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가씨가 멋진 바다 풍경을 담기 위해 대포를 쏘기 위한 준비를 하듯 이리저리 몸의 방향을 돌린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여러번 가볍게 터치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진 찍기'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두어 번 정도의 버튼 조작으로 카메라를 가질 수 있고, 사진작가의 연속 촬영처럼 짧은 움직임을 여러 번 담아도 저장공간이 충분하니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리라.
내 가슴에 박힌 그 상(象)과 몇백만 화소를 통해 찍힌 그 실제 그림과의 간극을, 즉시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면 1초 만에 저 세상으로 보낼 수 있는 신비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두루마리 휴지처럼 생긴 비싼 필름통을 넣어야만 작동했던 카메라를 썼던 때와는 많이 변했다.
내 어릴 적 사진 찍기는 일 년 중 몇 번 오지 않는 큰 이벤트였다.
36장짜리 필름을 넣고 철컥하는 기계음으로 세팅이 마무리되면 카메라를 꿀단지 다루듯 손동작이 조심스러워졌다. 혹시나 셔터를 잘못 눌러 사진 한 장 날리면 욕 한바가지 제대로였다. 다 찍은 필름을 감기 전, 햇빛 구경이라도 하는 날엔... 휴, 있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대형사고였다.
사진 찍는 날이면 아침부터 거울 앞을 서성거렸다. 이 날을 위해 안방 장롱에 꼭꼭 숨겨두었던 맥가이버 건빵 바지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머리빗은 내 머리카락을 2대8로 갈랐고, 내 두툼한 입술 뒤에 늘 감추던 치아를 럭키 치약으로 광 내기에 바빴다.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사진을 찾아오는 날까지의 긴 시간을 설레임의 연속으로 안내했다.
사진 속 나는 언제나 나의 소중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과 같이 했던 손동작, 사소한 표정들에도 많은 의미가 포함되었다.
버스 다니던 큰길 옆 명당자리에 꼭 하나씩 있던, 모두가 어색한 웃음 짓고 있는 이름 모를 가족의 아주 커다랗고 빛바랜 가족사진이 늘 반겨주던, 동네 사진관에 필름을 맡겨야 했다. 사진을 찾기로 한 그날 다시 찾은 사진관, 그 현관문 손잡이를 잡던 손가락은 마치 긁지 않은 복권을 위해 동전을 움켜쥘 때처럼 묘한 기대감과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만 완벽했던 내 모습과는 아주 다른 원래 나를 다시 확인하는 아주 짧은 아쉬움의 시간은 바로 삼키고, 가족, 친구들과 한자리에서 돌려보며 낄낄거리며 배꼽을 잡았고 사진 한 장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꽃피우던 그 시절..
지금은 일회용 봉투만큼이나 가볍게 생산되고 쉽게 소비되고 있는 사진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가지기 참 어렵다. 설령 인생 샷 하나 건지더라도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갤러리'라는 아니면 '클라우드'라는 생경한 곳에 처박히기 일쑤다.
카톡 대문사진 정도면 임금 대접이다.
금빛 스프링을 휘감은 채 내 인생을 조용히 덮고 있는 창고의 낡은 사진첩들은 성가신 이삿짐 신세가 되어 버렸지만, 지나온 나의 과거를 버릴 수 없는 타당한 명분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써나갈 우리의 아름다운 인생의 기록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나의 모습을 부지런히 담자. 빠른 세상에 파묻혀 소홀했던 사람들도 같이 찍자. 지나간 과거는 사진 속에 가두고 지금을 즐기자. 그리고, 잘 보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