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by 대사랑 biglovetv

매일 아침마다 만나는 바다는 늘 기분이 달라 보인다.

기분 좋은 날이면, 입가에 살짝 미소짓 듯 투명한 파도만을 가장자리로 보내며 수줍게 인사하고 심드렁한 날이면, 속 뒤집힌 듯 흰 거품 섞인 시커먼 흙탕물을 덩어리 채 계속 뱉어 낸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 심하게 말해 조울증 환자다.

연륜과 경험 가득한 노인도 누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변덕쟁이가 되는 것처럼 태양계에서 5번째로 큰 지구를 대부분 덮고 있는 바다도 속이 좁은 것은 마찬가지다.

바다와 같이 한결같고 넓은 마음이라는 표현은 다시 생각해 봐야 될 것이다.


오늘 아침도 그 속 좁은 킹콩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아직 내 눈앞에 나타나려면 15분이 남았지만, '찰싹찰싹'... 어렴풋이 들리는 그의 콧소리만 들어도 짐작이 간다. 오늘은 기분 좋은 것이다.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아진다. 발걸음도 간격을 넓히고 이마의 땀은 바람에 실어 그에게 먼저 보낸다. 들떠있는 그를 상상하면 나도 흥분된다. 쫀득 쫀득 모래사장을 밟으며 그와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로 기분을 표현하는 그가 부럽다. 솔직한 그가 부러운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내 감정을 꽁꽁 숨기며 타인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바른 일이며, 겉과 속을 최대한 멀리 분리하는 사람이 되려 했는데, 그는 직설적이다. 분위기 파악 따위는 없다. 늘 돌직구다.

나도 그를 좇아 이제는 내 감정을 가장 앞에 두리라 다짐해 본다. 그가 뱉어낸 구멍 난 조개껍질 하나를 집어서 그의 심장을 향해 던진다.

지켜봐 주라...


한참 동안을 그와 아야기하며 걷다가 뒤돌아 본다. 내 지나온 발자국이 남아 있다. 가까운 것은 뚜렷하게, 먼 것은 희미하게 보인다.

그가 어루만 진 발자국은 사라져 버렸다.


하루 전의 기억은 생생하지만, 24시간만 더 거슬러가도 먼발치의 발자국처럼 흐릿해진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많다. 그 기억을, 누군가가 '쨘'하고 내 앞에 나타나 그처럼 덮어주고 쓸어가 버렸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 기억을 더 선명하게 한다. 내가 뒤 돌아보지 않으면, 그 기억은 떠 오르지 않을까? 그대로 두면, 파도에 흩어지는 발자국처럼 사라질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다시는 고개 돌리지 않겠다. 그렇게 아픈 기억은 사라지고 즐거운 추억만 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참을 뒤 돌아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지나온 길보다 훨씬 더 광활하고 햇빛 반짝이는 모래길이 펼쳐 있다. 파도는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응원가를 불러 주고 있다. 크게 숨 한번 고른다.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본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 저 길을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걸으리라 다짐한다.

지워지는 것 따윈 걱정하지 않고 많은 발자국을 남기리..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소중한 모래길을 모르고 있다. 이제 알았으니 천천히 그 길을 가자.


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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