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이라는 하나의 예술에 관해서
최근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자취하면 삶의 질이 올가가 나요?'라는 질문을 보았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질문인지는 모르지만 자취하던 나의 경험을 생각해 보았다. 대구에서 상경 후 자취를 시작하고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내 몸에서 '털'이 이렇게 많이 나오나 하는 거였다. 머리카락과 같은 체모들이 집에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곧바로 동네 슈퍼에 가서 작은 빗자루를 샀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빗자루는 잘 쓰지도 않은 채 방치됐다.)
그렇다면 왜 대구에서 살 때 나는 이걸 몰랐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매일 엄마가 청소를 했기 때문이다.
자취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오롯한 나만의 공간. 잘 정리된 침구와 책상. 그리고 아늑한 조명까지. 여기에 책상 위에 그럴싸한 소품과 스피커 정도 있으면 좋을 거 같다. 하지만 현실은 왕자행거와 의자 등받이에 주렁주렁 걸쳐지는 내 옷과 밀린 빨래. 그리고 굴러다니는 내 체모(...)였다.
아무튼 그 커뮤니티의 질문에 대해 나는 이런 답변을 남겼다.
"자취를 하면 자유로울 거 같은데 나의 삶과 나의 공간을 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량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엄마가 해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요. 그런 깨달음과 성찰을 모두 합하여 ‘삶의 질’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올라가는 건 맞겠죠. 하지만 의외로 많은 자취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활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밖에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면 집에서 더 이상 에너지를 내기가 어려워요. 전 그래서 가사일 하시는 분들 존경해요. ‘집에서 논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임 ㅋㅋ"
절대 가사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특별히 남성/여성으로 한정 짓지 않겠다.) "집에서 논다"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집이 되었든 건강이 되었든 무언가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커다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잘 정돈된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행복도는 올라간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투입하는 누군가에 대해서 "논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집안일'은 그것 자체로 숭고한 하나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