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찬

by 대사랑 biglovetv

다시마 초무침, 어묵볶음, 스팸 찌게, 콩자반, 소고기 장조림, 찰밥...

잘 닦인 왕복 8차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로 옆 43살의 낡은 5층 맨션, 괴이한 소리를 내야만 열리는 페인트 벗겨진 405호 현관문 뒤에는 한참 동안 나를 기다린 듯, 숨죽이고 있는 보자기 꾸러미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가 우리 가족을 위해 준비한 반찬들...

혹시나,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떨어져 노부모님께 둥지를 틀까 하는 염려에 도망치 듯 보따리를 끌어안고 뒤돌아섰던 나였다.


꽉 막힌 도로 위, 그제서야 숨을 고르고 정신을 차리니 내 머리 위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엄마 목소리를 통해 각 반찬들의 사용 설명서가 전달되고 있었다.

큰 손자가 좋아하는 다시마 초무침, 육식을 좋아하는 둘째 손자를 위한 소고기 장조림, 밥할 시간도 없이 바쁜 며느리를 위한 구식 압력밥솥표 찰밥,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필살기 스팸 찌게.. 모든 반찬에는 뚜렷한 대상과 명분이 가득 양념되어 있었고, 차 안을 꽉 채운 그 냄새들은 가속 페달에 힘을 더 주도록 했다.

"잘 먹을게요"라는 짧고 무심한 나의 대답에 이어 다음 반찬 약속까지 정하려던 엄마의 목소리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끊어야 했다.


시집온 후 바로 시작했던 30년 동안의 고춧가루, 참기름 장사 대신 살림만 했더라면 요리 솜씨가 더 좋았을 거라며, 늘 미안해하시며 내 숟가락 위에 반찬 하나 더 포개시는 엄마의 손결이 떠올랐다.

고된 장사의 흔적이라며, 제법 많이 휘어진 새끼손가락으로 음식마다 간 보며 불편한 무릎으로 하루 종일 불 앞에 서 계셨을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거동이 자유롭지 않으신 아버지 돌봄도 힘드실 텐데 자식들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하시는 모습이 눈앞으로 스쳐갔다.

매일 하는 통화는 아니지만, 매번 끊기 전에 "우리는 아무 일 없으니 걱정 마라." 라 하시는 속 빈 강정 같은 당부의 말씀도 내 귀를 떠나지 않았다.


코로나를, 아이들의 학원을, 일상의 평범한 피곤함을 핑계들로 에둘러대며 자주 찾아가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먹는 배달 음식 때문에 입맛이 없다며 지나가는 소리로 투정 부렸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소중하게 물려주신 건강한 몸 잘 간수하지 못하고 병치레하고 있는 나 자신이 죄송스러웠다.

많이 사랑한다고, 덕분에 잘 컸다고, 늘 건강하시라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 달라고, 이런 쉬운 얘기를 살갑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창피했다.


봄 소녀처럼 꽃을 제일 좋아하시는 엄마.

사방에 벚꽃이 흩트려지게 활짝 피는 찐 봄이 오면 같이 근사한 꽃놀이 가야겠다.

집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며 늘 외식을 거부하시는 엄마.

꽃놀이 끝나고 맛난 거 사드려야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자주 전화 안 해도 된다는 엄마.

짧은 안부 전화라도 매일 꼭 해야겠다.


내가 자식 키워보니 조금은 알 수 있는 엄마 마음.

보란 듯이 행복한 가정 꾸리고, 나의 일을 사랑하고,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엄마! 언제나 많이 사랑하고 늘 감사드립니다.

계속 잘 지켜봐 주세요!

참, 그리고 반찬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


지금,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하자.


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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