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붉은 해가 2022년 임인년을 밝힌 첫날, 마치 무전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촘촘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카메라를 켜고 필사 방송을 시작했었다.
지난해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뇌경색'과 그 후유증 '어지럼'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피할 수 없었던 나에게 그 시작은 신기록 도전을 앞둔 역도 선수처럼 비장했지만, 대한해협 횡단을 앞둔 조오련처럼 언제 끝나도 이상할 것 없는 장담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첫 방송 전의 가쁜 숨과 약간의 어지럼증은 꽤 당황스러웠지만 더 솔직하자면, 나의 필사 방송이 혹시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원맨쇼'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설익은 창피와 근심이 나를 더 힘껏 짓누르고 있었다.
짧은 순간에 탄생한 무모한 도전 중 하나였지만 봄방학만큼이나 짧았던 내 끈기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무인도에 표류된 로빈슨 크루소처럼 당분간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나에게 조그만 비상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몇 달 전 병원에서 정신이 든 후, 오른손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제일 먼저 확인한 걸 보면, '글씨'를 내 운명 정도로 여기는 나의 본능에 충실하고 싶었다.
정말 혹시나, 밥벌이 못하는 가장이 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취미 삼아 했던 나의 유튜브 채널로 뭐 좀 어째 해보려는 희망의 끈이라도 잡으려는 자본주의적 사고의 출발이기도 했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꾸준히 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나에게 윽박지르는 셀프 회초리이자 명령이기도 했다.
어떠한 일이든 그 시작은 아주 많이 어색하고 실수투성이다. 자전거 타기를, 신병 시절을, 첫 출근을 예로 든다면 이해가 빠르겠다. 그 낯가림과 서툶은 시간과 경험이라는 안내자가, 같은 길을 가는 동무가, 먼저 길을 간 멘토가 있어 점점 사라지게 되고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추억으로 바뀐다.
필사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욕 듣지 않을 필사하기 적당한 책을 선택해야 했고, 모두가 버겁지 않을 알맞은 분량을 예측해야 했고, 발음 좋지 못한 영어 선생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연필을 더 힘주어 잡게 했다.
고장 난 머리에 책 내용을 남겨둔 채 입으로는 그것을 낭독하며 눈과 손은 빠르게 쫓아가야 했고 아주 가끔이지만, 채팅창의 대화도 허겁지겁 확인하기 바빴다. 다시 들어본 내 목소리와 진행 솜씨는 어색함과 실수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호흡 조절이 제법 잘 되었고 덕분에 목소리에 힘도 들어갔다. 찰나의 실수 정도는 그냥 쉽게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겼고, 보이지 않은 선을 통해 같은 시간을 연결하고 공유하는 친구들(필우)이 나타났고, 독수리 타법으로 조용히 남기는 인생 선배님들의 채팅에 나는 멘티가 되어 배우고 있었다.
매일 밤 9시, 자연의 소리를, 때로는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많은 필우들이 숨죽이며 책 내용에 집중한다. 하루일의 모든 잡념을 잊고 온 신경을 활자와 펜 끝에 집중한다. 짧지만 꼭 필요한 힐링 타임의 시작인 것이다.
아무리 손에 익었어도 이것저것 챙기는 방송 15분 전이면 늘 긴장되기 마련인데, 필사 시작과 함께 채팅창에 빠르게 번지는 필우들의 안부 인사는, 나를 선생이라며 부르며 내 작은 멘트에도 보여주시는 필우들의 빠른 반응은 큰 지우개가 되어 내 어깨 위에 적힌 '불필요한 긴장'이라는 오타를 깨끗이 지우고, 가볍고 즐거운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잃는 것은 거의 없었고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던 시간을, 장사꾼이라면 돈 되는 피크 타임을 매일매일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오늘 밤이면 새 책과 새 글씨체, 새로운 필우들과 나의 시즌2는 시작될 것이다.
그 여정은 나를 더욱더 배려 깊은 어른으로, 나눔의 기쁨을 더 아는 인간으로, 더 많이 소통하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다가가는 길이기를 소망한다.
더 많은 필우분들이 나타나 험난한 우리 인생사에 조그만 촛불같은 인연이 많이 만들어 지길 바란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 조그마한 노력을 끝없이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내 방송이 '필사 맛집'이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더 많은 분들이 들러 보이지 않는 다양한 삶의 양식을 맛보고 돌아가 '선한 영향력'을 전파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