감해야 하는 시기다. 보통 회계팀의 법인카드를 담당하는 직원이 각 부서에 지난 달 사용 내역을 뿌리고 이 리스트에 맞춰 누락된 것은 없는지 확인을 한다. 물론 그 전에 자신이 지출한 내역은 증빙과 관련 서류를 맞춰 회계결의를 완료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회계팀 직원이 보내주는 지난 달 사용 내역은 일종의 배려다.
그런데 나는 기부금 사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내가 사용하는 법인카드가 달라서인지 담당자가 해당 카드 내역은 보내는 것을 깜빡했다. 정신없이 바쁜 11월이었어서 시기가 꽤 지났을 때 그 분이 연락이 오셨다. (편의상 P주임님이라고..)
"대리님, 죄송해요. 제가 기부금 카드 내역은 보내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내역을 보내드릴테니 회계결의 완료해 주셔서 제출 부탁드립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역 보내주는 건 회계팀의 배려다. 전혀 미안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미리 안 챙긴 나의 불찰이다. 그런데 올해 입사한 P주임님은 입사 7년차 되는 나한테 전화하기 전에도 망설였을 거다. 그런데 "죄송해요"라니! 심지어 점심시간에 나에게 초코렛을 하나 사와서 오늘 중으로 회계결의 꼭 부탁한다고 하셨다. 아, 이건 내가 기시감이 드는 현상이다. 신입시절 지출 독촉해야 하는 상황에 담당하는 선배님께 초콜렛 하나 사드리면서 오늘 꼭 좀 부탁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 이게 권력이었다. 자리에 오는 즉시 처리해서 제출했다. P주임님 미안해요. 내가 내일 커피 한 잔 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