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매일 밤 9시, 나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작은방 한쪽 구석에 위치한 '창작의 책상'이다.
약 4개월 전, 작년 겨울 초입, 그 후, 일 년의 1/10을 병실 침대에 누워 보냈다.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는데만 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하루 앞도 모르는 몸 상태였지만, 1달 후, 1년 후, 10년 후의 내 상상의 모습을 조각하기에 충분했다.
병원을 벗어나면 하고 싶은 것을 나열했다. 핸드폰 메모장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많았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다행히 몸 상태가 나아져 퇴원을 했고, 수많은 리스트 중에서 우선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 했다. 그중 하나가 '필사'였다.
다른 사람의 노력과 생각 그리고 연구의 결과물인 책을 그대로 따라 적는 것. 필사다. 왜 필사가 버킷 리스트에 있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기억해 내기 어려웠지만, 아마도 좋은 책을 읽고 나의 글씨로 빈 노트를 채워 보고 싶었고, 뇌를 다쳐서 인지 타인의 건강한 머릿속을 따라가고 싶었고, 나만의 카오스를 벗어나고 싶어서 인지 등대가 되어 줄 희망의 문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 간다.
사실, 뇌경색 환자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임인년 새해가 시작되고, 그렇게 무작정 필사 방송을 시작했다. 나 혼자 숨죽인 채 글자만 따라가는 필사가 아닌, 실시간으로 나의 필사를 공유하고 싶었다. 작심삼일로 쉽게 닫히지 않도록 내 나약한 다짐의 상자의 열쇠를 멀리 던져 못 찾게 하고 싶었다. 혹여,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친구가 어딘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발걸음을 시작했다.
나 혼자만 계속 필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중년의 남성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고독감 바이러스에는 이미 3년 전, 유튜브를 시작하며 백신을 맞은 덕에 많은 항체를 가지게 되었고, 극심한 증상은 없을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인지 이 조그마한 시작은 행복한 여행이 될 거라 확신했다. 또다시 혼자서, 쉬지 않고 묵묵히 나의 길만 간다면 다 잘 될 거라는 가느다란 희망끈을 잡게 되었다.
매일 밤 9시면 나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창작의 책상'에 앉는다. 남의 책의 베끼는 것은 창작과는 정반대라고 비아냥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의 필사 시간은 창작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펜과 노트로 맺은 인연으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연필 꽉 쥔 손가락을 통해 전해오는 작가들의 명문들은 내 가슴을 물 들게 했다. 그것들은 먼바다 떠 있는 초호화 크루즈선처럼 선명하고 유유하게 내 마음의 바다를 항해하였고, 그들이 남긴 깊은 여운은, 물결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고, 오래 머물러, 나의 내일을 새롭게 했다.
새 친구와의 수줍은 인사는 뇌경색으로 막혔던 머리의 핏줄을 시원하게 뚫었고, 책상 가득한 책 냄새는 나만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싹트게 했다.
늘 굴러다니던 연필이었지만, 이 책상에 앉으면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가 되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창작의 장소가 분명했다.
기발한 창작은 늘 우연히 만들어진다고 했다. 수많은 도전들 사이에 꼭꼭 숨어있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다가 끊임없이 찾는 이들에게만 나타난다고 했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를 잘 살펴보자. 엉뚱한 곳이라도 좋다. 또 다른 무엇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창작의 공간이 엉뚱하게도 바로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