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때가 되면 종종 내가 식사 준비를 한다. 부엌에 자주 나타나야 사랑받는 남편인 세상이다.
아이들 개학 후, 아침 준비는 늦잠으로 건너뛰지만, 온라인 수업이 있는 날이나 집사람 퇴근이 늦어지는 날의 식사는 내 일과다.
신입사원의 첫 출근일처럼 성과 없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전자렌지, 붙박이장도 마찬가지다. 하면 할수록 손에 붙어,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부엌일은 늘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난 듯 낯설다. 냉장칸에서 입 꾸욱 닫은 채 기다리던 반찬들이 그릇에 올려지고 국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질 때쯤 출석 부르듯 아이들 이름을 부른다. 수저 배치와 국그릇 배달은 아이들 몫이다. 사내라면 어디서든 밥값을 해야 한다. 그 사이 나는 밥 퍼는 것으로 식사 준비를 끝낸다.
한 주걱, 두 주걱.. 세 주걱째 살포시 덮어보지만 좀 과했다. 고봉밥이다. 배 고프면 모래라도 씹어 먹는다는 폭풍 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면서 꾹꾹 누른다. 부피를 줄인다. 두 주걱이라고 우길 예정이다. 계속 따지면 성질이라도 부릴 샘이다. 아빠의 사랑이 담긴 공깃밥이다.
기다렸던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식탁 위 대화가 사라졌다. 아무리 경상도 사나이 세명이 모였지만 적막 그 자체다. 딸 있는 친구가 부럽다. 한마디 먼저 꺼내려 고개를 들면 다들 코 박고 핸드폰 삼매경이다. 스티브 잡스가 밉다.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목소리를 가다듬어 보지만 원맨쇼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수저와 그릇들이 치열하게 부딪치고 반찬이 거의 없어질 즈음, 평소 입이 짧은 큰 녀석은 밥이 너무 많다며 남긴 채 일어선다. 농부의 고마움을 모른다. 이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동생보다 두 배나 많이 펐다며 투덜 된다. 다 자기를 위한 것인지 모른다. 서운하다. 그래, 니도 나중에 아들 키워봐라..
문득 든 호기심에 하루는, 지 밥은 지가 퍼도록 했다. 두 주걱을 퍼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생각보다 밥이 적다고 느꼈는지 한 주걱 더 펀다. 그냥 딱 봐도 내가 펄 때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왜 이렇게 많지?"하는 계속된 자문과 함께 어느새 한 그릇 뚝딱 비운다.
어라? 뭐지? 무엇이 달랐을까?
모르는 새 아이들이 자란 거다. 자기 행동에는 자기가 책임지려는 어른이 된 거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을 가졌고, 그 결정을 열심히 따르려는 성숙한 인격체가 되어 가는 것이었다. 품 안에 자식처럼 이것저것 다 챙기고 간섭하는 사이에 훌쩍 큰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