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수천 겹의 꽃잎을 물고 있는 봉오리 있잖아요. 아직 안 핀 거... 만개를 안 해서 우리 눈에 쉽게 안 드러날 뿐, 분명히 안에 수천 겹, 수만 겹의 무언가가 있다.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매일 밤 필사 중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나오는 글이 아니다.
싱어게인2 TOP6 결정전, 매 라운드마다 탈락과 부활을 반복하며 지쳐버린 7호 가수, 그녀의 노래가 끝나고 이어진 김이나 작사가의 심사평. 그 멘트는 그 소녀를 따스히 휘감은 채 관통하였고 결국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지난 몇 주의 월요일 밤, 무명 가수들이 펼치는 작은 음악회를 통해 위로받았던 40대 후반의 나, 무심코 나를 지나쳤던 옛 노래들은 그들의 연주와 목소리로 다시 살아나 내 귀에, 내 심장에 머물렀고 TV 화면 모퉁이에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그 노랫말들은 하나의 시로 보였고, 내 여러 감정들과 뒤섞여 재해석되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뚜벅뚜벅 과거로 향하고 있던 나는, 김이나의 그 심사평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7호 가수를 꿰뚫었던 그 총알이 나의 숨통에도 박힌 것이다.
그때, 불현듯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 부장이 떠 올랐다. 그의 대사에 공감했고 울었고 위로받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 인생을 그에게 투영했었고, 나도 그처럼 올곧고 따스한 사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박동훈은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했었고, 현실 속 나의 다짐들은 금방 안개처럼 흩어졌었다.
마이크를 든 김이나는 실제의 박동훈 부장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교정을 통한 가공된 대사를 했던 박동훈과는 달리 김이나는 아주 짧은 시간에 그녀만의 말을 생산했다. 그녀의 심사평은 갓 잡아 올린 살아있는 날것이었다. 그 싱싱함은 햇빛 들지 않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 돌고 도는 무명가수들의 눈을 번뜩이게 하고 입꼬리를 높이고 어깨를 감싸는 영양분이었다. 바로 곁은 아니었지만, 차가운 브라운관을 통해 보였다. 느껴졌다. 그 따뜻하고 고귀한 힘이..
그녀를, 서태지 이후 처음으로, 방송인을 동경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 서툰 내가 처음으로 유명인을 follow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좇아 별밤에 다시 주파수를 맞추었고 그녀의 마법 같은 표현은 내 노트를 메웠다.
나도 그녀처럼 따뜻하고 신박한 표현으로 다른 이를 힘나게 하고 싶다. 그녀의 노래 가사처럼 듣는 이를 눈물 흘리게 하고 싶다. 평생 못가 볼 경지이지만 발꿈치 정도라도 가보고 싶다. 이 갈망은 나를 변하게 했다.
내 주변의 흔해 빠진 자연을 다른 시각으로 보려 한다. 낡은 시집과 산문집을 수학 문제집 답안지 보듯 조용히 읽는다. 가슴 뛰게 하는 문장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는 연습을 한다. 또, 나의 글씨로 계속 표현한다. 나의 반성이, 나의 관찰이 내 머릿속에서 철철 넘쳐흘러내리도록 많이 걷는다. 동시에, 나만의 표현으로 그것들을 주워 담는 연습을 한다. 이런 즐거운 행군에 '포기'라는 말은 찢어버리고, 대신 내 남은 날의 소명이라고 조용히 받아들인다. 이 글도 그중 작은 실천이다.
이 글의 제목이 '김이나 예찬'인 이유는,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다.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이 글이 그녀에게 닿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다짐을 응원받고 싶어서다. 그녀만의 글로...