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5시, 온 동네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보이지도 않던 태극기를 향해 내 머리와 손을 정렬하던 그때.
훗날, 김치와 물을 사 먹게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시절을 보내게 된 거다.
또한, 우리 또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거침없이 받아들인 세대이기도 하다.
TV 광고에서 한 할머니가 '돼지털?'이라는 독백으로 던진 질문과 웃음으로 시작한 그 변화의 일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별밤에 신청곡과 사연을 보내고 나의 이야기를, 내가 듣고 싶었던 노래를 이문세 아저씨가 소개할까 하고 몇 날을 라디오 옆에서 기다렸고, 그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카세트에 공테이프를 넣고 손가락을 레코드 버튼에서 떼지 않은 채 주파수 맞추며 집중했던 그 시절. 리어카 뮤직박스는 언제나 거리를 음악으로 물들였고, 나의 애청곡만을 듣기 위해서는 공테이프 뒷면에 노래 제목을 빽빽이 적어 동네 레코드방으로 달려갔어야만 했던 그런 시절을 보냈다.
이제는, 유튜브에서 K-POP을 제법 잘 찾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나를 위로해 주는 음악들로 가득 차 있다.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나에게 있어 블루투스 이어폰은 참 고마운 존재다.
주머니에 손을 푹 쑤셔 넣고 걷기 좋아하는 나의 손에 자유를 주었고, 칭칭 엉킨 이어폰 줄을 풀어야 하는 수고와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위해 부산히도 내 몸을 여기저기 더듬어야 했던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다.
특히, 고마운 건,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 - 나이가 들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화를 잘 낸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젊은 사람이다-
갑자기 내 속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할 때, 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다. 나를 언제나 반겨주는 경쾌한 연결음이 들리면 나와 그는 하나가 된다. 곧 음악이 내 귀를 통해 온몸으로 퍼지고 막 피어 오르기 시작한 내 감정의 불꽃은, 마치 아궁이에 찬물 한 바가지들이 부은 듯, 이내 사그라든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진다. 걷고 싶어 진다.
낡은 운동화를 신고 바깥을 걷다 보면 귀에 흐르던 익숙한 멜로디는 주변 소음과 잘 섞여 새로운 장르가 되고, 이 브금은 내 머리와 가슴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멍석을 깔아준다.
덕분에, 많은 대화가 이어지게 되고 이런 소통은 한 발짝, 두 발짝 떨어져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한다.
조금 전 나를 화나게 했던 일은 정말 별거 아니고 내 인생의 오점이 될 수 없는 사소한 일로 변한다. 피식 헛웃음 짓게 한다.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거웠던 내 발걸음은 이내 가벼워지고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사람, 이 세상을 향해 다시 방향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